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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활성화라는 아무 말가능한 불가능
1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말이 아직 나오기 전이었고 블로그가 대안미디어의 총아로 불리던 때였다. 그때 ‘독설닷컴’이라는 시사 블로그를 만들어 제법 주목받았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이 한창이어서 시민들이 블로그나 아고라 등 대안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던 때였다. ‘블로고스피어’가 이슈의 야시장으로 부상하자 정부 부처들도 앞다퉈 공식 블로그를 만들었다.

2018년 서울거리예술축제.

그 시절 블로그 관련 강의를 많이 다녔다. 이슈의 야시장에서라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블로그 운영 노하우를 전했다. 시민단체 대상 특강을 할 때였다. 한 불교 관련 단체 활동가가 종교단체의 블로그 활성화 방법에 관해 질문했다. 그분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안 그래도 그 단체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주목하고 있었다고, 잘하다가 최근에 부진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답이 반전이었다. “우리 블로그 관리해주던 자원봉사 대학생이 군대를 가서요.” 조금 과장해서, 그때 돈오점수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면서 내 강의가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블로그 실무자들인데 사실 그들은 재량권이 없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보도자료를 조금 손봐서 올리는 정도다. 그런 ‘식은 피자’로는 결코 누리꾼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블로고스피어’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깨달음과 절망이 함께 왔다.

활성화 사업을 없애면 나타날 일

활성화, 이것은 ‘가능한, 불가능한 일’이다. 국회의원과 술자리를 한다면 알코올의 기운을 빌려 설득해보고 싶은 법이 있다. 바로 ‘활성화 금지법’이다. 말 그대로 정부가 어떤 활성화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정부는 어떤 활성화 정책도 수립할 수 없고 활성화 사업에 예산을 쓰면 안 된다고 못 박아두는 것이다.
정부가 활성화를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아마 아무것도 안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정부의 활성화 정책 따위가 없어도 아무런 지장도 없고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정부 관계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활성화를 둘러싼 오래된 진실이다.
세상에서 ‘활성화’를 가장 못할 집단을 한 번 꼽아보자. 누구일까. 공무원이다. 생각해보라. 다른 집단과 달리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한다. 성과를 내는 것보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가장 창의적이지 못한 집단이 가장 창의성이 요구되는 일을 주도하고 있다. 가장 부가가치와 거리가 먼 집단이 부가가치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이 주동하는 활성화는 ‘가능한 불가능’이다.
그렇다면 활성화 사업을 없애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수조 원 혹은 수십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예산을 줄여서 다른 긴요한 곳에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정부의 활성화 사업을 없애는 것이다. ‘진흥’이라는 이름이 붙는 재단과 위원회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런 진흥 재단이나 위원회를 활성화시킬 재단이나 위원회가 필요한 지경이다.
그런데 활성화가 필요한 일도 있을 텐데 이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간단하다. 실제 활성화 성과를 낸 곳이 그 성과급을 받아가게 하면 된다. 그럼 10분의 1 예산으로도 10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불교 시민단체 블로그를 운영하다 홀연히 군대로 떠난 그 대학생처럼 진짜 활성화할 수 있는 사람이 실력을 발휘하고 그 성과만큼 보상을 챙기는 것이다. 요즘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중간지원기관을 많이 두는데, 이런 기관을 활성화 심사기관으로 바꾸면 된다.
이런 활성화의 역설을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에 대입하다면 ‘예술축제 지원사업’을 예로 들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축제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받는 ‘대표 예술축제’가 정말 서울시를 대표하는 축제라고 말할 수 있는 행사인가? 아니 그것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 행사가 ‘축제’인가? 그리고 서울시민을 위한 축제인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축제는 현장이 중요하다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이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프레임이다. 프레임을 진화시켜야 한다. 여전히 축제지원 심사는 기획안을 통해 이뤄진다. 이것이 문제다. 축제는 결과물로 평가받아야 한다. 기획안이 아니라 현장 평가가 우선이어야 한다. 간단한 기준이다. ‘서울시민의 축제’라는 것을 보여준 축제를 지원하면 된다. 축제의 본질은 기원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축제를 주최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과 참가하는 사람들을 설레게 할 유쾌한 일탈이 있느냐 여부다. 이것을 보면 된다.
‘서울시축제위원회’가 구성된다고 들었다. 축제에 관한 옥상옥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서울시의 여러 기관 중 축제와 관련된 최고 전문기관은 뭐니 뭐니 해도 서울문화재단이다. 재단의 출발점이 바로 축제(하이서울페스티벌)였다. 축제는 현장이 중요하다. 시민의 반응을 몸으로 느끼고 현장 예술단체와 밀접하게 교류한 경험이 중요하다. 그런데 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니, 축제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글 고재열_시사IN 기자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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