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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손 없는 색시>경민선 작가 ·조현산 연출익숙함과 낯섦을 모두 감싸다
정해진 것을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작업은 알고 있는 것을 다르게 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키워드로 내세운 ‘성찰과 되짚기’의 모습 중 하나 아닐까. 4월 26일부터 5월 7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 오르는 <손 없는 색시>의 경민선 작가와 조현산 연출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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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아픔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

계모의 모함 때문에 양손이 잘려 쫓겨난 데다, 부잣집에 시집 간 후 갓난아이와 내쫓긴 색시가 우물에 떨어지는 아이를 잡으려는 순간 양손이 되살아났다는 이야기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러시아, 유럽 등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민담이다. 이 ‘손 없는 색시’ 설화가 새 옷을 입고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경민선 작가 와 조현산 연출이 주축이 돼 재탄생시킨 <손 없는 색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손이 부재하고 재생하는 방식, 그리고 인형극이라는 장르이다.
<손 없는 색시>에서 색시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에 늘 자신의 아픈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어느 날 손은 더 이상 아픔과 슬픔을 대하기 싫다며, 스스로 떨어져 나와 떠난다. 극심한 고통에 색시가 목을 매는 순간 태중의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어미의 슬픔을 품고 태어난 갓난아이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는 자신에게 새 옷을 지어줄 손을 찾으러 우물에 가자고 제안하고, 아이와 어미는 손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우물에 도착한 두 사람. 아들이 물을 마시려다 우물에 빠지지만 손 없는 색시는 아들을 잡을 수가 없다. 그 순간, 색시의 손이 나타나서 아들을 구하고, 아들은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어머니의 품에 되돌아온다.
‘손 없는 색시’ 설화에 매료된 경민선 작가를 자극한 것은 ‘손이 스스로 떨어져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었다.“손은 무언가를 쥐고 흔드는 행위나 어휘에서 알 수 있듯 욕망을 상징한다”는 경 작가의 말에, 조현산 연출은 “손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욕망이 거세된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인간에게 죽음 같은 일”이라고 덧붙인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 또는 전쟁과 다를 바 없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그 때문에 죽음과도 같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큰 슬픔을 겪은 사람들도 살아가지 않나. 극한 슬픔과 살게 되는 것 사이에는 어떤 다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사람들이 그 다리를 넘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경 작가에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배경, 그 끝에서 만나는 손은 극심한 고통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은 회복되기 힘들거나 전혀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그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경 작가는 이 작품에서 상처의 회복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설화에서는 손이 되살아나거나 인공으로 손이 만들어지지만, <손 없는 색시>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손과 재회한다. 우물에서 손과 만나지만, 색시의 손이 떨어진 부위가 이미 아물어서 손을 붙이려 해도 붙일 수가 없다. 대신 늙은 이로 태어났던 아이가 우물 속에서 손과 합쳐지면서 진짜 어린 아이로 되돌아온다.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된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게 회복은 아니지 않나. 전쟁과도 맞먹는 상처들을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그렇다고 삶을 끝낼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하는지 생각해봤다. 상처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회복 아닐까.”조현산 연출은 회복이 이전 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 문제의 수용과 인정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며, 더불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같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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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손 없는 색시>.
2 오는 6월에 발간 예정인 경민선 작가의 그림 동화책 <손 없는 색시>.

협업으로 확장되는 의미

경민선 작가는 그간 사실적인 극보다는 전통 및 역사에서 소재를 취해 국악과 연희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2011년 제2회 대한민국 전통연희 페스티벌 대상을 수상했으며, <운현궁 로맨스>로 2014년 제1회 창작국악극 대상 및 작가상을 받았다. 또한 올해 1월 KBS에서 방영한 신년 특집 단막극 <조선미인별전>의 대본을 쓰는 등 장르를 넘나들며 그만의 스타일을 드러내고 있다. <손 없는 색시> 역시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적이고 상징적인 작품이다. 경 작가가 이 작품의 매력을 가장 잘 전달하리라 생각해 선택한 파트너는 ‘예술무대산’의 조현산 연출이다. <달래이야기>, <그의 하루>, <상자> 등 개성 있고 완성도 높은 인형극으로 인정받고 있는 예술무대산은 상징적인 이미지에 이야기를 담아 관객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경민선 작가와 조현산 연출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지 기대되는 이유다.
먼저 조현산 연출이 경민선 작가가 쓴 극본의 강렬한 상징에 관심을 표하자, 경 작가는 “예술무대산의 많은 작품에 손이 나온다.손의 이미지, 손에 대한 상징을 이미 많이 연구한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조 연출은 인형극의 특성에 따른 결과라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사가 많지 않은 공연에서 손은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으로 보여주는 신호 행동 중 많은 부분이 손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인형극에서 손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다.”
성인들은 인형극을 다소 낯설어하고, 어린이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현산 연출은 그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뛰어넘게 만든다. “<손 없는 색시>에서는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가 이야기꾼이고 인형 연기자다. 또한 배우 자체가 세트와 소품으로 기능할 것이다. 배우들의 몸이 인형이나 오브제가 되기도 하고, 배우가 만들어진 인형이나 오브제를 연기하기도 하는 등 무대 안에서 계속 모습을 바꾸면서 장면을 만들어나간다. 무대는 특정 시간과 장소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창작하는 공간이 되어, 이야기꾼이 때로는 광대처럼 때로는 정령처럼 인물과 공간을 만들어내어 이야기를 전달한다.”상징성 짙은 이야기가 한층 환상적인 이미지로 구현되리라 기대되는 대목이다.
음악 또한 극에 독특한 분위기를 더한다. 손 없는 색시와 아들의 파란만장한 여정과 사계절의 변화를 표현하고, 해학적이고 상징적인 극의 이해를 돕는 데 음악이 한몫한다. “선율이 살아 있어서배경음악으로 기능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리로서 존재하는 음악”이라는 조 연출의 설명처럼, 전형적인 형태로는 기능하지 않을 음악의 효과를 기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낯섦이 아닌 새로움으로

그동안 경민선 작가와 조현산 연출은 고전 및 옛날이야기를 재해석한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경 작가는 그 이력에 대해 “설화나 민담은 과거 크게 유행했던 대중문화 콘텐츠다. 그 이야기들은 어떻게 그렇게 널리 퍼졌는지, 그것들이 현재와 어떤 점에서 통하고, 또 통하지 않는지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조 연출도 이에 동의하며 말을 더했다. “신화는 모든 이야기의 뿌리이고, 신화가 설화나 민담으로 바뀔 때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담는다. 지금 그걸 그대로 이야기하면, 현재와 맞지 않는 이데올로기를 다시 말하는 이상한 작업이 된다. 이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변주하는 게 재미있다.”
이런 두 사람의 결과물은 대체로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이었다. 이런 작업의 매력을 묻자, 조현산 연출은 “작품 속에 상징이 많다 보니, 관객 각자가 자기 삶에 비추어서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더라. 그게 보람 있다”고 답했다.“하지만 관객과 달리, 작업하는 우리는 이 장면 또는 이 오브제의 상징을 구체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때문에 그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배운다”고 덧붙였다. 경민선 작가 역시, <손 없는 색시>를 키운 지난 1년여의 시간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대로 글을 썼는데,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공유하면서 내가 제시한 초석에서 많은 걸 발견했다. 인형 디자이너 및 연출가가 보여주는 이미지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이제 두 작가의 작품이 남산예술센터와 만났다. 이는 두 사람에게도, 남산예술센터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다. 남산예술센터의 전통과 역사가 창작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뿐만 아니라, 남산예술센터만의 독특한 무대 구조가 <손 없는 색시>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한 실험적인 작품을 다수 올린 남산예술센터로서도 인형극은 이례적인 선택이다. 조현산 연출이 “전위적인 작품을 많이 해왔고,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산예술센터이기에 우리 작품을 선택한 것 같다”고 밝혔듯, 남산예술센터에게는 공연의 영역을 확장하는 기회가 될 듯하다.
색다른 공연을 보리라는 기대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일견 낯선 요소들이 모인 이 작품에 거리감을 느낄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현산 연출의 각오를 믿어보는 게 어떨까. “슬프고 무거운 극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재미있었다. 상황이 주는 기이함이 있지만, 내가 느낀 재미를 관객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나. 비극적인 설화를 바탕으로, 무엇보다 재미있는 극을 보여주려 한다.”

글 이민선 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사진 제공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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