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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전시 <사랑의 묘약: 열 개의 방, 세 개의 마음>과 <테리 보더: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사랑, 묘약으로 취할 건가 음식으로 채울 건가
장면 하나. 이보다 절박할 수는 없다. 그물에 뒤엉킨 두 남녀가 서로에게 다가가려 버둥거린다. 허우적거릴수록 혼돈의 감정에 치감길 뿐인데. 장면 둘. 이보다 절절할 순 없다. 라면으로 만든 뗏목이 갈라지는 위급상황. 뗏목에는 달걀 반쪽씩이 타고 있다. 간격은 벌어지고 둘은 팔을 뻗으며 절규한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1 밥 캐리 <페임>(Fame), 2016.
2 테리 보더 <시리얼 킬러>(Cereal Killer).

‘장면 하나’는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 펼쳐놓은 광경이다. <사랑의 묘약: 열 개의 방, 세 개의 마음>이란 주제로 꾸민 기획전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동명 오페라 <사랑의 묘약> (1832)을 모티프 삼아 10가지 사랑을 열어놨다. ‘장면 둘’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 벌어진 난장판. <테리 보더: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란 테마로 펼쳤다. 미국의 사진작가로, 메이커아티스트로도 활약하는 테리 보더는 시리얼, 식빵, 감자칩, 달걀 등으로 만든 ‘대리인간’이 겪는 아픈 사랑을 유쾌하게 포착했다. 닿으려고 해도 닿을 수 없는, 닿았다고 해도 닿은 것이 아닌, 이것은 사랑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묘약을 찾고 음식으로 채울 밖에. ‘한 번쯤 던져야 할 사랑’을 찾는다면 서울미술관으로 향하면 된다. ‘사랑 뭐 별거 있어?’라면 사비나미술관이다.

그대와 난 이뤄질 수 없나… 고뇌하는 사랑

<사랑의 묘약: 열 개의 방, 세 개의 마음> 서울미술관, 9. 26∼2018. 3. 4

격렬하게 끌어안은 것도 모자라 투명 랩으로 싸매기까지 했다. 두 남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듯하다. 무엇이 이들의 사랑을 가르고 있나. 대만 출신 사진작가 신왕이 답을 내놨다. 집착이었다. 고통스러운 사랑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디 셀핑>(2014) 시리즈는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사랑에는 버려야 할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집착이더라는 것.
기획전 <사랑의 묘약>에는 10가지 주제어가 등장한다. 일상, 방황, 욕망, 공허, 집착, 신뢰, 고독, 용기, 희생, 기쁨. 신왕을 비롯해 이르마 그루넨홀츠, 안민정, 신단비이석예술, 밥 캐리 등 10개 팀이 나서 주제어에 맞춘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100여 점을 걸고 세웠다.
전시는 오페라의 두 주인공이 겪는 감정의 변화를 따른다. 이들 사랑의 시작은 스페인 3D 일러스트레이터 그루넨홀츠가 잡았다. 클레이 점토로 만든 모형을 촬영한 <커넥션>(2015), <허그>(2015) 등으로 그물에 엉켜버린 두 남녀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이후 욕망과 공허, 집착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이들은 결국 신뢰란 열쇠를 찾는다. 이때의 작품은 커플 아티스트인 신단비이석예술의 <만남> (2015), <만짐>(2015) 등.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와 서울의 덕수궁 돌담길 등에서 동시에 촬영한 사진을 교묘히 연결했다.
오페라의 반전은 상대의 마음을 얻게 한다는 ‘묘약’.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않나. 그런데 있었다. 묘약의 실체는 용기였던 것. 발레복 튀튀를 입은 미국남자 캐리가 나섰다. 아내가 유방암 투병을 시작하자 핑크색의 발레복 차림으로 포즈를 취한 거다. 전시는 캐리가 세계 곳곳에서 감동을 선사한 사진작품 여러 점을 걸었다.
“남 몰래 흘린 눈물이 두 뺨에 흐르네. 나 홀로 갈구하는 바로 그 사랑일세.”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는 기가 막힌 선율의 아리아가 있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사랑은 혼자 꺼이꺼이 쏟아내는 눈물이었다. 전시는 내년 3월 4일까지 계속된다.

이별이 싫은 달걀 반쪽… 웃기는 사랑

<테리 보더: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사비나미술관, 10. 13∼12. 30

도대체 답이 없는 게 사랑이다. 그러니 왕왕 예상치 못한 비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시리얼 살인사건 같은. 사랑에 눈먼 시리얼이 정적인 시리얼을 우유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죽은 시리얼 앞에서 다른 시리얼이 무릎을 꿇은 채 절망한다.
작가 테리 보더는 사물에 인격을 부여해 특별한 캐릭터를 창조한다. 철사로 팔다리를 붙여 만든 ‘벤트 아트’다. 그러곤 이들에게 희로애락을 연기하라고 지시한 뒤 정교한 사진 촬영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보면서도 실실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은 기발한 상상력 덕분이다. 숨은 이야깃거리를 듬뿍 얹은 블랙유머다.
샌드위치 쿠키의 사랑 방식을 한 번 보자. 두 개로 쪼개진 쿠키 중 한쪽이 팔을 벌려 “내게로 와”를 외친다. 배에 크림을 잔뜩 바른 그는 합체된 쿠키를 간절히 원하는 듯하다(<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 쿠키뿐인가. 보더의 작품 세계를 위해 노란 꽃을 사이에 둔 딸기잼·땅콩잼 식빵 커플(<꽃을 건네는 마음>), 라면 뗏목 위 달걀 반쪽들(<슬픈 안녕>)도 나섰다.
굳이 사랑 이야기만도 아니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도 그가 즐기는 테마. 쭈글쭈글한 대추에 마스크 팩을 씌우기도 하고(<매끄러운 피부 관리>), 누가 베어 먹은 날씬한 사과를 거울 앞에 세우기도 한다(<사과 다이어트>). 이번 전시는 보더의 첫 한국 개인전이다. 속마음을 들킨 듯 화들짝하게 하는 사진, 그 실제 모델이 된 입체 작품 등 90여 점을 내놓고 그는 이렇게 외친다. “사람아! 사랑이, 세상살이가 너희만 어려운 건 아니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다.

글 오현주_ 이데일리 선임기자
사진 제공 서울미술관, 사비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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