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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마임이스트 고재경 변화를 긍정하는 플레이어
4월의 어느 날, 서울연극센터의 ‘PLAY-UP 아카데미’ 첫 수업을 앞둔 마임이스트 고재경을 만났다. 지난해 처음 시작된 고재경의 움직임 수업은 꾸준히 인기가 많은 수업 중 하나다. 그의 움직임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30년이란 시간의 내공일까. 2017년은 그가 데뷔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이 인터뷰는 중견예술인의 회고록이나 추억담이 아니다. 30년, 아니 26만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간 일상과 경험,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된 치열한 예술가의 현재진행형이자, 끝없이 주변과 소통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마임이스트, 움직임으로 소통하는 예술가

마임을 시작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매번 듣는 질문인데, 답은 거의 항상 같아요. 1987년에 우연한 기회로 극단에 들어갔고, 극단 선배들이 마임을 하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죠. 단지 뭔가 좀 다른 걸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 언론에서 “정확히 계산된 속도와 리듬을 기초로 하는 마임”1)이라고 소개한 기사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 깊었는 데요, 마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제가 쓴 건 아닙니다. (웃음) 그건 과거의 이야기와 좀 더 가까워요. 아무래도 작업을 하다 보면 계속 바뀌어가죠. 지금은 템포와 리듬을 가장 먼저 생각해요. 템포와 리듬이 정확하면 보고, 듣고, 느끼게 되죠. 물론 처음에 말한 것도 무척 중요하지만 초를 재면서 몇 분에 여기, 몇 분에 여기 이렇게 설계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템포와 리듬감 면에서 이렇게 되어서, 이렇게 몸을 꺾어야 한다는 방식으로 만들어가요. 하지만 그건 호흡이 긴 공연에 사용하는 방식이에요. 짧은 공연은 이미지 하나로도 공연이 가능하지만, 30~40분이 넘어가는 공연에는 갈등구조가 필요해요. 계산이라는 것은 그런 지점들에 대한 것입니다. 정확하게 관객과 어떻게 호흡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산이요. 내용과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야 관객이 더 몰입할 수 있는지를 계산합니다.

아직까지 마임이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잖아요. 이와 관련해서 느끼는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어려움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굳이 연극과 비교하면 연극은 어떤 공연을 볼지 선호도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있는데, 마임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공급이 많지 않고 관객들이 다양한 마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 실정에서는 작품 선택 이전에 마임을 볼지 말지에 대한 선택의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외에 특히 마임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건 없어요.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작업이나 작품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특정 지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중국 공연 때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반응이 정말 좋았는데 공연 후 현지 교포가 찾아와 한국 사람이라 너무 행복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집에서 마임 연습을 한다는 어머님도 있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행복하죠. 100명 관객을 가정하면 51명 이상은 소통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단 한 명의 인생을 바꾼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이 있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2가지 다 중요한 것 같아요.

마임+α 기본 위에 다양함이 쌓이다

‘마임공작소 판’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처음에는 마임보다 움직임의 원리를 찾아 타 장르와 협업하며 도움이 되는게 무엇인가 고민했기 때문에 팀 이름을 ‘프로젝트 판’이라고 지었어요. 작업의 관점에서는 그 이름이 맞죠. 마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제한적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쓰다 보니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일회성 느낌이 강한 거예요. 고민 끝에 결국 베이스는 마임이니까 ‘마임공작소 판’으로 이름을 정했어요. 지금도 마임을 베이스로 움직임의 원리를 가지고 가는 무용이나, 연극과 연관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단체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협업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러한 작업들도 결국은 극단과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을 함께하고 있어요.

소재나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으세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많이 찾아요. 상황에서도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 같은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해요. 그리고 음악을 듣거나, 음악이 좋을 때, 곡이나 가사 그런 것들도 소재가 되죠. 그리고 자연, 그냥 일상인 것 같아요. 단순한 걸 좋아해요. 대체로 그런 게 많아요. 다들 겪어본 일상의 소재를 어떻게 공유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공연 외에 춘천마임학교나 각종 워크숍, 아카데미에도 많이 참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마임을 주제로 한 수업과 움직임 수업의 차이가 있나요?

마임 기술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원리를 알면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마임을 일루전이라고 봤을 때, 벽을 짚는 것은 면, 줄을 당기는 것은 선을 표현하는 거예요. 이런 원리를 알면 스스로 응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기술적인 것만 똑같이 하다 보면 거기에 머무르고 말죠. 그렇기 때문에 원형을 알려줘요. 나무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건 중력 때문입니다. 본인을 뿌리라고 생각해보세요. 낙엽이 떨어지면서 흔들리는 건 중력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지만, 입자들의 부딪힘일 수도 있어요. 이러한 움직임을 선으로 표현하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 될 거예요. 그 선을 손으로 표현할지, 시선으로 표현할지, 머리로 표현할지, 그 선택의 차이만 있는 거예요.

지난 ‘PLAY-UP 아카데미’에서 “메소드가 배우에게 자기화되도록 한다”고 하셨죠. 같은 의미인 것 같아요.

맞아요.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본 원리는 나한테 있는 게 아니라 자연에 있어요. 관계와 관계 속에 있고, 대상에 있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워크숍을 자주 하려고 하지 않는 편입니다. 내가 아는 것 또한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죠. 저에게 맞는 방법이나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제가 경험한 걸 말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공연과 달리 워크숍은 과정을 전제로 하잖아요. 못할 게 없죠.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반드시 같은 움직임일 필요가 없어요. 목표한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이 들어와도 무방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몸에 맞는 걸 선택하되,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음식에 단맛을 낼 때 제가 가진 것이 소금과 고추장뿐이라면 이 2가지로 단맛을 내지만, 멜론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단맛을 내도 무방합니다. 궁극적으로 단맛을 내려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상관없죠.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2, 3 ‘PLAY-UP 아카데미’ 수업 모습.

플레이어: 무대 위에서 끝없이 성장하는 예술가

마임이스트 이전에 창작자 고재경의 작업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디선가 ‘플레이어’라는 단어를 언급하신 걸 보았습니다.

무대 위에 서는 사람, 행동하는 사람. 그것이 플레이어입니다. 구성이나 연출을 함께하고 있지만 그것은 현실적인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어온 작업들도 계속 함께 가는 2가지 방식을 모두 선택하고 있어요. 저의 작업은 수정, 보완이라는 관점과 조금 다릅니다. 제가 지금 알고 있는 만큼을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10년 후 알고 있는 게 달라지면 작품도 바뀔 수 있겠죠. 사회가 변하고, 그 속에 우리가 함께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변해가는 거죠. 어느 순간 이게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그 작업은 잠시 묻어두고 거기에 맞는 걸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재작년 유진규 선생님과 공연을 했어요. 저는 20년 전 작품을, 유진규 선생님은 40년 전 작품을 했는데 정말 그 시절과 다르더라고요. 그때의 에너지가 힘이었다면 지금은 대하는 에너지가 달라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반기 작품 계획이나,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소개해주시겠어요?

이후에도 계속 작업 스케줄이 있어요. 지방 공연 일정도 있고요. 창작은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발표 시점은 아직 생각 중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지방 극단을 다니며 액팅 코칭을 했어요. 물론 과거 마임이스트로 1년 동안 5~6편을 창작했다면, 지금은 그룹 작품 하나를 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창작 편수는 많이 줄었죠.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든 것을 지속적으로 어떻게 전개해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니까요. 지금 이 시대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무대에 설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무대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잘하는 게 마임이에요. 그래서 마임을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인터뷰이에게 이렇게 많은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문화+서울]의 구독자는 누구인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궁금해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던 고재경. 그는 이 짧은 지면을 통해서도 여전히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했다. 부디 이 부족한 글이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모자람이 없기를. 여전히 고재경의 시간은 진행 중이다. 어쩌면 그의 모든 시간은 마임이고, 일루전이다.

1) ‘계산된 몸짓’이 상상을 부른다… 고재경의 마임 콘서트, 인천일보, 2016년 11월 2일.

글 김윤경_ 서울연극센터 대리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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