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6월호

선물보다 순수한 동심이 빛나던 어린이날 풍경 오월은 언제나 어린이날
어린 시절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린 기억이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1970년대 초에는 다들 넉넉하지 않아 온 가족이 함께 짜장면 한 그릇 먹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그날만 되면 마음이 들떴습니다. 요즘이야 먹을 게 흐드러져 아이들이 짜장면은 거들떠보지도 않죠. 또 선물도 웬만한 걸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아 어린이날 하는 가장행렬도 큰 구경거리였습니다. 그 구경을 하려고 다들 거리로 몰려나갔더랬죠.

가장행렬로 들썩인 1967년 어린이날

1967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가장 행렬이 열렸습니다. 대학과 고교, 기업 등 13개 단체가 마련한 이날 가장행렬은 동대문구 서울운동장(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을 출발해 동대문, 종로, 세종로를 거쳐 서울시청 앞 광장(현 서울광장)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이 행사에 대해 “이 가장행렬에는 특히 동물 가장이 많아 이날의 서울 거리는 ‘동물의 왕국’을 방불케 했으며 연도에서 구경하던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이런 잔치 처음 본다’고 좋아했다.”고 썼습니다.
<사진1>은 손오공으로 분한 사람과 천으로 만든 대형 코끼리가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는 장면입니다. 손오공의 소품과 코끼리의 만듦새가 어설퍼 보입니다. 막대기 끝에 끈을 묶어 여의봉을 만들었고, 코끼리 다리 아래로 손수레 바퀴와 수레를 끄는 아저씨의 발이 보입니다. 코끼리 코도 살짝 찢어졌고요.
또 손오공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손에 든 무언가를 보며 걷고 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줄 법한데 말입니다. 코끼리 등에는 이걸 제작한 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천이 씌워져 있습니다.
<사진2>에는 신문 기사에 나왔듯 동물 탈을 쓴 사람이 보이네요. 엉성한 로봇도 있고요. 맨 왼쪽은 월트디즈니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흉내 낸 것 같은데 가운데 동물은 뭔지 모르겠네요. 곰 같기도 하고, 족제비 같기도 합니다. 로봇 탈을 쓴 사람은 앞이 잘 안 보였는지 옆에서 다른 사람이 함께 걸으며 발을 맞춰주고 있네요.
사진에는 없지만 이날 가장행렬의 하이라이트는 높이 8자 (약 2.4m), 길이 23자(약 7m)의 초대형 맘모스 빵이었습니다. 또 동물들의 인솔자는 호랑이였고요. 한국마사회에서는 조랑말을 타고 구식 결혼식을 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시시하다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행사지만 길가에서 이 행렬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납니다. 그때 아이들은 참 순수했습니다.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1> 1967년 어린이날 가장행렬에서 손오공으로 분장한 사람과 대형 코끼리.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 2> 가장행렬에서 동물 탈을 쓴 사람들.

90세를 넘긴 ‘어린이날’, 어른도 동심을 찾는 날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치러진 것은 지난 1922년 5월 1일입니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이 이끄는 천도교소년회가 이날 서울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처음 열었고, 이듬해 여러 소년 단체가 연합해 결성한 소년운동협회에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했습니다.
192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5월 첫째 주 일요일로 바뀌었고,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중단됐던 어린이날 행사는 광복 후 1946년부터 다시 개최됐습니다. 그해 5월 첫째 주 일요일이 5일이어서 그 이후로 5월 5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선포됐고, 1970년에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5037호)에 따라 어린이날이 공휴일로 정해진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날이 어린이들에게는 ‘천국’ 같지만 어른들은 뭘 사줘야 할지 뭘 먹여야 할지 고민이 많아집니다. 자신들도 밤잠을 설치며 설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친구처럼 놀아주는 건 어떨까요.문화+서울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