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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영상 작가 라야의 서울 여행기동네를 산책하고 집 안을 탐색하다
영상작가 라야는 잠실과 친해지는 산책을 하는 동안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매료됐다. 어느새 복도와 계단참, 옥상으로 들어섰고 마침내 집 안을 탐색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가정방문’ 프로젝트. 골목을 산책하고 집 안을 탐색하는 동안, 그는 서울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

낯선 동네와 친해지는 법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잠실이다. 작은 서울 지도에서는 간혹 잘려나가기도 하는, 하지만 높은 롯데월드타워가 올라간 후로는 서울 지도 안에 항상 들어가는 추세인 곳이다. 잠실의 첫인상은 굉장히 좋지 않았다. 당시 다니던 학교와도 멀었고, 강남권에서 살아본 적도 없을뿐더러 어릴 때 롯데월드에 단체로 간 일을 제외하면 와본 적도 없는 동네였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모든 도로마다 공사 중이며 그 좁은 인도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위로가 되는 건 한두 해만 살다가 다시 이사를 간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벌써 2011년의 일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5년 넘게 (매년 이사 간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지내고 있다.
다행히 낯선 동네와 친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혼자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산책 습관은 어느 동네에서 지내든지 이어졌고, 잠실의 구석구석 새로운 곳으로 산책을 나가는 일이 즐거워졌다. 혼잡한 잠실의 대로변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조용하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을 하나씩 들어가보고, 단지 안의 다양한 산책로, 키가 큰 나무들, 복도와 옥상에서 보는 풍경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어릴 적 살던 아파트 단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모든 건물이 밖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장면들을 지니고 있었고, 익숙지 않은 동네의 건물들을 여행하듯이 하나씩 들어가보고 영역을 넓혀가며 점차 나만의 잠실을 만들어갔다.

서울 단상 관련 이미지1 키 큰 나무들을 품은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 풍경. 밖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장면이 곳곳에 숨어 있다.

서울 단상 관련 이미지2 일상적인 산책처럼 잠실의 건물들을 탐방한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엮은 책 <산책론>.

복도에서 집 안으로, 새로운 서울 여행법

초대받지 않은 건물 산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보통 세 가지, 외관과 내부 복도나 계단참, 그리고 (운이 좋다면) 옥상이다. 잠실의 아파트들을 다니며 그 세 가지만을 보곤 했고, 그보다 한단계 더 들어간 집 안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동시에 내가 모르는 다른 동네들의 풍경 또한 궁금해졌다. RPG 게임에서 캐릭터가 이동하며 지도를 확장하는 것처럼 신천동에서 둔촌동까지 걸으면서, 그 길에 있는 건물들과 아파트 단지를 들어가 보며 잠실에 대한 나만의 심리적인 지도를 만들었고 다른 동네와 다른 건물들도 가보고 싶어졌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 내에서 대여섯 번 옮겨 다니며 가족과 함께, 또는 혼자서 살았지만 서울에 대해서는 꽤 오랫동안 미미한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다. 행정구역으로 나누지 않고 지리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강의 북쪽도 남쪽도 아닌 곳, 가장 오래 살았던 장소인 여의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잠실에 대해 안 좋았던 인상을 천천히 걸으며 바꾼 것처럼 서울에 대해서도 내가 모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걷는 것은 관찰하고 익숙해지기에 가장 좋은 속도지만 듣도 보도 못한 동네로 갑자기 나를 이동시켜줄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내가 동네를 임의로 골라서 탐방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집의 외관과 내부, 그리고 동네를 영상으로 담는 ‘가정방문’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서 2015년 여름부터 1년간 낯선 장소 총 열 곳을 방문하고 촬영했다. 이 무작위의 만남은 집과 동네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는 분들의 마음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 단 한 집만 제외하고 난생처음 가는 동네와 건물이었고, 모두 서울 혹은 서울 근교임에도 인상은 천차만별이었다.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낯선 곳에 찾아가 하루 만에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는 누군가의 집과 넓은 우주인 동네를 촬영하며 서울을 횡단하는 일은 굉장히 새로웠다. 그렇게 다녀온 동네에 대한 인상은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강하게 남았고, 방문했던 집에 대한 느낌도 함께 기억에 남았다. 연신내 하면 연신내에서 촬영한 집이 떠오르고, 도봉산 하면 그 지역에서 촬영한 집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식이다. 집을 나서서 낯선 동네를 가는 일은 보통 소비-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공연이나 마켓 같은 행사를 가거나-와 연결된다. 그런 목적이 아닌, 오로지 집과 동네를 바라보는 걸 목적으로 다녔더니 서울에 대한 감각이 약간 달라졌고, 이게 나의 새로운 서울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엔 을지로의 공동작업실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사대문 안이 생활권이 되었다. 서울 중심부는 답답하고 좁은 느낌이라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자주 가게 되다 보니 점차 관심이 생기고, 옛 한양의 영역 안에 들어와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서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서울을 느끼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속도만큼 내가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도 꾸준히 변화할 것이고, 사람을 알아가듯이 도시를 계속해서 알아가는 중이다.문화+서울

글·사진 라야
영상 작가. 시간, 빛, 날씨, 계절 등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의 여러 인상을 담는다. 도시 풍경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 집을 촬영하는 ‘가정방문’을 진행 중이며, 잠실의 건물들을 산책하듯 탐방한 이야기를 책 <산책론>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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