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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김지은 작 클라이맥스

10분 희곡 릴레이 관련 이미지

* <10분 희곡 릴레이>는 젊은 작가 혹은 지망생들의 재기발랄한 10분 단막극입니다.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人에 가시면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webzine.e-stc.or.kr)


등장인물: 노배우, 젊은 배우



눈부시게 밝은 조명이 켜지면 노배우가 무대 가운데에 서 있다. 흐뭇한 표정의 노배우는 관객을 향해 천천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곧이어 누군가를 소개하겠다는 듯 잠시 박수를 친 후, 뒤의 무대 장막을 가리킨다. 하지만 장막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노배우는 당황한 것을 숨기려는 듯 애써 태연한 기색으로 한 번 더 무대 뒤를 가리킨다. 여전히 아무도 나오지 않는 무대. 노배우는 관객들의 눈치를 보며 무대 뒤 장막으로 슬금슬금 다가간다.

노배우
(속삭이듯) 뭐하고 있는 거야.

아무도 대답이 없다. 노배우는 잠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장막을 두드려보려 한다. 그때 장막이 조금 흔들린다.

노배우
거기 있네. 빨리 나오라고!

묵묵부답.

노배우
지금 나와야 되는 거 몰라?

불러도 대답이 없자, 노배우는 포기하고 다시 무대 중앙으로 온다. 노배우는 혼자서 무슨 행동을 해보려다가 이내 멈추는 것을 몇 번 반복한다. 노배우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장막 뒤에서 젊은 배우가 등장해 노배우 옆에 선다. 젊은 배우는 노배우와 똑같은 옷차림을 한, 무척이나 닮은 모습이다.

젊은 배우
(노배우를 바라보며) 죄송합니다.

노배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젊은 배우를 바라본다.

젊은 배우
나오시죠.

노배우, 객석과 젊은 배우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객석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한다.

노배우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 잠시만….

노배우는 젊은 배우를 무대 구석으로 끌고 간다.

노배우
(작은 소리로) 왜 그러는 거야? 미쳤어?
젊은 배우
(분명한 목소리로) 아뇨. 저는 그저 제 할 일을 다했을 뿐입니다.
노배우
다음 장면을 이어가야 할 거 아냐. 이제 제일 중요한 장면이잖아.
젊은 배우
아뇨. 이 공연은 다 끝났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조명이 조금 어두워진다.

젊은 배우
나가셔야 합니다.
노배우
(답답하다는 듯) 그게 무슨 헛소리야.
젊은 배우
따라오셔야 해요.
노배우
나 원 참. 이거 미치겠구먼.

순간 객석 몇몇 자리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전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다.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워지는 조명. 노배우는 이상하다는 듯 객석의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젊은 배우를 바라본다.

노배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을 좀 해줘.
젊은 배우
정말 모르시겠어요?

(사이)

젊은 배우
당신만 퇴장하면 이 연극은 끝나요.

노배우, 멍하다가 점점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표정이다. 노배우가 객석을 향해 고개를 천천히 든다. 그와 동시에 조명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어느새 암흑 같은 무대, 젊은 배우와 노배우를 비추는 핀조명만이 남는다.

젊은 배우
가시죠.
노배우
안 돼. 이다음 장면 하고 가야지.
젊은 배우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나가야 해요.
노배우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젊은 배우
아뇨. 늦었어요. 나도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닌데.
노배우
(울분을 토하며) 이제 여기가 클라이맥스잖아. 이 사람아!

(사이)

젊은 배우
미안해요. 당신이 원하던 장면은 이게 아니죠?
노배우
이제 정말 멋진 장면이 시작되는데. 잘할 수 있단 말이야.

노배우, 퇴장하기 싫다는 듯 무대 이쪽저쪽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 모습이 안쓰럽다는 듯 객석에서 한 번 더 울음소리가 들린다. 켜져 있던 핀조명마저 희미해지고, 무대는 두 사람의 움직임이 희미하게만 보일 정도로 어두워져 있다. 노배우, 무대가 어두워진 것을 확인하고는 털썩 주저앉는다.

노배우
할 수 있는데.

(사이)

노배우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젊은 배우, 노배우에게 천천히 다가와 앉아 있는 노배우를 안아준다.

젊은 배우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 나 이해하죠?

노배우, 젊은 배우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번엔 본인이 먼저 젊은 배우를 안아준다. 젊은 배우를 따라 천천히 일어나는 노배우.

노배우
한 많고 미련 많은 공연이었어….

노배우와 젊은 배우가 천천히 퇴장하며 무대도 서서히 암전. 그와 동시에 객석의 울음소리가 커져간다. 중간중간 곡소리도 들린다.



3월호를 마지막으로 <10분 희곡 릴레이>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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