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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아이 엠 러브>길치, 지도 읽는 법을 배우다
욕망, 관능, 불륜, 계급, 금기. 루카 구아다니노 영화의 키워드를 뽑아보면 지극히 원초적이고 고전적인 통속극(通俗劇)을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개인의 욕망이 도덕적 관습에 앞선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더 큰 파국을 향해 있다. 사실 사람들의 감정은 어쩔 수 없이 통속적이라는 것을, 애초에 욕망이라는 것이 세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독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흔한 통속극과 다른 점이 있다. 주인공 엠마를 비롯해 <아이 엠 러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관계에 목마르고 따뜻한 체온이 그리운 사람들이지만 타인에게 안아달라고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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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내면의 거울

러시아에서 온 엠마는 결혼을 통해 남편과 자신, 시부모님과 어우러진 유사가족 속에 들어와 있다. 거대하지만 잿빛같이 삭막한 대저택에서 엠마는 딱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만을 연기하며 살고 있다. 남편과 자식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등 적당히 거리를 둔 관계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아이 엠 러브>는 차갑고 황량해 보이는 겨울 장면에서 시작한다. 삭막하고 냉기가 흐르는 계절은 엠마가 겪고 있는 차갑게 가라앉은 마음과 겹친다. 대저택의 조명은 늘 어둡고, 미세한 표정을 숨기기 적당하다. 저택은 숨 쉬고 사는 사람의 공간이 아닌, 권력과 계급을 벽돌처럼 쌓아 지은 기형적 공간처럼 보인다. 단단하지만 그만큼 무거운 저택은 엠마의 발을 꼭꼭 묶어둔다.
반면에 엠마가 사랑에 빠진 안토니오의 산장은 하늘과 가깝다. 엠마는 지상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은 굳건한 저택에서 빠져나와, 비포장도로를 타고 올라, 누구도 쉽게 찾아오기 힘든 산장으로 들어간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하이힐을 벗고, 비로소 맨발이 되어서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에는 이방인이 자주 등장한다. 이방인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욕망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뒤흔든다. 엠마의 삶에 끼어든 안토니오 역시 이방인이다. 무겁고 품위 있는 척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저택에 들어선 순간, 그는 이물질처럼 겉돈다. 엠마는 홀로 저택에 숨어든 자신이 느끼는 그 불편한 이물감을 안토니오를 통해 공감한다.
자신의 이름이 키티쉬라고 흘려 이야기하는 순간, 엠마는 마치 은밀한 비밀을 고백하는 소녀 같은 태도를 보인다. 안토니오는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꼭꼭 숨기고 살아온 엠마에게 키티쉬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아준다. 동질감을 얻은 후에는 강한 욕망이 뒤따른다. 엠마가 안토니오에게 감각적 욕망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감독은 음식을 통해 표현한다. 안토니오는 요리를 통해 엠마의 색(色), 그 낯선 감각을 일깨운다.
시어머니와 함께 안토니오의 식당에서 새우의 탱탱한 살을 잘라 입에 넣는 순간, 엠마는 종소리를 듣는다. 혀와 치아로 맛의 희열을 느끼는 순간 엠마를 환하게 밝히는 빛 속에서 그는 삶의, 감각의, 감춰진 욕망의 오르가즘을 느낀다.엠마가 안토니오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

감정(感情)의 감정(鑑定)

모든 감각이 열리는 순간, 엠마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질문과 마주한 것처럼 보인다. 그 질문이 내 삶과 맞닿는 순간, 관객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는다. 엠마는 나침반을 읽을 줄 모르는 길치처럼 화살표만 내려다보며 멈춰 서 있었다. 정체성을 (되)찾는 것은 지도를 보는 법을 깨치는 것과 비슷하다. '나'를 깊고 뚜렷하게 자각하는 순간, 나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시점을 굳이 글쓰기의 시점에서 이야기해보자면 3인칭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관객들이 캐릭터와 함께 감정의 격랑 속에 휩쓸리지 않도록 계속 거리를 둔다. 그래서 관객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와닿은 감정(感情)을 감정(鑑定)하게 만든다. 관객의 마음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 <아이 엠 러브>의 결말은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잘 읽어야 한다. 책. 타인의 생각. 행간의 의미. 상대의 표정. 활자의 감정. 말줄임표가 담은 말.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오독해서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의 마음이다. <아이 엠 러브> 속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파국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으로 읽힐 것이다. 어쩌면 '그 누군가'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글 최재훈_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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