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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8월호

화동 고갯길로 새 길목 튼 ‘북촌마을안내소 및 편의시설’ 홍현, 시간의 모자이크
북촌은 서울에서 시간의 밀도가 조밀하게 쌓인 대표적인 공간이다. 몇 년 사이 관광객의 발길이 부쩍 늘면서 북촌의 풍경도 조금씩 변화했는데, 최근 정독도서관 부지의 일부를 새롭게 리모델링해 건립한 ‘북촌마을안내소 및 편의시설’은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모자이크한 건축적 방법이 돋보이는 곳이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아트선재센터 방향에서 바라본 ‘북촌마을안내소 및 편의시설’ 모습. 사진 왼편 계단 위로 보이는 건물이 서울교육박물관이며, 사진 오른 편으로 보이는 길이 화동 고갯길이다.

북촌은 다양한 역사적 배경이 맞물려 있는 곳이다. 조선 시대 약 600년에 이어 그 후 100년을 더한 세월이 공간에 켜켜이 스며 무언가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이곳은 요즘 평일에는 중장년층 방문객과 외국인 관광객이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즐기고, 주말에는 젊은 기운으로 가득 차곤 한다. 층이 낮은 건물과 고풍스럽게 지어진 새 건물이 공존하는 가운데, 그 사이로 난 꾸불텅꾸불텅한 골목길에 들어서면 높낮이의 차이에 의해 저 멀리 궁도 보였다가 서울성곽도 보였다가 하는 것이 산보의 재미를 더한다. 북촌이니만큼 이곳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있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섰던 자리가 바로 지금 정독도서관의 정원이다. 궁중의 화초를 키우던 장원서의 자리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김옥균, 서재필, 박제순의 집터도 있어 북촌답사 코스 중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갑신정변 주역들의 흔적을 만날 기회인 셈이다. 비교적 최근인 1981년에도 종친부의 경근당과 옥첩당 건물을 이 대지 안에 옮겼다가, 2013년에 원래 위치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쪽으로 옮겼다. 옛이야기와 새 이야기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주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북촌마을안내소, 담이 헐리고 새 길이 트이다

경복궁 동쪽의 북촌은 왕족과 사대부가 살던 고개로 낮은 구릉의 연속이다. 현재 정독도서관이 자리한 구릉 위 넓은 대지는 1976년까지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경기고등학교는 1900년대한제국 때 건립됐으며, 현재 정독도서관에 인접해 위치한 서울교육박물관은 ‘화동랑의 집’(1977)으로, 학생들이 방과후에 예절과 전통 춤, 음악 등을 배우던 곳이다. 이곳의 옛 지명은 ‘홍현(紅峴)’ 즉 땅이 붉은 흙으로 덮여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 ‘붉은 고개’인데 아마도 그런 이유로 건물도 붉은 벽돌로 지었나 보다. 대개 학교 건물이 차가운 빛의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것과 대비되기도 한다.
이 정독도서관 대지는 화동 고갯길에서 보면 마치 성북동의 부잣집이 그러하듯 높이 4m의 옹벽이 기다랗게 터를 둘러싸고 있었고, 벽 바깥은 통과 동선이나 다름없었다. 35m 길이의 화동길에 면한 옹벽은 서울교육박물관을 볼 수도 없게 위압적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담이었다. 그러던 이곳이 최근 1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새롭게 변화했다. 옹벽과 그 안쪽의 노후한 시설을 헐고 연면적 150.08m2의 규모로 주민 편의시설인 ‘북촌마을안내소 및 편의시설’이 지어진 것이다.
지난 4월 새로 문을 연 북촌마을안내소는 35m 길이의 옹벽이 있던 자리를 건물 3채와 빈틈 2개로 쪼개 화동길을 향해 열어 주었다. 건폐율 22%로 면적이 45평밖에 안 되는 작은 건물 3채는 빨간 벽돌과 밤에 빛을 내는 샌딩 유리로 되어 있고 그 사이에 서울교육박물관으로 올라가는 정다듬 돌계단을 끼고 있다. 예전의 ‘화동랑의 집’은 옹벽이 허물어진 덕에 화동 길에서 직접 접근이 가능해져 그 존재를 알리게 되었고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길도 훨씬 접근하기 용이해졌다.

북촌의 의미를 살린 것은 클리셰를 비켜간 상상력

북촌의 느낌은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났을까? 복고의 클리셰*와도 같은 돌담, 기와, 목조를 차용하지도 않으면서, 건축가 윤승현은 “화동길변의 건물군 표정을 닮은 15평 내외의 매스(mass)로 산개해 배치”했다고 한다. 건물의 재료는 벽돌, 아연판 지붕, 샌딩 유리, 콘크리트 바닥 등 현대적인 것들이지만, 두툼한 돌계단과 석재 벤치 등 서울교육박물관을 향한 비대칭적인 형태의 외부 공간이 전통적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경우다. 서쪽부터 본다면 갤러리의 벽돌 매스는 모전탑과 같이 재생벽돌을 내어 쌓아 지붕을 경사지게 만들었다. 재생벽돌의 지붕에 먼지와 흙이 쌓이고, 그 위에 씨앗이 날아오고 물이 흐르면 이름모를 풀이 자랄 것이다. 경사로를 올라가며 보이는 이 낮은 벽돌 지붕은 스스로 풍화되며 무언가를 키워 또 다른 시간의 겹을 더할 것이다.
홍현에 올라서면 북촌마을안내소의 아연 지붕이 내려다보이는데 마치 다른 집을 보는 듯하다. 화동길을 향해 열려 있어 그 위를 걷고 싶은 충동도 들며, 실제로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데크의 역할까지 할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낳는다. 그랬다면 화동길을 향한 다양한 레벨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외벽의 벽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어슷하게 줄지어 있어 마치 구멍이 송송 뚫린 듯 보이는 화장실 부분은 화장실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야심 찬 매스이며 레벨링을 극대화해 절묘한 광경을 만들었다. 기둥 없이 튀어나온 매스의 하단부는 낮게 드리워져 깊은 그늘을 만든다. 누하 진입을 하는 것 같은 낮은 높이의 콘크리트 매스와 벽돌 벽의 스킨은 아래에서 그 구조도 적나라하게 보이며, 도시의 거리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낮은 높이의 스케일을 보여주며, 동쪽에서 걸어오는 이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자아내는 입구를 만든다.
또한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 사이의 그것을 모로 세운 듯한 벤치는 마치 입구에 조각물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며 잠시 휴식할 수 있게 한다. 구상적인 조각이 아니어서 들여다보게 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시선을 끄는 참신한 방법이다.

공간의 용도, 시간의 밀도를 융화하는 건축

이렇듯 전체적인 구성은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유형들의 변형 및 조합으로, 마치 원래 있던 것인 듯 새것인 듯 자유로운 구성으로 시간의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다. 공공 영역의 경계를 담이나 옹벽으로 막지 않고 이렇게 열 수 있는 이유가 비단 관광객 응대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경계를 지우고 그 땅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며 누구나 쉽게 도시에서 휴식할 수 있는 불확정적인 공간을 어디 쉽게 만들 수 있을까. 홍현은 그런 섬세한 예측에 의해 변모한 곳으로, 지금부터의 걸맞은 이용과 불확정적인 공간에 대한 증폭은 시민의 몫으로도 남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태어나기전에 만들어진 도시도 그곳이 형성된 시간과 만나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 매개체 중의 하나인 건축은 나를 둘러싼 시간의 다툼을 알려주는 전령과 같다. 시간을 건축하는 것은 공간이 갖는 사실과 더불어 존재하는 가정적 상황을 알려주도록 제 손으로 맞춰야 하는 도시라는 태엽시계를 돌리는 일이다.문화+서울

* [문화+서울] 2016년 6월호 ‘복고, 클리셰와 크리에이티브 사이’ 참조

글 송하엽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미국건축사. 저서로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표면으로 읽는 건축>이 있으며, 서울건축문화제에서 ‘담박소쇄노들: 여름건축학교’ ‘한강감정: 한강건축상상전’을 기획했다.
사진 제공 (주)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윤승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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