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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서촌의 아름지기 사옥 초심을 잃고 소비되는 노출콘크리트 표면
최근 서울의 도시재생 지형은 ‘복지’보다는 ‘관광’을 코드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곳이 뜬다 하면 난데없이 새로운 카페와 작은 미술관 등이 입점한다. 작은 상권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새로운 투자 대상지를 향해 번져가고 있다. 외국의 도시적 외관과 달리 서울은 지역의 특성에 걸맞은 건물의 높이와 규모를 지녔지만 급속한 현대화로 우후죽순 건물이 생긴 지 오래다.

전 세계적으로 뮤지엄화에 따라 명품건축이 등장하는 현상이 있다면, 우리는 이에 더해 미술관의 입점에 따라 동네 분위기가 파괴되는 현상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촌과 북촌이다. 이 지역은 경복궁의 동서쪽 담에 면하여 나름 큰 미술관들이 들어서서 독점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건축 허가 범위 내 규모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딱히 반발할 수도 없지만, 최근 그 이면에서 휴먼스케일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구감소 후 특화 아이템을 추구하는 세태가 씁쓸하면서도 과연 도피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 갤러리 ‘온그라운드’는 지붕에 새는 빛의 효과를 살려 적산가옥을 건축전시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2 아름지기 사옥은 한옥과 노출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다.
3 예부터 기예를 지닌 이들이 많이 거주했던 서촌의 전경.

기예의 전통을 지닌 서촌의 변화

뮤지엄화에 따라 조직화되는 예술후원과 그에 따른 글로벌한 홍보에 있어 도시촉매(urban catalyst)가 되는 명품건축이 필요하다면, 과연 그러한 건축의 규모가 서촌과 북촌에 어울리는가. 서촌과 북촌의 도시적 아이덴티티는 현재 어떠한가? 서촌의 DNA는 어디에 있을까?
조선시대부터 서촌은 중인들이 살던 곳으로 화가와 문인 등의 기예를 지닌 이들이 많이 거주했다. 인왕산 바위와 수성동 계곡은 오후부터 서촌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예술과 글을 논하기에 충분하였으리라. 또한 기술자와 같은 중인들은 뚝딱뚝딱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일을 하였다. 예술적인 무드와 장인정신이 서촌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90년대 경제 활황기에 작은 스케일의 서촌에 합필을 통하여 큰 갤러리들이 지어졌으며 지금도 개발이 진행 중이다. 서촌의 예와 기의 전통을 잇는 것은 본래 서촌의 콘텍스트에 맞는 작은 갤러리들과 창의적 공간이다. 높은 건물이 들어와서 인왕산으로의 조망과 경복궁으로의 조망을 막는 것은 법이 해결할 수 없는 암묵적 합의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전통과 새로운 형식의 조화를 도모하지 않는 건물

서촌을 한옥의 콘텍스트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다. 한옥이 만들어낸 서촌의 골목길과 휴먼스케일을 유지하며 전통을 새로운 형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다. 갤러리 ‘온그라운드’는 적산가옥 지붕을 수리하던 중에 발견한, 지붕에 새는 빛의 효과를 살려서 적산가옥을 건축전시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보안여관은 광복 이전 서정주를 비롯한 문인들이 ‘시인부락’을 만든 역사가 있으며,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마음 편치 않은 역사를 지닌 건물도 있다. 현재의 아름지기 사옥은 그 위치를 두고 말이 많았다. 이곳은 조선 왕족의 집터가 있던 곳으로 건축주 홍석현에 의해 국가의 대지와 교환되었다.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가 발굴되면 공사 중단과 더불어 문화재청의 심의가 진행되는데, 이곳은 문화재청에서 보존할 가치 57%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경복궁을 내려다보는 지상 4층 높이의 아름지기 사옥은 왜 하필 서촌의 시작점을 점지했을까?
이 건물의 재료인 노출콘크리트는 양식화되어 장식이 없는 본래 특징을 상실해 외려 장식된 느낌으로 노출되어 있고, 2층에는 한옥이 올려져 마치 아방가르드의 하우스에서 복고문화를 소비하는 듯하다.
현재 가장 인정받는 재료이자 우리의 것인 한옥이 조선시대의 유구인 돌무더기들을 북쪽으로 치우고 서 있다. 안도 다다오의 노출콘크리트부터 시작된 군더더기 없는 미학은 199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반기를 든 명증한 미학이었다면, 최근에는 패션으로 소비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요즘 시대의 노출콘크리트는 표정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선입견이 생긴 건축 재료일 수 있다. 그러나 침묵하는 표정의 대상은 더 이상 90년대의 난립하는 근생 시설이 아니며, 오히려 그 자체의 옷깃 여밈과 같아 더러운 길거리에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다. 사치일 수도 있지만, 취사선택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이의 최소한의 마지노선일 수도 있으며, 말할 상대가 없는 이의 침묵일 수도 있다.
누구를 위한 침묵인지, 서로의 대화인지 쉽게 분별이 되지 않는다. 도시에 반감을 가지는지, 도시를 포용하는지, 도시가 반응하길 기다리는지 분명하지 않다. 익숙한 익명적 제스처도 아닌, 실험적이지도 않은 새로 지은 한옥과의 시간 중첩 시뮬레이션이 드러난다. 서촌이라는 물리적 지형에서 이 집의 역사에 대한 태도는 유구, 신 한옥, 노출콘크리트 매스, 적삼목 면의 물질로 조합돼 있다. 역사보존(preservation)이 방부제 같은 원형 보존 방법에서 건축가의 상상력이 동원되는 방법으로 진화하는 것의 전조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 씁쓸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조합 그 자체와 그것을 받쳐주는 2층의 조합된 레벨링에서 비롯된다. 현대건축의 콘크리트면, 전통건축의 한옥, 조경공간이 마치 박람회장의 세팅처럼 보인다.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뮤지엄화가 필요한 때

뮤지엄화의 건축적 이면은 어찌 보면 맹목적으로 명품건축을 추구하는 우리의 마음에 대한 철퇴라 할 수 있다. 뮤지엄화는 뮤지엄이 드러내는 건축적 개념, 그리고 주변 콘텍스트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건축적 해결로 이루어져야 한다. 근대주의의 화이트큐브로부터 건축의 표면과 주변의 영향까지 고려한 변화는 사회의 뮤지엄화 문화를 인정하고 뮤지엄이 주는 파급 효과를 최대한 고려한 것이다. 기존 도시의 콘텍스트를 이미지적인 충격으로 이끌어가기보다는 콘텍스트의 영향 아래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여운이 길게 남는 뮤지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사진 제공 송하엽_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미국건축사. 저서로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표면으로 읽는 건축>이 있으며, 서울건축문화제에서 ‘담박소쇄노들: 여름건축학교’ ‘한강감정: 강건축상상전’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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