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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평균율이 다 담지 못하는 미분음의 세계 ‘미’와 ‘파’ 그 사이에...
고등학교 때 수학을 공부하면서 반비례 함수의 그래프에 매료된 적이 있다.
a가 0보다 클 경우, x값이 커질수록 y값은 감소한다는데 그 모양새가 극단으로 치닫는 곡선이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값에서 확 줄어들어, x축에 닿지는 않되 어마어마하게 가까워지는 모양새가 경이로웠다.
아주 작지만 0은 아니라니….
계속 작아지면 언젠가는 0이 될 것만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그런데 음악에도 아주 작은 음정이 존재한다.

신지수의 음악 정원으로 관련 이미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건반에서 ‘미-파’와 ‘시-도’ 사이가 반음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미’와 ‘파’, 그리고 ‘시’와 ‘도’ 사이에는 검은 건반이 없다. 그러므로 두 음의 간격은 피아노에서 칠 수 있는 가장 좁은 간격의 음인 반음인 것이다. 반대로 ‘도’와 ‘레’ 사이에는 검은 건반이 하나 있어서 두 음의 간격이 반음의 두 배인 온음이 된다. 음악 이론을 배우는 초기 단계에서 다루는 음정 계산법은 이렇게 피아노 건반 상의 음정을 기준으로 다루게 되고, 그 계산을 위한 가장 작은 단위가 반음이다. 이것은 피아노처럼 미리 조율이 완벽히 되어 있지 않은 악기에도 해당되며 연주자들은 알아서 이 음정을 정확하게 맞춰나가야 한다. 음높이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정해져 있어서 누가 어디서 피아노를 연주하건 모두 같은 음높이로 조율된 악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음정 단위는 늘 반음이 최소 단위가 된다.

반음 사이에도 무수한 음이 존재한다

우리가 듣는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작은 음 간격으로 간주되는 반음보다도 더 좁은 음정이 존재할까? 당연히 존재한다. 음정이라는 것은 블록처럼 쌓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작은 음정도 물리적으로 존재하긴 한다. 단지 인간이 그것을 음정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음악에 활용되는 빈도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반음보다 더 작은 음정은 어떤 식으로 취급되고 연주될까? 서양의 현대음악에서는 반음의 절반인 1/4음의 사용이 상용화되었다. #(샵), b(플랫) 등의 임시표를 사용해 악보에 반음을 표시하는데, 이들과 흡사하게 생긴 새로운 임시표를 사용해 1/4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음정은 음높이가 고정돼있지 않은 구조의 악기(바이올린 등) 또는 사람의 목소리로 미세하게 컨트롤해 연주한다.
20세기 미국의 작곡가인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는 피아노에서 1/4음을 표현하는 곡 ‘The Quarter-Tone Pieces(세 개의 1/4음 곡)’를 썼는데, 두 대의 피아노 중 한 대는 모든 음을 기존의 조율보다 1/4음 높게 해둬야 한다. 사실상 악기에 엄청난 무리가 가는 일이기 때문에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다. 2010년에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 (Georg Friedrich Haas)가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독일의 도나우에슁겐 음악축제(Donaueschinger Musiktage) 폐막음악회에 선보였는데, 이 네 대의 피아노는 각기 1/12음 간격으로 조율돼 연주되었다. 작곡가 본인이 밝혔듯 이렇게까지 미세한 음정은 사실상 청중이 제대로 인식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이런 조율을 사용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굉장하다. 이 작품 또한 네 대의 피아노를 새로 조율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현대음악의 실험정신을 제대로 인정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연주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신지수의 음악 정원으로 관련 이미지이음계 악기인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평균율에서 표현할 수 없는 음정을 내는 악기(또는 합주 형태)로 현대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평균율에서 벗어나는 매력적인 실험

기존의 음높이대로 조율하지 않고 반음 이하의 간격으로 엇갈리게 조율한 악기를 연주하면 뭔가 잘못된 소리를 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의 귀가 고정된 조율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평균율 조율법은 숱한 시행착오의 역사 끝에 17세기 말에 서양음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고정된 음 간격을 부여해 한 옥타브를 12로 나누게 되면, 이런 방식으로 조율된 악기로는 어느 조성을 연주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는 현대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예전의 음악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다. 바하의 대표작인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는 전주곡과 푸가가 한 쌍을 이루는 곡이 총 48곡 있는데 이는 평균율로 조율되었을 때 모든 조성이 자연스럽게 연주되는 게 가능함을 증명해 보이는 최초의 작품집인 것이다.
서양문화권에서 시야를 돌려보면 평균율에서 벗어난 음의 체계는 많이 존재한다. 아랍음악, 인도음악, 인도네시아의 가믈란(Gamelan) 모두 계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음이 버젓이 존재하고, 악기 또한 그 음정을 연주할 수 있게끔 고안되어 있다. 특히 인도음악은 한 옥타브를 22음으로 나누면서 아주 작은 음정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12음으로 나뉜 서양음악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미세한 음정이 체계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평균율에 익숙한 우리의 귀가 미분음(반음 이하의 음정)을 듣기 시작하면 마치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 이면에 존재하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기분이 든다. 내가 굳게 믿고 의지하던 음의 체계가 싸그리 무너지는 조율법인 것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영역을 탐구하고자 하는 현대음악 작곡가와 연주자에게는 매력적인 소재인 것이다. 비단 음악가만의 일일까? 모든 사람이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당연한 듯 주어졌던 진리를 한 번쯤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권위 있는 자의 말의 무게에 의문을 품어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미분음이 쓰인 작품을 듣다가 해보았다.문화+서울

* 근대에 들어와서는 아쉽게도 서양의 평균율에 가깝게 감각이 퇴화하고 있어서, 일부 나이 많은 음악가들만 22음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글 신지수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후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즐긴다.
홈페이지 www.jeesooshin.com
블로그 jagt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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