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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그리고 건축가 신형철의 <템플> 선박과 건축,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서
2013년 새롭게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마당에서는 매년 젊은 건축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재 들어서 있는 신형철 건축가의 <템플>은 구조물 자체의 시간성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닌 역사성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의미를 더하는 작품이다. 템플이 자리한 ‘마당’ 역시 줄곧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만나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0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 당선작 <템플>은 폐선박의 시간성과 용도의 의미에 ‘공간’의 가능성을 더한 흥미로운 조형물이다.

먼바다의 시간, 잠시 ‘신전’이 되다

경복궁 동십자각을 왼쪽에 두고 삼청로로 들어서면, 왼편에는 경복궁 담장이, 오른편에는 갤러리와 미술관이 이어진다. 3~4층짜리 갤러리 건물들을 따라 걷다보면, 경복궁 건춘문이 왼편에 보일 때쯤, 붉은색 벽돌의 긴 건물이 오른편에 나타난다. 울긋불긋한 벽돌과 화강석 띠줄 그리고 고풍스러운 창틀은 오래된 학교나 병원을 연상시킨다. 긴 건물이 만들어내는 수평적인 움직임은 150년 된 비술나무로 시선을 이끌고, 비술나무의 구체적인 형태를 가늠할 즈음 뒤로 살짝 물러선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편으로 제법 큰 빈 공간이 펼쳐진다. 그곳엔 거대한 붉은 기운의 쇳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다. 땅에서 솟구쳐 둥그렇게 하 나로 모아진 모습이 투구 같기도 하고, 배를 뒤집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긴 붉은 벽돌 건물이나 흰 건물은 모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물이다. 그리고 배를 뒤집어놓은 것 같은 구조물은 건축가 신형철(신스랩 아키텍처)의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젊은건축가 프로그램 2016>의 당선작 <템플’(Temp’L)>이다. 실제로 <템플>은 선박이었다. 고철로 팔려 해체될 운명의 폐선박 선수 부문만 잘라와 재조립한 것인데, 정확히 말하면 선박의 1/8이다.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1887~1965)가 자신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 1923)>에서 대형 여객선과 고전 건축을 비교하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역설한 것처럼, 건축가 신형철은 폐선박에서 새로운 건축 공간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템플>에 가까이 다가가면 지난 35년간 바다가 남긴 흔적이 서서히 드러난다. 수많은 긁힌 자국들, 움푹 파이고 불룩 튀어나온 자국들, 날렵한 선박의 모습 아래 숨겨졌던 수많은 상처가 아리게 눈앞에 펼쳐진다. 붉은 기운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 가면 새하얀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나머지 선체가 있어야 할 곳은 커다랗게 열려 미술관 카페와 뒤쪽의 종친부 건물까지 다 보인다. <템플’(Temp’L)>이라는 이름은 ‘임시’라는 뜻의 영문 Temporary와 ‘신전’을 의미하는 Temple이 합쳐진 단어인데, 한 때 배의 하부였던 곳은 새로운 ‘신전’의 천장이 되어 있다. 오랜 세월 부식으로 너덜너덜해진 구조물은, 새하얗게 칠해져 마치 고딕 성당의 리브 볼트(Rib Vault) 천장을 연상시킨다. 가만히 앉아 공간을 올려다보면 새삼 그 거대함에 감탄하게 된다. 둥그렇게 뚫어낸 구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눈을 감고 있으면 여기가 유럽의 어느 교회 안인지, 바닷속인지 분간할 수 없다.
눈을 뜨면 다시 미술관에 와 있다. 그리고 <템플>은 ‘미술관 마당’에 서 있다. 2014년에는 건축가 그룹 문지방(권경민, 박천강, 최장원)의 <신선놀음>이 이곳을 흥겨운 구름 풍선으로 가득 찬 놀이터로 만들었고, 2015년에는 건축가 이치훈과 강예린(Soa)의 <지붕감각>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지붕으로 시원한 그늘이 드리운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때로는 놀이터로, 때로는 공원으로, 때로는 야외전시장으로, 매년 젊은 건축가들의 참신한 작품에 의해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 이 공간의 매력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마당과 참 많이 닮았다. 우리의 옛집에서 마당이 때로는 놀이터로, 때로는 잔치 공간으로, 때로는 결혼식장으로, 때로는 추모의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이 공간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바다의 시간과 땅의 시간, 선박과 건축을 이은 ‘마당’

실제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는 마당이 참 많다. 경복궁 쪽에는 미술관의 앞마당 역할을 하는 ‘열린 마당’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오면 미술관 건물에 둘러싸여 야외 전시 공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미술관 마당’이 있다, 오랫동안 정독도서관 앞에 유배되어 있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종친부(宗親府) 건물들 앞에는 ‘종친부 마당’이 있는가 하면, 북쪽의 북촌5길에 인접한 디지털 도서관 앞에는 ‘도서관 마당’, 지하 전시 공간에 자연광을 끌어들이며 동시에 야외 전시 공간 역할을 하는 ‘전시마당’과, 그 외에도 이름도 없는 크고 작은 마당이 여기저기 많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건축가 민현준은, 건물보다 마당의 위치를 먼저 잡았다고 한다.
가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미술관 같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이 있다. 다른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비해 눈에 띄는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서 있는 이곳은 파란만장했던 우리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병원 건물 같은 붉은색 벽돌 건물은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부속 의원으로 시작해서, 군사정권 당시에는 ‘공작 정치’의 본산으로 이름만 불러도 잡혀갈 수 있다던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였다. 그런가 하면 미술관 뒤쪽에 서 있는 종친부(宗親府) 건물 두채는 조선시대 국왕의 친척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청으로, 기무사 테니스장을 만들기 위해 쫓겨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연도 많고 사건도 많은 이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역사적 사건을 대변하는 다양한 건물이 혼재하고, 다양한 가치관과 관점이 충돌 할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건축가는 거창한 랜드마크를 통해 또 다른 관점을 강요하기보다는, 오히려 비워내어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관점을 중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의도했다.
어떻게 보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진정한 중심은 ‘화이트 큐브’의 전시 공간이 아니라 비워진 마당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관광에 지친 이들에게는 휴식 공간으로, 전시를 보러온 이들에게는 시원한 야외 전시 공간으로, 근처에 사는 이들에게는 가로질러 갈 골목길이기도 하다. 또한 특정한 가치관이나 해석에서 자유롭게 풀려난 마당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기, 군사정권 시기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 건축가 신형철의 <템플>이 서 있다. 때로는 일본 만화에 나오는 ‘거신병(巨神兵)’이 연상되기도 하고, 때로는 유럽 여행 때 잠시 들른 어느 고딕 성당의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나는가 하면, 어느 4월에 차가운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를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템플>은 선박과 건축,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서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나만의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만들어가게 한다. 서울관의 마당처럼 말이다.문화+서울

글 조한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한디자인(HAHN Design) 대표로 건축·철학·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공간’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건축가 조한의 서울탐구>(돌베개, 2013)가 있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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