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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친구, 나의 첫 번째 타인
괴괴한 소동의 시간이다. 아이들이 겪는 매일 매일은 그렇게 혼란 속에 갇혀 있지만, 종종 무심한 어른들의 말과 시선은 아이들의 맘에 가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증발한다. 어른들은 자신들도 치열하게 겪었던 일들을 되짚어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상이 그저 안온한 평화의 시간이라 믿는(믿고 싶어 한)다. 사실 새 학년이 시작 될 때마다 아이들은 어떤 친구를 만나, 어떤 관계를 맺을지 두렵다. 아이들에게 친구는 가족 이외에 처음으로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첫 번째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가 내게 돌린 등짝이 그 어떤 것보다 무섭다. 때문에 누군가를 괴롭히고 고립시켜서라도, 더 강한 결속력으로 자신을 친구들과 단단히 묶어두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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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괴괴한 시간 속, 우리

주인공 선의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일 있을 게 뭐 있어? 그냥 학교 가고 공부하고 친구하고 잘 놀면 되지.”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안온한 일상으로 받아들이지만,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그들은 매일 생존의 문제를 겪는다.
영화 <우리들>에서 관계가 어려운 주인공 선에게 학교, 공부, 친구는 모두 지독하게 어려워 풀기 힘든 숙제와도 같다.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린 소녀에게는 치열하고도 지독한 짐이라는 것을 이해할 리 없는 부모 앞에서 관계에 서툴고 표현에 능숙하지 못한 소녀 선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우리들>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지독해서 끝내 생채기를 입는, 서툴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 그 생존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그 성장의 과정 속으로 쑥 들어간 카메라의 시선 속에 유년시절의 낭만이나 교과서 같은 교훈이 끼어들 틈은 없다. 당연히 관조적인 결말에 이르지도 않고 대안을 내놓지도 않는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이 왕따를 겪는 선의 감정 속으로 깊이 들어가 편을 먹지도, 누군가를 괴롭혀 끝내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보라에게 딱히 적대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윤가은 감독은 끝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법도 없이 11살 소녀들의 이야기를 훑어낸다.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선에게 학교는 고독하고 힘든 공간이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데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교실 앞을 서성이던 전학생 지아는 그래서 선이에게 특별하다. 금세 친구가 된 두 소녀는 방학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또래 소녀들처럼 누구에게도 쉽게 말한 적 없는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다시 만난 지아는 달라져 있다. 선을 계속 괴롭히던 보라의 곁에서 지아는 계속 선을 밀어낸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오해가 쌓이면서 선과 지아는 끝내 서로만 알고 있어야 할 비밀을 아이들 앞에서 토해내고 만다. 상대방의 말이, 미처 꺼내지 못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말이 되는 순간 무너져버리는 위태로운 관계를 지탱하는 것이 결국 외면과 부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오롯이 나를 방어하려는 말은 타인에게 폭력이 된다. 이미 알고 있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다시 생채기가 되어 돌아온다.

이토록 서툰 시간 속, 우리

영화 속에는 세 번의 피구 장면이 나온다. 편 가르기에서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하고, 날아오는 공 한 번 맞아보지 못한 채 금을 밟았다며 바깥으로 몰려나버린 소녀는 여전히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밀려난다. 윤가은 감독은 진심과 적의를 능숙하게 감춰내지 못하고 너무나 투명해 곧 깨져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한 아이들의 질투와 두려움을 피구 장면을 통해 내밀하게 포착해낸다.
<우리들>은 11살 소녀들의 풋내 나는 관계 속에서 우리들이 끝내 풀어내지 못했던 어긋난 관계의 어려움과 그 지난하고 답답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무언가를 감추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소녀들은 진심에 가닿지 못하고 자꾸 서로의 마음을 튕겨내거나 뜻하지 않은 순간 뒤통수를 가격한다. 여기에 여전히 자라서도 관계가 서툰 어른들의 모습을 살포시 겹쳐둔다. 손 한 번 제대로 잡지 못하고 용서하는 법도 없이 미워하던 아비를 잃고 통곡하는 선이의 아버지는 자식들과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서툰 모습을 보이는데, 뒷모습이 쓸쓸한 우리 어른들과 아주 많이 닮았다.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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