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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11월호

어린이·청소년 예술교육공간, 지역을 바꾼다 호모 루덴스적 삶을 위해
예술은 본디 목적 없는 것이다. 예술이 교육의 영역과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의 효용을 따지기보다 충분히 경험하고 놀고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10월 8일 개관한 서서울예술교육센터는 온전히 예술의 경험과 창작과 놀이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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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비일상·무목적적 행위와 교육의 만남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즐거워야 할 배움의 공간으로서 학교는 그 기능과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다. 벌써 40년 전 <학교를 넘어서>라는 저서를 통해 세계적인 교육운동가로 각인된 존 홀트*는, 학교가 서열과 등급으로 대다수를 실패자로 만들어 사회에서 노예로 살아가도록 세뇌시키는 곳이므로 교육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자신의 비전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사는 것과 배우는 것이 따로따로가 아니며 ‘모든 지식은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행동’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식을 늘려가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산업화가 주인공이된 근대적 삶 이후 성인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삶에서도 공부와 일상은 격리되었고, 일상에서 놀이도 제거되었다. 예술은 가장 멀고 아득한 비일상, 그 자체였다.
21세기 현대로 넘어오면서 예술은 세계화한 생활환경에 맞추어 문화민주주의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문화복지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두 개의 굵직한 담론을 형성하며 새롭게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탈(?)포스트모더니즘으로서 예술이 비로소 그 어떤 특권층의 것도 아닌, 난해한 예술가들만의 전유물도 아닌 보편적 주제와 내용으로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공공자원으로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은 ‘창의성’이라는 매력적인 이름표를 달고 학교교육에 집중 지원되었다. 창조산업의 메카 영국에서 시작된 문화예술을 통한 교육·경제적 효과성 논의가 10년도 되지 않아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국의 이라는 학교 문제 해결을 위한 예술가 파견 지원 사업을 본떠 만든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을 통해 전국의 초중등학교에 예술강사를 파견해 10년 이상 학교수업을 보조해오고 있다. 예술가와 창조적 만남을 통해 학생 교육에 효과와 효율을 더하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이 과연 교육에 효과와 효율을 더해야 한다는 도구주의적 관점으로만 접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이 교육이라는 불편한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교육은 미래 사회를 담당할 주역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준비시키는 일이다. 그 역량이라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 아닌 예술의 부가적 혜택에서만 찾아지는 이 현실은 피할 수 없는 일인가? 교육의 본질은 경험이다. 존 듀이는 우리 삶에서 필요한 교육의 핵심이 지식교육이 아닌 감성교육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따라서 그는 삶의 질적 경험을 통해 변화와 성장이 완성될 수 있음을 그의 대표작인 <경험으로서 예술>을 통해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미국의 교육개혁을 부르짖었다. 우리의 인식과 삶은 항상 ‘상황적 연속’에 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상황을 경험하고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예술교육에 대한 사고의 패러다임적 전환이 필요하다.


“놀이는 유년기에 있어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영적인 인간 활동이다.”

- 프리드리히 프뢰벨

“나의 작업은 예술이 아니라 놀이에 가깝다.”

- 모리츠 에셔

예술적으로 최선을 다해 놀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지난 10월 8일 서울의 양천구 신월3동에서는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와 함께 소박하지만 다정한 얼굴들과 웃음소리가 넘치는 행사가 열렸다. 13년간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던 김포가압장(정수장)이 ‘0816 예술아지트’로 재탄생한, 서서울예술교육센터 개관 운영을 알리는 작은 축제가 열린 것이다. 경제적 관점으로만 접근했다면 진작에 철거했어야 할 폐산업시설이지만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역의 역사와 일상적 삶의 이야기가 담긴 예술적 창작의 무궁무진한 소재가 되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980년대 예술의 전당을 위시한 전국의 문화기반시설 조성의 성격이나 2000년대 붐을 이룬 예술가 입주(residency) 중심의 창작공간의 성격과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성격의 예술교육 전용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예산 부족 등으로 최소한의 공사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으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차별화된 자유로운 공간으로 거듭나 찾는 이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는 의외의 효과에, 예술은 목적하지 않을 때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오랜 격언을 떠올려본다.
서서울예술교육센터는 그러한 예술의 무목적성을 함축한 ‘놀이’를 핵심 콘셉트로 운영될 계획이다. 이미 북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는 학교와 문화시설이 아닌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제3의 공간으로서 예술교육 공간의 구성과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은 학교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스스로 배우고 성장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서서울예술교육센터는 관람이나 실기형 예술 활동이나 여가문화 향유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노는’ 경험이 미래의 삶을 구성하는 교육적 자원이 되도록 하는 다양한 활동과 사업을 지원하려고 한다. 센터는 그런 의미에서 문화시설이 아닌 교육연구시설로 등록되었다. 이곳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경쟁의 삶과 교육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존재감을 ‘예술 놀이’를 통해 확인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새로운 공간이 지역에 만들어내야 할 공간의 정치***일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호이징어가 ‘놀이적’ 인간을 명명했던 ‘호모 루덴스’의 의미를 예술 놀이를 통해 되살리는 일이 세계의 작은 한 켠, 대한민국의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일어나길 기대한다. 놀이에는 분명한 목적이나 동기가 없다. 놀이는 성패를 따지지 않으며 결과를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의무적인 과제도 아니다. 놀이는 상징적 언어가 형성되기 이전의 본능적인 느낌과 정서, 쾌락을 선사하고, 이것들은 창조적 통찰로부터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는 우리 자신만의 세계와 인격, 게임과 규칙을 만들게 하고 지식을 변형시키며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깊어가는 가을에 동네 어귀,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 위 어디라도 좋으니 아이들과 윤동주의 시 한 편 나눠 쓰며 예술적으로 놀아보는 건 어떨까?문화+서울

* 전 세계 프리스쿨, 대안교육, 홈스쿨링, 언스쿨링(탈학교) 등의 교육개혁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교사, 교육혁명가이자 저술가.
** 2016년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예산은 860억 원이며, 전국 8,777개교(전국 1만 1,563개교의 약 76%에 해당)에 5,047명의 예술강사를 파견하고 있다.
*** 현존 최고의 철학자 중 하나인 프랑스의 자크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 미학과 정치>에서 공동의 공간을 구성하는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는 활동을 예술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이야말로 정치이고, 기존의 감각 경험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활동을 공동의 공간에서 전개할 때 예술이 단지 저항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미학적 감성적 공동세계 형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공간의 정치다.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2007).

글 임미혜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본부장
그림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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