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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설치미술가 김승영 삶을 사유하다
고단하고 힘든 순간들이 존재하는 삶. 그로 인한 슬픔이나 상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작가 김승영은 그 순간, 그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는다.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치유와 위로의 시간을 건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슬픔과 상처라는 감정에 더 깊이 공감하고 그보다 더 큰 위로를 건네는 사람. 서울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오늘’의 초대작으로 <시민의 목소리>(The Voice of the People)를 선보일 김승영 작가를 만났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시민의 목소리, 작품으로 완성되다

시민이 직접 투표로 선정한 작품을 서울광장에 전시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오늘’의 초대작으로 <시민의 목소리>가 선정되었어요.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작품의 의도가 ‘시민과의 소통’이라는 점에서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시민의 투표로 최종 선정되어 매우 기쁩니다.

<시민의 목소리>의 탄생 배경이 궁금해요.

1999년에 뉴욕 P.S.1 MoMA 레지던시에 1년간 참여했어요. 150여 개 국 이민자로 구성된 뉴욕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언어를 듣고 있자니 바벨탑이 떠올랐고 스피커로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2000년부터 스피커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국립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오픈 스튜디오에서 2008년에 <벽>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후 2009년부터 <Tower>라는 제목으로 꾸준히 발표했어요.

그럼 이번 작품은 <Tower>의 변주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작품명을 <시민의 목소리>라고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서울광장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혼재하는 곳입니다. 그 목소리들이 도시의 일상을 만들고 때로는 역사의 극적인 전환점을 이루기도 하죠. 그래서 서울광장의 주인공을 목소리라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는 목소리들을 조화롭게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사는 다양한 생각들이 어우러져서 존재하고 발전합니다. 때문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지는 않죠. 그래서 이번 작품에도 그런 요소를 드러내는 약간의 불협화음이 들어갈 예정이에요.

오랫동안 스피커를 수집하셨는데, ‘스피커’라는 오브제에 집중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약 600개의 스피커를 모았는데, 재질, 색상, 스피커 유닛의 크기와 디자인, 장착 위치에 따라 각기 모양이 달라요. 제조국가와 회사도 제각각이고, 사운드도 사용자의 성격만큼이나 다양하고요. 이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몇 년 뒤 2,000개 정도를 모으면 다양한 국가, 인종, 언어를 상징하는 ‘바벨탑’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싶어요.

<시민의 목소리>가 어떻게 제작될지 설명해주세요.

건축적 큐브 형태의 스피커를 사면으로 이루어진 육중한 타워 형태로 세울 거예요. 이는 동서남북 4방위를 의미해요.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다양한 소리를 재생했던,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버려진 스피커들이 모여 5.2m 높이의 탑으로 구축되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한반도의 오랜 도읍지로서의 서울, 그 안에서도 가장 중심에 자리한 서울광장의 입지를 고려해 모든 방위로 스피커를 열어두고 세계와 소통하는 서울광장의 의미를 담을 겁니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할렘 종이비행기 프로젝트>, C-print, Harlem, New York, 2000.

오는 7월부터 6개월간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접하게 될 텐데요.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하나의 소리도 좋지만 다양한 소리가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게 엮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됐어요. 불협화음까지도요. 개개인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소통하면 좋겠어요.

공공미술 프로젝트 ‘오늘’이 어떻게 발전되길 바라는지, 초대작을 선보이는 작가로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오늘 이 순간’이라는 의미에서 나아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서는 공공미술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작가들의 태도와 용기가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1999년 뉴욕 P.S.1 MoMA 레지던시에 참여한 경험이 작가님께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들었어요. 그 경험들이 이후 작품에 어떻게 반영됐나요?

그 기간 동안 사고가 확장되고 작품의 폭도 커지는 등 변화가 많았어요. 하지만 작품에 드러나는 주제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제 의식의 무게가 ‘나’에서 ‘타자와 나’ 중심으로, ‘주변’에서 ‘세계’로 옮겨지다 보니 내용과 형식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시각적 이미지나 이슈보다는 내면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어요.

2000년에 진행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할렘 종이비행기 프로젝트>는 작가님의 첫 번째 소통 작업으로 꼽히는데요.

뉴욕에 있으면서도 지역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5개월 정도 후에야 할렘에 갈 수 있었어요. 막상 가보니 활기차고 재미있는 곳이더군요. 비자 문제로 한국에 잠깐 왔을 때 점자로 ‘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가’라는 글을 종이에 인쇄했어요. 그 종이를 들고 할렘을 다시 찾았습니다. 제가 그 종이로 만든 비행기를 날리니까 한두 명의 아이들이 함께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날리게 되었고 잔디밭이 하얀 종이비행기로 가득 찼죠. 그때 지나가던 행인이 “여기가 어디죠?”라고 물었는데, 어떤 분이 “여기는 피스 에어포트(peace airport)예요”라고 즐겁게 답하더군요. 그때 제 마음속에 있던 높은 담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어요. ‘작품으로 대화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첫 작품입니다.

<시민의 목소리>도 그렇지만, 작품에 소리를 많이 사용하시는 듯해요. 소리를 사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캐나다를 여행할 때였어요. 한밤중에 넓은 물 위의 좁은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물소리가 너무 크고 거칠어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어요.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물이 깊지 않더군요. 보이지 않으니까 들리는 소리만으로 겁을 먹었던 거예요. 청각만으로도 많은 것을 연상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 시각이미지와 함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치유와 위안이 되는 작품을 만들다

작품에서 삶, 사람, 소통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상처와 치유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회자되기도 하고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그게 바로 ‘삶’이겠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작품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바꾸어 말하면, 살면서 느끼는 버거운 무게가 작품에 담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 작업은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제 이야기가 고스란히 반영돼요. 저의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감수성과 감각으로 시각화해 보여주는 거예요. 삶은 상처, 치유와도 뗄 수 없죠. 저는 제 기억 안에 있는 상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상처의 흔적을 감추기보다는 드러냄으로써 스스로를 되돌아봅니다.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가장 아끼는 작품은 <의자>(2011)예요. 어머니가 노점을 하실 때 추위를 이기기 위해 앉으셨던 의자로부터 착안해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의자를 만들었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느낌이 전달됐는지,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어요. <자화상>(1999)은 쓰러지는 나 자신을 반복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작품인데, 지난 20년 동안 가장 많이 발표했어요. 인간의 아픔을 이야기한 작품으로,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인지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2 <의자>, 쇠 의자·물·센서온도장치, 46×48×93cm, 2011 (사비나미술관, 사진 박홍순).
3 오는 7월, 서울광장에 전시되는 <시민의 목소리>(사운드디자인 오윤석) 투시도.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9월에 평창동에 위치한 김종영미술관에서 불과 물을 소재로 개인전을 해요. 그때까지는 전시회에 몰입할 것 같아요. 너무 모자란 작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저를 보면서 ‘작품은 할 만한 거구나’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건네고 위안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글 한율
사진 손홍주
사진 제공 김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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