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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얀 고즐런 감독의 <완벽한 거짓말>하늘 아래 새로운 것의 유혹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매일 다르게 변주되어 쏟아져 나온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남들이 앞서 하는 것 같다. ‘어라. 저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잖아?’ 마치 내 아이디어를 누군가 훔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만의 어법으로 창조하는 창작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작가(혹은 작가 지망생)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내 재능이 도달할 수 있는 창작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겨우 쥐어짜서 만든 한 편의 작품 이후에도 창작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아무리 죽도록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들을 앞설 수는 없다는 것. 그런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훔쳐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관련사진

1, 2 영화 <완벽한 거짓말>.
3 영화 <태양은 가득히>.

네가 가진 그것, 내 것이어야 했을…

얀 고즐런 감독의 2014년 작 <완벽한 거짓말>(A Perfect Man)은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타인의 글을 훔친 소설가 지망생의 파국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생계를 위해 청소회사에서 일을 하는 소설가 지망생 마티유(피에르 니네이)는 완성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매일 다르게 변주되어 쏟아져 나온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남들이 앞서 하는 것 같다. ‘어라. 저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잖아?’ 마치 내 아이디어를 누군가 훔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소설을 출판사에 보내지만 매번 거절당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망감에 빠져 우울한 날을 보내던 그는 죽은 노인의 집을 청소하다가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한다. 우연히 펼쳐본 수첩에는 알제리 전쟁 참전 병사의 길고 자세한 일기가 적혀 있다. 이야기에 매료된 마티유는 일기를 훔쳐, 마치 자신의 소설인 양 발표한다.자신에게 냉정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바뀐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갈 수 없다. 두 번째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점점 커져가고,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을 멈출 방법이 없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결국 마티유의 자아 분열은 살인으로 나아간다.
<완벽한 거짓말>은 훔쳐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작가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영화의 완성도가 빼어나거나 매끄럽진 않지만, 마티유 역의 피에르 니네이는 조용한 광기, 약자의 폭력이라는 어려운 캐릭터를 믿어봄 직하게 연기하면서 영화의 빈틈을 채워준다. 분명한 악인이지만, 관객들이 그의 욕망에 동의하고 그를 응원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사실 마티유가 처한 영화 속 공포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공포에 다름 아니다. 훔쳐서 얻었건, 온전한 자신의 창작이건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을지, 그것도 잘 쓸 수 있을지, 우연히 얻은 성공에 이어 존중받는 작가로 남을 수 있을지, 작가라면 늘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창작을 위해 빼곡히 적어놓은 노트의 글들이 내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 순간, 어쩌면 내 머리의 기억이, 떠도는 문장들이 나의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속일 수 없는 마지막 한 사람

2010년 개봉한 한국의 공포영화가 있다. 표절 논란에 휩싸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분열을 그린 영화였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개봉 당시 이 영화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들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이다. 표절을 다룬 작품의 표절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표절 작가의 파멸을 다룬 <완벽한 거짓말> 역시 온전히 새로운 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브라이언 크러그만 감독의 2012년 작품 <더 스토리: 세상에 숨겨진 사랑>과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상당히 유사하다. 더불어 영화의 정서적 분위기는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 작 <태양은 가득히>를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고 할 만큼 유사하다. 이러니 아이러니하달 밖에. 여기에 국내 문단의 몇 가지 이슈가 겹쳐진다. 몇 해 전 공모에 출품된 작품을 심의위원이 표절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사례가 있었고, 중견작가의 표절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 침묵이 만드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일종의 단단한 카르텔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오늘도 여전히 타인의 아이디어를, 문장을, 혹은 영혼까지도 훔쳐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요행히 세상의 모든 사람을 속였노라 안심하고 있겠지만, 아무리 완벽한 거짓말이라도 끝까지 속일 수 없는 유일한 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거짓말을 하는 자기 자신!

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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