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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창경궁 대온실봄날의 햇살을 머금은 곳
유독 추운 겨울을 보냈기 때문일까. 봄날의 햇살이, 바람이, 그 냄새가 유독 반갑다. 이 봄날을 좀 더 느긋하게 즐기고 싶어 발걸음을 옮겨본다. 봄날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그곳, 창경궁 대온실로.
관련사진1 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창경궁 대온실. 앞에는 프랑스식정원과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2 창경궁 대온실은 수로가 둘러싸고 수목이 식재된 중앙부분, 작은 분재들이 창가 진열대에 놓인 복도 부분으로나뉜다. 2017년 보수 공사 때 바닥 부분에 있던 영국제타일을 복원했다.

식민화와 근대화의 장소,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동궐에 속하는 궁궐이다. 성종 13년경 수강궁을 확장하여 세 대비의 처소로 삼았다. 홍화문을 정문으로, 명정전을 정전으로 갖춘 독자적인 궁궐이었지만 창덕궁의 주거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주로 사용됐다.1)
고종황제는 경운궁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삼았지만, 순종황제는 1907년 즉위 이후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겼다. 이어 순종을 위로하고 국왕의 은혜를 백성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 안에 박물관, 식물원, 동물원을 설치했다.2) 이는 곧 왕의 궁궐이 일반에게 개방되고 일제에 의해 궁궐과 국왕의 지위가 격하되는 것을 의미했다. 궁궐에 있는 동물원이나 식물원이 특별한 건 아니었다. 17세기 중후반, 루이 16세는 베르사유 궁전에 동물원과 식물원의 시초가 되는 시설들을 설치했다. 6대주에서 잡아온 동물들을 6개의 방에 가두고 이들을 탑 위에서 구경하는 메나쥬리(Menagerie, 1668~1670), 근대적인 온실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가져온 오렌지 나무 3,000여 그루를 겨울 동안 보호하던 오렌저리(Orangery, 1684~1686)가 바로 그러한 시설들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루이 16세와 왕족들을 위한 것이지, 대중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궁궐이 공원이 되는 과정은 절대 권력이 시민 권력으로 대체됨을 의미한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프랑스 시민혁명에 의해 베르사유 궁전의 공간들이 비워지고 전용되며 나타난 현상이었다. 창경궁은 결과적으로 권력의 공간이 시민의 공간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 식민화의 개입이 있었다는 특수성을 띤다. 창경궁을 시작으로 경운궁, 창덕궁, 경복궁 등 남아 있는 궁궐들은 모두 공원이 되었고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1) 창경궁 대온실, pp.32~33.

2) 창경궁 대온실, p. 33.

관련사진3 동백꽃이 핀 3월의 대온실.

철과 유리로 세운 빛의 공간, 온실 혹은 선룸(Sunroom)

1909년에 만들어진 창경궁 대온실은 철제와 목제 프레임, 그리고 유리로 이루어진 투명한 건물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일본인 원예학자인 후쿠바 하야토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유학한 후 일본 신주쿠어원의 식물원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의 제안을 받아 이 온실을 설계했으며, 시공은 프랑스 회사가 담당했다. 건축가가 아닌 원예학자가 창경궁 대온실을 설계했다는 점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1851년 대영박람회 당시 건축된 영국의 수정궁(Crystal Palace, 1851) 또한 조경가인 조셉 팩스톤(Joseph Paxton)이 설계했다.
철과 유리로 온통 투명하게 처리해 빛을 가득 머금은 이 공간은 19세기의 최첨단 재료와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얇은 선재로 무거운 하중을 감당할 수 있는 철 덕분에 돌이나 벽돌로 막혀 있던 벽은 한없이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비워진 벽은 투명한 유리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또한 철제 기둥과 가벼운 유리 천장은 기둥 없는 내부의 큰 공간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곡물창고나 아케이드, 겨울정원 등에 적극 이용되었다. 그중 온실의 일종인 겨울정원은 바로크 시대부터 귀족들이 열대식물 등을 기르기 위해 만들었다. 19세기 들어서는 도시의 중산층을 위한 대중시설이 되었다.
사실 동물원이나 식물원, 박물관 등은 모두 제국주의의 산물들이다.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로 진출한 서구 유럽의 제국 열강이 이국에서 발견한 동물들과 식물들, 그리고 진귀한 유물들은 배에 실려 유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들을 분류하고 진열하는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등이 처음에는 왕이나 귀족들의 거처에, 이후에는 도시 도처에 등장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창경원의 식물원은 식민지 개척의 증거가 아닌 식민지화의 전초로서 등장했다. 식물원으로서의 온실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창경원이 최초였지만, 온실 혹은 선룸(Sunroom)은 비슷한 시기 지어진 서양인들이나 일본인들의 주택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110여 년 전 햇살을 머금어 늘 빛으로 풍부하고, 별도의 난방장치를 해 겨울에도 따뜻한 온실 혹은 선룸에서 사람들은 이국적인 식물들, 계절을 벗어난 식물들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도심 속 궁궐에서 즐기는 봄날의 산책

일제강점기 창경원은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뿐 아니라 벚꽃놀이 장소로도 사랑을 받았다. 4월이면 사람들은 1,100여 그루의 벚꽃으로 가득한 창경원에서 꽃놀이를 즐겼다. 1924년부터는 야앵(夜櫻), 즉 밤벚꽃놀이가 시작되어 밤의 놀이 장소로도 유명했다.이후 1983년, 창경궁 복원 계획에 따라 동물원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고, 벚꽃나무도 100그루를 제외하고 여의도 일대를 비롯한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졌다. 당연히 밤벚꽃놀이도 중단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4월이면 창경궁에는 매화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밤의 궁궐 산책도 할 수 있다. 봄의 문턱에 있는 3월에는 대온실에서 활짝 핀 흰 동백꽃과 붉은 동백꽃을 볼 수도 있다. 이봄,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창경궁으로 산책을 나가보면 어떨까.그 길의 끝에는 110년의 시간을 오롯이 견뎌온, 따스한 햇살을 가득 품은 창경궁 대온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글·사진 이연경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한성부 내의 일본인 거류지에 대한 박사논문으로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도코모모, 도시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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