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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소설가 김소윤 ‘공무원 소설가’의 이중생활
소설 <난주>로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김소윤 작가는 ‘공무원 소설가’라는 수식어로 통한다.
전주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 소설가라는 어린 시절의 꿈을 뒤늦게 이뤄냈다.
버거운 업(業)의 무게를 이겨내며 더디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간 그의 도전기를 전한다.

관련사진

1. 전주시청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김소윤 작가.

2. 하루 일과를 마친 후 글을 쓰는 작업 공간.

3. 4년 만에 완성한 소설 <난주>.

비예술적인 선택의 세 가지 조건

처음 작가를 동경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서재 한편에 가득한 소설들에 푹 빠져서 한 장 한 장 줄어드는 책의 부피를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면서, 인물들의 앞날을 손에 쥐고 있는 작가의 ‘전지적’ 권력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렇게 품었던 작은 불씨가 조금씩 커지면서, 작가라는 꿈이 된 것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 때 처음 완성한 장편소설은 모든 공모전에 낙선했고, 호기롭게 응모한 몇 편의 단편소설도 심사평에 겨우 거론되는 정도일 뿐. 누구도 내 소설을 기다려주지 않았고 열광하는 이도 없었다. 아마 대학 4년 동안 확실히 입증한 것이라고는, 내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작가 지망생이라는 정도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포기하겠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내게 소설은 다른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불가분의 대상이었고, 그것이 설령 아무런 보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쩌면 그때 부터 보다 현실적인 방식의 소설 작업을 구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꿈’과는 조금 다른, 현실적인 업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내게 있어 업이라는 것은 확실히 생계를 도모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소위 글쟁이가 글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으나, 당시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나는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첫 번째 조건은,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얻는 결과가 비교적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설이 누군가의 평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직업만큼은 공채 등의 과정을 통해 내 노력이 정확한 점수로 환산되는 쪽의 일을 하고 싶었다. 두 번째 조건은,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거창한 기여나 변화가 아니더라도, 공공의 이익 내지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를 바랐다. 세 번째 조건은, 생활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소설을 쓰는 일이 비현실적인 가상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고독한 정신작용이라는 점에서, 일상만큼은 뿌리를 단단히 박고 디딜 수 있는 땅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이러한 생각들은 어쩌면 너무나 비예술적인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된다면 나 자신을 위한 밥벌이를 귀하게 여기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소설만큼이나 사랑할 자신도 있었다. 현실이 없다면 이상도 없고, 어떤 꿈이든 하루아침에 뚝 떨어지듯 내 것이 될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공직자가 되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추운 겨울날, 노량진의 비탈길을 오르면서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수없이 되묻기도 했고, 참다 참다 달려간 서점에서 산소를 들이마시듯 책 냄새를 맡으며 내가 얼마나 소설을 쓰고 싶은지 뼈저리게 깨닫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터널을 지나야만 다음의 길이 열린다고 믿었다. 마침내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 석 자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쁘고 후련했던지 모른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어떤 현실이든 기대나 생각과 같을 수 있으랴만, 공직자 생활은 걸음마를 새로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때론 방황하고 때론 일에 열중하느라 숱한 시간이 지나갔다. 마음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소설을 다시 꺼내든 것은, 공직에 들어서고 5년이 흐른 뒤였다.
자신은 없었다. 오히려 재능의 부재를 확인하는 일이 두렵기만 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시원스레 말했다. 두려움은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아서 생기는 감정인데, 잃을 것도 없지 않느냐고. 그 말이 용기가 되어 몇 편의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신춘 문예에 당선되면서, 나의 이중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의 직업생활과 창작 활동은 굉장히 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 큰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평소엔 공직자로서의 일상과 업무를 최우선으로 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재우고서야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시간은 한정적이다. 피로도 몰려온다. 한껏 의욕적으로 책상에 앉아보지만, 노트북이나 원고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도 많다. 그래도 쓸 원고가 있으면 자리를 뜨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몇 줄의 글을 써나간다.
이렇게 써나가는 원고는 속도가 더디다. 속도는 더디지만, 오랫동안 숙고하며 공들여 쓸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최근에는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은 <난주>라는 소설이 발간되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몇 줄씩 써나가느라 완성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당선된 후 발간되기까지 퇴고와 수정 작업에 또 수개월이 걸렸다. 숱한 시간 동안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한 권의 책을 완성한 셈이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떤 일도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작업들이 힘들기보다 즐겁다. 오히려 힘든 것은 작품이 어떤 벽에 부딪혔을 때다. 그런 때에도 오래 망설이지는 않는다. 묵묵히 고민하며 쓴다. 처음 이야기했다시피, 소설은 내게 불가분의 존재이고 그것 없이는 이미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인으로서 조직에서의 업무 스트레스가 왜 없겠는가. 업의 무게는 나에게도 똑같이 버겁다. 그러나 그 또한 내 일부이고 소중한 경험의 자산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도 내게 현실이 되어주고 땅이 되어줌에 감사하면서….
‘공무원 소설가’라는 말을 들었다. 두 단어가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내면에 모순적인 양면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내 안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혹은 지극히 이상적인 두 부분이, 비교적 심하게 갈등하지 않고 협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울러 말하고 싶다. 마음에 꿈을 품고 있다면, 한정된 조건일지라도 최선을 다해보라고. 비록 당장의 결과가 아쉽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빛나는 도전이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꿈’이 가지는 가치이기에.

글·사진 제공 김소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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