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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프롬스와 브렉시트, 영국의 클래식 음악 유럽과의 교류로 성장한 영국 음악과 역사
지난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결정된 후 유럽 안팎으로 정치·경제를 비롯한 각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이 예상됐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성립돼왔기에 브렉시트 이후에도 꾸준한 발전과 확장이 가능할지 주목하게 된다.

장윤선의 음악 정원으로 관련 이미지

유럽 클래식의 중요 무대 영국, 그리고 음악 축제 ‘프롬스’

매년 여름 런던에서는 약 8주간에 걸친 대규모 클래식 음악 축제 ‘프롬스(The Proms)’가 열린다. 1895년 처음 시작된 프롬스는 기존의 클래식 콘서트에 비해 저렴한 입장권으로 가볍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초창기의 관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promenading) 음악을 감상하던 관습에서 ‘프롬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데, 정식 명칭은 ‘헨리 우드 프롬나드 콘서트(The Henry Wood Promenade Concerts)’이다. 최초의 프롬스 무대를 지휘한 이래, 생애 동안 이 축제를 널리 알리며 정착시킨 지휘자 헨리 우드(Sir Henry Wood, 1869~1944)를 기념하기 위한 작명이다. 프롬스 기간에 중심 공연장인 ‘로열 알버트 홀’ 무대 중앙에는 그의 흉상이 놓인다.
헨리 우드가 태어난 19세기 중반경 런던에서는 산업혁명으로 확장된 소비 중심의 도시 문화가 고조되고 있었다. 런던은 피아노 작품의 ‘창작’이 아닌 피아노 ‘제조’의 중심지가 되었고, 높은 보수와 많은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주요 음악가들의 공개 연주회가 늘면서 대형 공연장도 잇따라 건설되었다. 프롬스의 발상지였던 런던 ‘퀸스 홀’ 역시 그러한 공간 중 하나로, 1893년에 문을 열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영국으로 귀화한 독일 출신의 헨델(G.F.Handel, 1685~1759)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런던을 오가며 활동했다. 이후에도 오스트리아의 하이든(J.Haydn, 1732~1809), 이탈리아의 클레멘티(M.Clementi, 1752~1832), 독일의 멘델스존(F.Mendelssohn, 1809~1847)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런던에 머물며 작곡과 연주를 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런던은 유럽의 대표적 음악 도시로 명성을 누렸다. 이는 오늘날 전해지는 클래식 레퍼토리가 주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대륙의 음악 위주로 채워져 있음에도, 음악사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입지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1976년부터 몇몇 해를 제외하고 꾸준히 프롬스에 참여하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Sir Simon Rattle, 1955~)은 올해도 자신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두 차례 공연하는데, 여기에는 영국인 작곡가 줄리안 앤더슨(Julian Anderson, 1967~)의 신작 초연도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음악을 구축한 원동력을 ‘유럽 대륙과의 끊임없는 교류’라고 스스로 평가해온 래틀은, 지난 2002년 영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다. 그는 애초부터 ‘음악은 특권이나 기회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청소년을 비롯한 대중 교육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보수적 전통의 베를린식 음악관에서 보자면 대단한 도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 소통으로 얻어낸 현지 단원들로부터의 신임과 한 차례의 임기 연장은 래틀의 존재감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8년 베를린 필과의 계약 만료를 앞둔 그는, 내년 가을부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는다. 브렉시트(Brexit)로 인한 음악 교류의 위축 가능성을 일찌감치 우려해온 그가 유럽연합 탈퇴를 확정한 영국으로 복귀하게 되면서, 향후 그의 역할에 기대되는 무게감도 적지 않다.

장윤선의 음악 정원으로 관련 이미지

주변국과 관계 주고받는 음악사, 언제나 현재 진행 중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영국의 고립 또는 영국 음악의 독자 노선 등에 대한 안팎의 예측이 이어지던 가운데, 올해 7월 중순의 프롬스 개막 공연은 프랑스의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연주로 시작되었다. 당시 충격을 준 프랑스 니스 테러의 슬픔을 공유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마련된 무대였다. 비슷한 시점에 영국의 신임 총리로 임명된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56~)가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에 등 돌린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한 언급과도 언뜻 맞닿은 듯 보이는 기획이다.
그럼에도 9월 둘째 주 토요일로 예정된 프롬스 마지막 날 무대는 예년과 다소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영국인 작곡가 엘가(E.Elgar, 1857~1934)의 ‘위풍당당 행진곡’ 일부에 가사를 붙인 ‘희망과 영광의 나라(Land of Hope and Glory)’를 합창하며,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중심으로 객석을 채우는 다양한 국기의 물결이 어우러지는 장면은 매년 프롬스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영국의 확장을 강조하는 이 노래 후렴구의 ‘더욱 넓고 넓게(Wider still and wider)’라는 구절이, 브렉시트 이후에도 계속해서 불릴 수 있을지는 주목할 부분이다.
영국인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Stephen Hough, 1961~)는 런던의 한 일간지 칼럼을 통해 “유럽이라는 색색의 실로 이어진 영국 음악계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를 배제해버린다면 결국 너덜너덜한 천 조각만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브렉시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의 음악이 결코 ‘영국’만으로 성립된 것이 아님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지점이다.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세계 명작’ 개념 아래 서양음악을 수용한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클래식 음악사는 대체로 학습하고 외워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개별 작품이나 인물에 얽힌 사전식 정보에 편중된 관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대나 지역에 연관된 거시적 흐름에 비중을 두는 경우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간략히 살펴본 영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음악사는 언제나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문화+서울


글 장윤선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하고 ‘근대 일본의 서양음악 수용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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