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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갤러리 미술세계틈 속 계단의 유혹
집에서 문만 열어도 계단이 놓여 있다. 회사에 가도, 학교에 가도, 가까운 카페에 가도 계단이 기다린다. 어디를 가도 계단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친근하게 마주치는 계단이 때로는 건물 전체를 대변하기도 한다. 인사동에 하나의 건물을 둘로 나누고 그 사이에 생긴 틈에 계단길을 만들어 특별한 공간을 선사하는 건물이 있다. 지금은 갤러리 미술세계로 바뀐 이전의 덕원갤러리가 바로 그것이다.
관련사진1 인사동길에서 올려다본 적삼목이 박힌 정방형 매스.

인사동 속 정체성

인사동4길의 모서리에 있는 갤러리 미술세계는 리모델링 전, 40여 년 된 5층 높이의 육중한 검은색 건물이었다. 권문성 건축가가 리모델링해 2003년,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1960~70년대에는 극동방송국, TBC방송국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덕원갤러리 시절에는 오랫동안 1층은 은행으로, 2~5층은 전시실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1층과 2층에 인사동 거리와 어울리는 전통 공예품 판매장이 들어섰고, 3~5층은 전시장으로 꾸며졌다. 4층의 옥상정원은 3~5층에 위치한 전시장 중앙에서 휴식과 옥외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갤러리 미술세계는 4개의 외벽 디테일에 따른 4개의 다른 매스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덩어리를 4개의 매스로 분절한 이유는 인사동의 주변 분위기에 맞추고 스케일을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인사동길 전면에 파기와를 회벽과 함께 쌓아올려 옛날 담장과 같이 친근하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느낌을 살린 벽으로 된 3층 매스, 수평목재 널 커튼월로 된 5층 매스, 적삼목이 촘촘히 박힌 노출 콘크리트 정방형 매스, 그리고 종석몰탈 거친 마감으로 된 수직 매스 등 하나의 건물이 다양한 크기로 구분되어 있다.
인사동길에 면해 있는 3층 매스는 정면에서 보면 다른 건물로 느껴질 정도로 독립적이지만 2층과 3층은 그 뒤의 5층 매스와 계단으로 연결된다. 주변 건물들과 높이를 맞추기 위해 5층 높이의 건물 앞쪽을 3층으로 낮추어 인사동길의 보행에 조화롭게 대응하고 있다. 전면 3층 매스 위로 적삼목이 박힌 벽으로 이루어진 정방형 매스는 독립적인 형태로 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캔틸레버와 함께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기둥을 받쳤다. 이 매스는 3면에 창이 없다. 노출 콘크리트에 80×80×450mm의 적삼목을 230mm 간격으로 가로와 세로로 박아 개성을 살렸다. 도로 모퉁이에 면한 종석몰탈 거친 마감으로 된 수직 매스에는 전망 엘리베이터와 기계실이 있다. 외부에서 엘리베이터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여 수직성이 더욱 강조된다. 5층 매스는 두께 50mm, 폭 300mm로 이루어진 적삼목이 루버를 이루며 수평성을 강조한다. 건물 틈 사이의 수직적 계단과 어울려 그림자가 질 때면 수평선이 더욱 강조되어 강렬한 공간감을 준다. 갤러리 미술세계는 인사동과 어울리는 파기와, 전돌, 적삼목 같은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거리에 색다른 표정과 활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관련사진2 갤러리 미술세계 건물 틈 사이, 유혹하는 계단이 보인다.
3 직선의 휘어진 계단길을 통해 모든 공간을 연결한다.
4 데크가 깔린 4층의 야외 휴식 공간. 인사동길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쉴 수 있다.

틈에서 만난 계단

인사동의 건물들은 ‘길’이라는 요소를 유용하게 활용한다. 쌈지길은 인사동 골목길을 ‘ㅁ’ 자형의 중정을 감싸 안은 완만한 경사로를 통하여 만들어냈다. 그에 반해 갤러리 미술세계는 집 속의 골목처럼 직선의 계단을 중심으로 각 공간들이 연결되어 있다. ‘길’을 경사로와 계단이라는 수직성으로 표현한 것이다. 계단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의 시설이 나오기 전까지 건물 내에서 유일하게 수직 이동을 담당하는 공간이었다. 계단이라는 사선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체험적 현상은 건물에 활기를 주며 상징적인 의미를 더한다.
갤러리 미술세계는 건물 틈 사이에 조성된 외부의 직선 계단을 중심으로 갤러리 공간과 상업 공간을 나눈다. 단순한 수직동선이 아닌 인사동 골목을 건물의 내부까지 확장시키는 장치로서 사용된다.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계단을 통해 4층까지 갈 수 있는데, 약간 휘어지는 계단을 올라갈수록 그 폭이 좁아져 상대적으로 더 높고 더 깊은 듯한 공간의 착시효과를 준다. 이 외부 계단길은 모든 층으로 직접 연결되며, 계단을 오르면서 쇼윈도와 목재널 사이의 유리를 통해 각 층 내부를 볼 수 있다. 계단길의 남측 끝부분에 도착하면, 유턴해 다시 직선의 계단을 따라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이어져 있다. 계단길은 인사동길을 산책하듯이 주위를 감상하며 올라갈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계단길을 걸으면 건물에 사용된 모든 재료들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한식기와 쌓기벽, 수평목재 루버벽, 노출 콘크리트 위 적삼목벽 그리고 종석몰탈 거친 마감벽까지 하나하나 체험하는 독특한 장면을 연출한다. 계단길은 건물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옥상까지 이어주면서 자연스럽게 거리의 동선과 시선을 끌고 들어와 소통의 공간을 형성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 외부는 간판, 현수막, 접이식 차양 등으로 건물의 본모습을 가리고 있다. 외벽의 돌출된 부재 사이사이에는 먼지가 쌓였다. 계단길은 3층에 유리문이 만들어져 수직적 상징성이 감소되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출입이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 미술세계가 덕원갤러리를 인수하여 ‘갤러리 미술세계’로 건물명을 바꾸고, 2016년부터는 미술세계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초기의 모습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하다.

글·사진 이훈길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천산건축 대표. 건축사이자 도시공학박사이다. 건축뿐만 아니라 건축 사진, 일러스트, 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를 걷다_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시건축, 소통과 행복을 꿈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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