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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무용가·안무가 김용걸 성숙한 무용가로 산다는 것
현역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의 김용걸 교수는 ‘발레계의 신사’로 통한다. 무대 위에서나 강단 위에서나 점잖지만 뜨거운 몸짓을 선보이고 그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용계에서 그처럼 사회에 관심을 갖고 작품에 메시지를 싣는 이는 드물다. 으스대지도 않는다. 예술가, 선생으로서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와 그의 작품이 여전히 날로 성숙해지는 이유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무용은 건축과 통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오는 6월 2~4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무대에 올리는 올해의 첫 번째 신규창작 공연 <쓰리 볼레로>는 현재 무용계에서 가장 뜨거운 무용수들이 함께한다. 40대의 김용걸 교수는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30대의 김설진, 김보람 못지않게 여전히 뜨거운 이름이다. 국립발레단을 거쳐 세계 최정상급의 발레단인 파리오페라 발레에 한국인 최초로 입단, 솔리스트로 활약한 그는 한국 발레를 대중적으로 부흥시킨 스타다. 하지만 이름값에 기대 가지 않는다. 지난해 라벨의 <볼레로>를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여 호평받았는데, 이 작품의 구성을 새롭게 다듬고 있다.
김 교수를 비롯해 김다운, 이예현 등 37명의 무용수가 무대에 오르고, 수원시향 85명의 오케스트라가 라이브 연주로 힘을 보태는 블록버스터다. 대규모 군무가 기대되는 작품으로 움직임의 배열과 재구성의 조화로움이 포인트다. 군인들의 일사불란한 열병식을 떠올리게 한다. 원곡 음악의 4가지 리듬을 반복하며 기묘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무용과 건축이 닮았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라벨의 <볼레로>는 같은 멜로디가 수없이 반복되고 그것이 극적인 구성을 만들어내는 곡으로, 건축의 기법과 비슷하다. <볼레로>뿐만 아니라 무용 전체로 시야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건축가 김수근은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말했는데, 무용은 ‘빛(조명)과 움직임(movement)이 짓는 시’라고 할 만하다. 무용가는 무대 위 건축가다. 신체의 공학으로 예술을 만들고 그 안에 인문을 심는다. 공학, 예술학, 인문학이 융합된 건축과 같다. 과정이 어느 분야보다 신성한 노동의 집약체라는 점도 무용과 건축을 동격으로 만든다.
김 교수 역시 “절대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장 클로드 갈로타 같은 사람은 건축(미술)을 공부했죠. 건축이나 무용이나 기본과 체계가 잘 구축돼야 해요.” 김 교수는 그러면서 에디토리얼, 즉 편집을 강조했다. 그가 레고, 스티브 잡스와 더불어 ‘편집학’을 뜻하는 <에디톨로지>의 저자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전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를 좋아하는 이유다. “레고, 잡스, 김정운 교수의 공통점은 편집을 잘한다는 거예요. 이미 좋은 소스는 널려 있고 어떻게 편집, 조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레고는 작은 블록들로 대단한 걸 만들 수 있고 잡스는 이미 있는 걸 새롭게 디자인했죠. 김정운 교수는 새로운걸 창조하는 데 있어 관건은 편집이라면서 편집의 기술이 뛰어나면 예술이라고 했어요.” 편집이 관건인 건 이번 <볼레로> 역시 마찬가지다. 클래식 발레 동작의 베이스 위에 다양한 동작을 조합하고 편집해 20개 이상의 프레이즈들을 구성한다. “리듬의 퍼즐을 만들고자 했어요. 작년 11월 초연하면서 관객들이 재미있어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쉽고 편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이번에 디테일한 부분을 더 치밀하게 구성하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2 <볼레로> 공연 모습. ©최영모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3 <워크2S> 공연 모습. ©박귀섭

사회를 생각하는 뜨거운 무용가

건축도 무용도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 김용걸 교수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을 종종 무대 위로 올리는 이유다. 지난해 ‘2016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를 통해 발표한 신작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이 대표적이다. 왕따, 성직자 비리, 성매매, 동물 학대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날것으로 그렸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만든 <빛 침묵 그리고…>의 연장선상이다.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김 교수는 방관 때문에 아무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며 그 수치심을 극장 안에서 함께 느끼고자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김 교수식의 사람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역시 ‘도덕적으로 바른 사람’이다. 무용은 기본이고 그와 함께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생각을 해야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만난 한예종 출신 무용수들이 부쩍 예의바르고 착하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김 교수는 가감 없이 사회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DNA”라고 했다. “물론 그런 표현과 작품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거죠. 태생이 안 하면 안 되니까 하는 거예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다가도 ‘에라 모르겠다’가 되는 거죠.”
한류 발레에 앞장서기도 한 김 교수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파리오페라발레에서 몸담은 경험이 자신을 크게 바꿨다고 한다. “약 10년간 많이 배우고 울고 감사하면서 살았어요. 문화 충격에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고요. 하지만 제 인생에서 너무 소중한 순간이었죠. 아내(국립무용단 수석 무용수 김미애)와 파리오페라발레에 가기 전 3년 동안 사귀었는데, ‘파리에 다녀온 김용걸과 가기 전 김용걸이 너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그전에는 상남자처럼 멋있는 척만 하고 융통성도 없었는데 무슨 고생을 했는지 배려와 이해심이 많아졌다고 했어요.”
사회 문제에 부러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김 교수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작품으로 올릴 뿐이다. “사회적으로 안정적일 때는 그런 작품을 만들 필요가 없겠죠. 불안정이 자극을 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원래 하고 싶었던 작품은 아닌 거죠. 반면 <볼레로>는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발레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부분과 별개로 발레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발레에 입문한 15세 때부터 이어져왔다. 김 교수는 부산예고를 거쳐 성균관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뒤 파리오페라발레를 거쳐 한예종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김용걸댄스시어터를 창단할 때까지 지난한 여정을 이어왔다.
지난 2월 ‘제4회 이데일리 문화대상’의 무용 부문에서 그에게 최우수상을 안긴 김용걸댄스시어터의 모던 발레 <워크2S>가 그 산물이다. 이는 김용걸이 2011년부터 안무가로 발표해온 <워크> 시리즈의 하나로, 이 시리즈의 특징은 ‘고전 발레 죽이기’다. 클래식 발레의 엄격한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선보이는데, 이는 창작 발레의 가능성으로 도약하는 발판이기도 하다. 김 교수의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 교수실의 한편에 놓인 변형되고 뒤틀린 발레 바(Bar)가 그 잠재력을 확장하는 기능을 겸한다.
“평생 발레를 하는 사람은 틀 안에 있어야 해요. 그것에 익숙해지고 수용되면 정체될 수 있으니 그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작업이 <워크>죠. 중심을 옮기고 틀을 벗어나는 거예요. 무용수들이 그 틀을 벗어난 뒤 다시 돌아왔을 때는 분명 달라져 있습니다. 착한 애가 가출해서 다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착해도 뭔가 달라져 있는 것처럼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확장이 필요해요. 또 <워크>는 발레가 예술이지만 심한 노동이라는 것도 깨닫게 하죠. 하지만 노동이라고 징징대지만 말고 다양한 작업을 통해 즐겨보자는 의미도 있어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발레는 보여주는 예술이라 진실하지 않으면 춤이 가벼워집니다. 정말 제대로 된 춤을 보여주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박수를 받고 싶다면 본인 먼저 성숙해지라고 하죠.”

성숙함 속에서 진실한 춤이 나온다

“특별히 인성 교육을 하는 건 아니에요. 무용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이 되라고 이야기할 뿐이죠.” 한예종 무용원 학생들이 굵직한 해외 콩쿠르에서 연달아 수상하는 것도 모자라 모두 인성까지 바르다고 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발레는 보여주는 예술이라 진실하지 않으면 춤이 가벼워집니다. 정말 제대로 된 춤을 보여주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박수를 받고 싶다면 본인 먼저 성숙해지라고 하죠.”
작년 12월에는 프랑스의 국립고등음악무용원인 파리 콘서바토리에서 외부 안무가로 초청받아 현지 학생들을 만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인 <레 무브망>(Les Mouvements)을 올려 호평받았다. “약 한 달간 머물렀는데 귀중한 경험이었어요. 그쪽에서는 <워크>를 원했지만 공간의 문제로 기존의 발레 스타일을 부수는 <레 무브망>을 선보였죠. 초청된 4명의 안무가 중 마지막으로 공연했는데 기립박수가 나와 정말 감사했어요. 외국 단체, 그것도 발레의 종주국인 프랑스에서 한국 안무가에게 의뢰를 했다는 자체만으로 영광이었는데 더 뜻깊었죠.”
프랑스 학생과 한국 학생은 당연히 차이가 있었다. “한국 학생으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의 프랑스 학생들을 만났는데 모두 프로다웠어요. 우리 학생들보다 더 성숙하다고 할까요. 우리 학생들이 실력은 더 뛰어나요. 쉬지 않고 연습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프랑스 학생처럼 밖에서 성숙해질 시간은 부족하죠. 그래도 잠재력은 우리 학생들이 커요.”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성숙해질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생일 때가 예술가로서 자양분을 쌓기에 가장 좋은 나이”라는 것이다. 열심히 하라는 말은 이제 진부하고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이 없는 만큼 소용없는 말이기도 하다. “선생님으로서 제 머릿속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을 좋아해요. 대단한 생각과 경험은 아니지만 제가 학교에 선생으로 있다는 자체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런 확신이 없으면 제자들 보기에 부끄럽겠죠. 제 이야기와 경험이 100명 중 한 명의 마음이라도 움직인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누구보다 인간적인 예술가

김 교수의 교수실 한편에는 그의 초등학교 5학년 때 모습부터 최근 아들을 안고 촬영한 사진까지 여러 액자가 걸려 있다. 일종의 ‘김용걸 연대기’인 셈이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국립무용단 수석 무용수 김미애와의 결혼일 것이다. 두 사람은 올해 결혼 10주년을 맞았다. 무용계의 유명한 잉꼬 부부이자 스타 부부다. 결혼 전까지 10년 연애를 했으니, 무려 20년의 연을 이어왔다. 후배들이 부러워하는 궁합의 비결을 묻자 그는 ‘배려’라는 비법을 꺼내놓았다. “물론 저희도 자주 다퉈요. 한데 그럴 때마다 화를 먼저 내기보다 차근차근 상황을 돌아보죠. 다툼의 가장 큰 원인은 서로 배려를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배려했다고 생각하더라도, 다툼이 있으면 그건 혼자만의 배려일 가능성이 크죠. 아내는 워낙 정의롭고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에요. 그런 면이 좋아서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고 존중하려고 하죠.” 이처럼 인간적이고 뜨겁고 사랑스런 무용가, 안무가, 교수, 남편, 그리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아들 바보’로 통하니 그의 무대가 좋을 수밖에 없다. “계속 다양한 이야기를 춤으로 만들어내고 싶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그의 스케줄은 여전히 빠듯하다. 6월 8~25일 예술의전당 일대에서 펼쳐지는 ‘제7회 대한민국발레축제’ 무대에서는 은퇴한 국립발레단 무용수의 이야기를 다룬 신작을 선보인다. 7월에는 재작년부터 맡아온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의 예술감독직을 이어가는 동시에 한예종 졸업생인 김다운과 2인무를 선보인다. 11월에는 미국 워싱턴의 케네디센터에서 열리는 ‘한국문화주간’ 행사에 초청받아 <워크> 또는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 교수는 최근 종아리 근육이 파열돼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20대 못지않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하나씩 줄여야 무대에 계속 오를 텐데 그게 쉽지 않네요.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 환호하는 관객들이 있는 한 무대에 계속 오를 수밖에 없어요.”
김 교수는 이날 파리오페라발레를 나올 때 동료들이 선물해준 책을 오랜만에 펴들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무용가 겸 안무가인 루돌프 누레예프의 사진집으로, 함께 활약한 동료들의 사인이 가득하다. 잠시 회한에 젖은 눈빛으로 그 사인들을 지그시 바라보던 김 교수는 누레예프와 동료들처럼 끊임없이 창작하는 예술가들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 말했어요. ‘인간은 창작을 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요. 창작은 백지에서 시작하는 건데 그곳에서 그림을 그려 나가다 보면 슬픔, 즐거움이 다 보여요. 그 과정에서 받는 감동이 저를 살아 있게 하죠. 힘들어도 참 가치 있는 일이에요.”

글 이재훈_ 뉴시스 문화부 기자
사진 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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