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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엘 시스테마’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음악으로 희망을
1975년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달동네가 매일 10m씩 늘어나고 있었다. 당시 36살이었던 경제학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이 위험한 슬럼가에 직접 찾아갔다. 이곳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브레우 박사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7~8살의 아이들이 마약을 하고 권총 강도 질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래서는 베네수엘라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하고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궁리했다. 음악가정에서 자라나고 피아노를 쳤던 그는 빈민가의 주차장에서 11명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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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같은 악기 연주

아브레우 박사는 방과 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이론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악기를 무상으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적으로 만들었다. 보통 어린 시절 악기를 처음 배울 때, 누구나 독주 악기로 배우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브레우 박사의 생각은 달랐다. 악기를 잘 못 다루는 아이가 있더라도 혼자 연습해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연주하면서 맞춰나갔다. 그래서 아이들이 악기 연주를 축구나 야구, 인형놀이를 할 때처럼 즐겁게 여기도록 했다.
빈민가의 아이들은 음악에서 희망을 찾았다. 하루 종일 악기 연주 시간을 기다렸고 오케스트라를 만든 학교들이 전국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연주하고 싶은 아이들은 점점 많아졌지만 오케스트라의 숫자는 한정되어 4관 편성으로 인원을 짜도 124명이 최대였다. 이를 위해 오케스트라의 인원 제한을 없애고 160명 오케스트라부터 300명, 500명, 1,000명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대규모로 운영했다. 이 모든 일은 아브레우 박사가 주도했다. 결국 43년이 지난 오늘날 베네수엘라에는 청소년 관현악단 120여 개와 유소년 관현악단 60여 개가 존재한다.
현재 노르웨이 스타방게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엘 시스테마 출신의 크리스티안 바스케스는 “다른 나라에서는 어린 나이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가 쉽지 않지만 베네수엘라에는 지휘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많다. 이런 지휘 경험이 나를 전문적인 지휘자의 길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엘 시스테마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로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시몬 볼리바르 국립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꼽힌다. 두다멜은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지휘를 해야 할 음악선생님이 연습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등을 떠민 친구들의 장난으로 지휘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장난스러웠던 아이들도 두다멜의 지휘가 시작되자 곧 진지하게 변했다. 뒤늦게 온 선생님도 두다멜의 실력을 확인하고 그때부터 지휘를 맡겼다.
아브레우 박사는 두다멜을 세계적인 지휘자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그는 아바도, 래틀, 곽승 같은 훌륭한 지휘자들에게 지휘를 배우게 했다. 두다멜은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청소년 교향악단)와 해외 투어를 갈 때마다 아브레우 박사와 동행했고, 공연이 끝나기 전 언제나 청중에게 그를 소개했다. 지난 3월 25일 아브레우 박사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두다멜은 자신의 SNS에 아브레우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후 “나의 멘토이자 엘 시스테마의 아버지인 그에게 영원한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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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넘어 전 세계로

베네수엘라에서만 100만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그램으로 발전한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남미 전역은 물론 두다멜이 진출한 미국에서는 LA를 비롯한 뉴욕, 마이애미, 시카고 등 대도시의 빈민가에 엘 시스테마가 전파됐다. 두다멜이 지휘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접한 유럽 클래식 음악계는 클래식을 지나치게 엘리트 위주로 교육했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2008년 아브레우 박사는 두다멜이 지휘하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진출시켰다. 이후 지금까지도 매년 양대 페스티벌인 잘츠부르크와 루체른에서 이들을 초청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이들에 대한 유럽 음악계의 지지를 읽을 수 있다. 이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성장함에 따라 시몬 볼리바르 국립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엘 시스테마는 아시아에도 진출했다. 일본판 엘 시스테마 오케스트라는 지금도 활약 중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엘 시스테마를 받아들였다. 2010년 아브레우 박사에게 서 울평화상을 수여했으며, 한국형 엘 시스테마 ‘꿈의 오케스트라’를 시작했다. 일례로 초등학교 저학년인 1~3학년 아이들에게는 피아노를 배우게 하고, 4~6학년 아이들에게는 클라리넷을 교육시킨다. 학부모들도 함께 배우는 음악실기 특성화 교육을 실시해 학생들을 유치, 폐교 직전의 학교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브레우 박사가 주창한 엘 시스테마는 세계 30여 개국으로 퍼져나갔고 각국 유소년 음악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엘 시스테마의 가장 큰 성과는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준 것이며, 그 자존감은 시민정신으로 자리 잡아 베네수엘라의 마약, 빈곤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엘 시스테마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어렵고 마약은 골칫거리다. 하지만 평생 클래식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아이들에게 클래식을 통해 인생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많은 청년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빈곤한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 장일범 음악 칼럼니스트. 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과 MBC 를 진행하고 있다.
그림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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