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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믿을 님 있는 세상을 위하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구나, 하는 말을 한숨처럼 많이 하는 시간들이다. 가장 엄밀하고 공정해야 할 검찰 내부에서 터져 나온 성추행 고백은 연극, 영화, 체육, 문학, 학원, 연예계에 이어 정치권으로 이어졌다. 논의들이 폭발하는 사이, 더불어 여성 혐오와 젠더 문제, 허위 제보와 성정체성이 아우팅당하는 일과 음모론까지 더해지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중심을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폭행, 성추행으로 논의가 집중되어 있지만 폭언과 폭행, 희롱과 추행을 모두 포함한 폭력의 문제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다. ‘그렇게 해서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것 같아?’란, 대항하기 주춤거리게 만드는 겁박과 두려움을 바닥에 깔고 시작해야 하는 관계들, 좁은 바닥과 밀도 높은 권력, 그리고 그들만의 단단한 결속력 앞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날았다 사그라졌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게 생존이었을 사람들이 용기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련사진실제<보스턴 글로브>기자들

올곧은 언론의 태도, 그대로의 영화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나는 많은 폭력들이 권력형 성범죄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더불어 동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가 가진 문제점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클릭 수가 광고로 이어지는 온라인 매체들은 정확하고 엄밀한 취재에 앞서 특종, 속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폭로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이 갖춰야 할, 세상을 바꾸는 언론의 진심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올곧게 보여주는 영화다. 맥카시 감독은 영웅담을 펼치거나,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영화 속 <보스턴 글로브>의 기자들은 특종과 폭로에 목매지 않고 진실을 찾아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한다. 올곧고 강직하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피해자들을 보호한다.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면 더 큰 조직의 문제가 묻힐거라는 생각으로 온 세상이 9.11 테러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비리와 진실을 찾기 위해 진심을 바친다.
영화 속 이야기는 실제 벌어졌던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의 집단 성추행 사건을 다룬다. 어린 시절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상처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영화는 개인이 아닌, 괴물이 된 거대 조직이 어떻게 문제를 방조하고 악화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중심축은 ‘스포트라이트 팀’ 이라는 바른 언론 조직 시스템과 각각의 이익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기 급급한 교구-법조계-방조하는 언론이라는 더 큰 사회 조직의 대결이다.

관련사진

불 켜진 발밑,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실 온전히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인 것 같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처럼 내 마음은 쉽게 주인을 바꾼다. 스스로 비겁하다고 느끼지만 용기를 내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아주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항하기에 앞서 마음을 등지는 법을 먼저 배워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정의라 불리는 마음의 표정은 꽤나 강직한데, 그 강직한 마음의 표정을 끝내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포트라이트>는 그 강직한 마음의 표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영화다. 그리고 그 화법은 꽤 믿음직하고 설득력 있다.
극적 효과를 위해 아슬아슬하게 실화가 주었던 충격을 더욱 선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는 격앙되지도 과열되지도 않은 태도로 진실로 걸어가는 보폭을 맞춘다. 욕심내고 싶은 극적 효과, 성추행이라는 이슈는 가급적 뒤로 미루고, 이슈가 숨긴 비밀을 밝히려는 언론의 의지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거대 조직의 압력과 사회적 함의 때문에 고군분투하던 스포트라이트 팀의 보도가 나간 후 피해자들의 전화가 빗발치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리고 보도 이후의 이야기는 더 큰 울림을 준다.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 이후, 최근의 미투 운동처럼 가톨릭 교구에서 벌어진 성추행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다. 이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진다. 최근의 미투 운동과 닮아 있다. 실제로 <보스턴 글로브>는 첫 번째 보도 이후 600개의 후속 기사를 연이어 내며, 피해자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린 늘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요. 갑자기 불을 켜면, 갑자기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죠.” 이 대사처럼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넘어지거나 다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미투 운동을 통해서 금기시되어 있던, 혹은 억눌려 있던 피해자의 절규가 촛불처럼 세상을 밝히고 있다. 눈이 번쩍 떠지는 순간, 우리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내 발밑의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치워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위해 용기를 내고, 우리의 발밑에 촛불을 하나씩 켜준 사람들을 위해, 우리 모두 촛불 하나씩을 움켜쥘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그리고 언론이 취해야 할 태도는 영화 속 스포트라이트 팀처럼 신중하고 차근차근한 발걸음이다.

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 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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