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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대학로의 붉은 벽돌 건물들시간은 그곳에 오롯이 남아
최근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로니에공원 일대를 자주 방문하게 됐다. 건축을 전공하고 공간사옥에서 꽤 오래 일했던 나는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요즘 남영동 대공분실 등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설계한 건물 안에서 공간을 경험하는 것은 퍽 특별한 일이다. 6년 동안 그가 설계한 공간사옥을 계절마다 경험하면서 벽돌이 주는 질감, 담쟁이를 비롯해 건물과 공생하는 자연이 주는 감성, 낮은 층고가 만드는 안온한 공간감, 툭툭 튀어나온 입면이 주는 리듬감 등 일반적인 건물에서 찾기 힘든 건축의 힘을 알게 됐다. 건물이라는 물리적인 구조체를 넘어 여러 사유의 조건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건물(building)을 건축(architecture)으로 읽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관련사진

1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는 건축가 김수근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벽돌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2 마로니에공원에 심은 나무가 아르코미술관의 벽돌 벽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30년을 맞이한 건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는 김수근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벽돌 건물을 군집으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마로니에공원을 에워싼 모습으로 배치된 아르코미술관(구 미술회관)과 아르코예술 극장(구 문예회관) 그리고 최근 공공일호로 단장한 샘터 사옥까지 혜화역을 나오자마자 만나는 검붉은 풍경은 인상적이다. 서울대 문리과 캠퍼스가 관악구로 이전하면서 생긴 빈 땅에 들어선 아르코미술관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다. 아르코예술극장도 1981년에 완공되었으니 거의 서른 살에 가까운 셈이다. 1980년대 중후반은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등 국제적 규모의 메가 이벤트로 서울이 들썩거렸던 시기다. 이때 서울을 세계적인 수도로 알리기 위한 문화시설 조성사업이 본격화되었다. 국가 주도의 문화시설인 예술의전당,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올림픽 조각공원 그리고 여기 미술회관, 문예회관 단지가 이 시기에 조성되었다.
한국에서 건물 수명이 30년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 건축은 때론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로마의 판테온처럼 1,000년을 넘는 영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한국에서는 좀 다르다. 오래된 것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고 도시의 숱한 건물들은 자취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특히 아파트 재개발 연한이 30년이기에 이 시점이 한계선이다. 30년이 지나면 재개발 대상이 되는, 혹은 되어야만 하는 우리 주거 문화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 건축을 서울 한복판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롭다. 그것도 한 건물이 아닌 여러 채가 넓은 장소를 점유하며 만든 집합적인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군집이 만든 도시 방파제

아르코미술관을 비롯한 붉은 벽돌의 형제 건물은 대학로의 상징으로 주변 일대의 급격한 변화를 희석시키는 기능을 한다. 대학로 안쪽 골목으로는 끊임없이 공간의 주인과 용도가 바뀌는 한편, 그 변화를 시각적으로 막아주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벽돌 건물들이 품은 마로니에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한가로워 보인다. 그 때문인지 이곳에서의 시간은 유독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다. 현재 모습의 마로니에공원을 설계한 고(故) 이종호는 김수근의 제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대학로 일대의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사회운동가에 가까운 건축가였다. 그의 바람대로 설계가 온전히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필자가 이곳을 방문하며 바라본 마로니에공원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한 건축물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의도로 설계했는지를 모든 시민들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장소를 설계한 사람의 선한 의도대로 쓰이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서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2019년의 봄은 미세먼지로 시작돼 우울했지만, 북풍과 함께 모처럼 만난 파란 하늘이 여기 붉은 벽돌 건물들과 상쾌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마로니에공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가 아르코미술관의 벽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은 진부한 수사지만 정말로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어떤 장소를 소요하며 만나는 이러한 뜻밖의 장면은 귀하다. 이런 것들을 발견할 때 건축은 경이로워진다. 아르코미술관에서는 3월 말 젊은 김수근과 그의 팀을 소재로 한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전이 개막되며, 여름에는 이종호의 유산을 여러 예술적 실천과 함께 살펴보는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사람의 인생은 유한하지만, 그들이 남긴 건축은 좀 더 오래 남아 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수근의 벽돌 건물 인근에 있는 동숭아트센터도 곧 예술청으로 새롭게 변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건물이 시간에 따라 용도와 역할을 달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라지더라도 어떤 기록을 남기고 가야 한다. 붉은 벽돌 건물들이 지금처럼 묵직하게 여기에 남아, 오랫동안 대학로의 문화적 시간을 지켜주길 바란다.

글·사진 정다영_
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공간> 기자를 거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전시 기획과 시각문화 연구를 진행하며, 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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