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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고양이책방 슈뢰딩거 주인장의 고향 같은 동네 ‘숭인동’생존을 위한 활력이 투박하게 살아 있는 골목
동대문에서 멀지 않은 동네 숭인동은 작은 봉제공장들이 곳곳에서 재봉틀 소리를 활발하게 내며 의류 생태계의 일부를 이루는 곳이다. 구옥과 다세대주택이 즐비하고 철물점, 슈퍼, 이용원 등 오래된 가게들이 이웃한 골목은 쾌적한 미감보다 ‘제 몫’의 삶을 일구는 활력이 느껴져 아름다운 곳이다. 김미정 씨는 고향 같은 이 동네에 1년 전 고양이책방 슈뢰딩거를 열어 동네 풍경의 한 켠을 이루고 있다.

서울 단상 관련 이미지

나의 고향은 서울, 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들리는 골목

엄마는 내 태교를 공업용 미싱으로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니가 시끄러운 음악 좋아하고 사방에 물건 어지럽히나 보다.”
‘사아아악’ 가위로 원단을 자르는 소리, ‘드르르르르륵,’ 엄마의 발목 움직임에 따라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재봉틀 소리, 곳곳에 쌓여 있는 알록달록한 천과 하얀 동정.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한복을 지으셨고 나는 그것이 항상 자랑스러웠다. 내가 물건 어지럽히는 것이 진짜 태교 때문인지는 의문이지만, 한옥과 한복을 좋아하는 건 확실히 엄마의 영향이다. 어쨌든 열 살 되던 해에 강원도로 이사 갈 때까지 가게와 공용 화장실이 딸린 집에서 내리 살았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건 8년 후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살았는데도 ‘고향이 어디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하다가 ‘강릉’이라고 대답했다. ‘고향’이라고 하면 산에서 나물 캐고 겨울에는 논밭에서 썰매 타고 강변에서 연날리기 정도는 했어야 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향’은 떠나온 곳이고 온통 시골 할머니 댁에 대한 향수로 그득한 곳이라고 교과서, 책, 노래를 통해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 그러다가 작년, 서울에 다시 살기 시작한지 12년째 되던 해, 그러니까 처음 서울을 떠나고 22년이 지나서야 나는 나에게 ‘고향’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 달았다.
한옥에 살고 싶어 부동산 중개업소를 뒤지고 뒤져 숭인동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리도 익힐 겸 골목 안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스름 저녁이었는데 가로등엔 불이 들어와 있고 골목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언덕배기에는 구옥과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물건을 실은 퀵 배달 오토바이들이 바쁘게 지나다녔다. 그리고 곳곳에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불 켜진 창문에서 들려오는 드르르륵 소리에 나는 몹시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엄마도 보고 싶었다. 나에게 고향은 재봉틀 소리가 들리는 서울의 주택가인 것이다. 비로소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공장, 동네 빵집, 철물점, 슈퍼…
그리고 고양이책방이 있는 숭인동

서울 단상 관련 이미지

나는 이 동네가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동네 산책은 계속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골목마다 작은 공장과 객공들이 재봉틀을 돌리는 가정집도 많았다. 동대문 상권이라 하면 대형 쇼핑몰과 도매상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이런 작은 가게와 공장들이 점조직처럼 모인 곳도 그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대로에서 한 블록만 안으로 들어오면 관광객으로 붐비는 북촌이나 세련된 서촌과는 다른 느낌의, 구옥과 한옥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이 나온다. 작은 한복집들과 한옥을 개조한 공방, 카페, 갤러리, 퍼브가 들어선 익선동과도 또 다르다. 이곳은 ‘힙’한 동네가 아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투박하고 생존을 위한 활력과 생활감이 골목에 가득하다. 특히 ‘마도메 방’이나 ‘시야게 집’, 알록달록한 실 같은 의류 부자재를 파는 곳과 작은 공장을 보면 이곳이 의류 생태계(상권이 아니다)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거미 줄같은 생태계 안에 우리 엄마도 나도 있었다.
서점을 열고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여기에 책방을 열 생각을 했는가?’였다. 웃으면서 ‘집에서 가까운 것이 장땡’이라고 했지만 아직 이런 1980~90년대 초반을 떠올리게하는 분위기가 골목 곳곳에 오롯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오래된 떡집, 이용원, 목욕탕, 동네 슈퍼도 그대로 남아 있다.
내 가게를 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다. 위치 선정, 인테리어, 큐레이션, 음악, 블로그 등 가게 운영을 둘러싼 모든 것에 나의 취향과 관심사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손님을 염두에 두고 유동인구가 많은 해방촌이나 홍대 부근도 고려했지만, 결국 숭인동으로 정했다. 나 좋자고 시작한 일이니까. “저는 고양이 좋아하고 책 좋아하고 이 동네 좋아해요. 서울에 아직 이런 곳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엄마가 만들어준 한복을 입고 내 사랑하는 고양이 조르바와 미오에게 ‘다녀올게~’ 손을 흔들고 한옥집 나무 문을 밀고 나와 길고양이들에게 깜빡 눈인사를 건넨다. 과일가게와 동네 빵집을 지나 출근길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점, 손으로 쓴 철물점 간판 ‘막힌 하수구’ 앞에서 ‘진짜 예쁘다!’ 하고 매일같이 감탄하며 ‘도담도담 한옥 도서관’을 지난다. 옷가게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유진미용실에 맡겨진 신간 도서 박스를 찾아온다. 청소를 하고 종이는 모아서 경제슈퍼에 가져간다. 슈퍼 옆에서는 재봉틀 소리가 들리고 골목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종종 꼬맹이들이 “엄마, 여기 고양이다!”라고 하며 창가에 진열해둔 그림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간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떠올릴 ‘고향’ 풍경에 내 책방 풍경도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문화+서울

글 김미정
고양이책방 슈뢰딩거 책방지기.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
그림 M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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