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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박원순과 조용필그들의 투 트랙 전략
대중성과 예술성을 놓고 고민하던 가수 조용필이 원하는 곡이 아닌, 기획사가 주문하는 곡만 불렀다면 더 많은 앨범을 팔 수 있었겠지만, 스스로 음악하는 이유를 찾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에게 도시재생이 딱 그렇다.

관련사진

1 '서울로7017' 개장 전 서울 중구 서울역 고가공원 주변 모습.

2 질병관리본부 녹번동 터에 들어선 서울혁신파크 전경.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

인터뷰한 예술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가수 조용필이다. 일단 답이 단답식이다. 인터뷰어가 가장 힘들어하는 인터뷰이가 바로 이런 사람인데 그가 그렇다. "네." "뭐 그렇죠." "그럼 그런 걸로 하죠." 이런 식으로 짧게 받아치고 만다. 이러면 난감하다. 기사에 쓸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엉거주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뜸을 들여야 한다. 담배 한 모금 깊이 빨고 연기 내뿜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면 진심 어린 그리고 진지한 답변이 돌아온다. 생각할 시간을 준 만큼 숙성한 답변이 나온다. 왜 집과 정해진 식당과 정해진 연습실만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단순한 삶을 사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음악을 하지 않는 순간에는 숨만 쉬고 싶다"라는 뼈를 때리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 조용필도 대중성과 예술성을 놓고 갈등해야 했다.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 그가 하고 싶은 음악 사이에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성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할 것인가. 결국 그는 중도적인 방식을 택했다. 한 번은 기획사가 하라는 대로 하고 한 번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타협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던 앨범을 꼽아주었다. 예상대로 그 앨범들은 상대적으로 흥행에 실패한 것들이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하면서 그의 트로트 곡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에게는 록커의 영혼이 흐르고 있었다. 회사의 뜻대로 만든 앨범을 '컴퍼니 트랙'이라 한다면 그가 자신의 뜻대로 만든 앨범은 '프라이빗 트랙'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들은 당시에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최근 젊은 세대에게 재발견되며 부활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어찌 보면 미래의 음악을 미리 당겨서 했던 셈이다.

하고 싶고 반드시 해야 할 일

조용필의 '프라이빗 트랙' 곡에 해당하는 것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재생 정책이 아닌가 싶다. 그 곡들을 발표하지 않고 기획사가 주문하는 곡만 불렀다면 조용필은 더 많은 앨범을 팔 수 있었겠지만, 음악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에게 도시재생이 딱 그렇다.
도시재생은 전면 재개발에 비해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래 걸린다. 도시재생의 핵심은 새로운 사회 생태계의 구축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 부작용은 빠르고 선명하게 나타난다. 눈높이는 한껏 높여 놓았는데 결과가 나오기 전에 부작용이 먼저 부각되어 문제 있는 사업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목포에서 벌어진 손혜원 의원의 목포 원도심 건물 매입 논란의 유탄을 맞기도 했다.
손혜원 의원 사태 이후 도시재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도시재생은 그동안 전면 재개발에 대한 대안으로, 현장의 활동가들은 도시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찾는 운동가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손혜원 의원 논란 이후 도시재생을 보는 시선이 냉정해졌다. 도시재생은 전면 재개발과 차별화되지 못하고 변주된 형태로 받아들여지며 다양한 비판을 듣고 있다. 도시재생 활동가들에 대한 시선도 이제 운동가가 아니라 개발 정보를 가진 사람들로,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보게 되었다.
도시재생 전문가들은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대규모 사업과 함께 주민 참여형 소규모 사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재생에는 이런 섬세함이 요구되는데 박원순 시장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일찍부터 진행해왔다. 도시재생을 위한 하드웨어 사업과 함께 소프트웨어 사업도 진행한 셈이다. 도시재생의 중간 지원기관인 도시재생센터를 곳곳에 만들어 서울형 도시재생의 매뉴얼을 정립하고 문화적 도시재생 등 최신의 도시재생 방식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3기에 접어들었지만 도시재생의 성과물은 거둬들이지 못한 채 부작용만 부각되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곳은 서울혁신파크다. 많은 야당 정치인들은(심지어 여당 정치인도) 이곳을 전면 재개발해 강북의 코엑스로 만들고 마이스(MICE) 산업 중심지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박원순 시장이 커다란 언덕이 되어 버티고 있지만 아마 다음 시장이 들어서면 첫 번째로 할 일이 이곳을 밀고 전면 재개발에 나서는 일일 것이다.
임기 초반부터 진행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비롯해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은 여기저기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여전히 티가 안 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을 흔들림 없이 집행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가 시장이 된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싶고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정책, 박원순 시장에게는 그것이 바로 도시재생이다. 그런 것을 하지 않으면 조용필이 노래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박원순 시장도 시장을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3기에 들어서 박원순 시장은 조용필처럼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그는 여의도와 용산을 대규모로 전면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시재생으로는 시정 성과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도시재생은 변함없이 진행한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박원순 시장에게도 제2의 전성기가 올지, 그의 뚝심이 재평가받을 날이 올지 말이다.

글 고재열_시사IN 기자
사진 제공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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