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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시간과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도동 고마워, 함께 천천히 나이 먹은 나의 동네
나고 자란 동네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다.
그곳이 서울에서 흔하디흔한 개발 광풍을 비켜난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동작구 상도동은 오래되고 평범한 동네다. 시간의 흔적이 얼마나 소중한지 공감하게 되는 때에,
이곳은 자연스레 팬 주름을 숨기지 않으며 토박이도 뜨내기도 인자하게 품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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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 270번지 골목길을 지나면 누구나 오르게 되는 언덕길

어릴 적 그 언덕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은 계절에 관계없이 숨이 차고 땀이 났다. 어릴 때는 쉬지 않고 한 번에 올라간 적이 없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중간에 큰 고목이 있어서 널찍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자주 그 나무에 기대앉아 쉬어가곤 했다. 지금은 그 나무가 없어졌지만 그곳을 지날 때면 무거운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내려놓고 두 발을 쭉 뻗고서 앉아 쉬던 어릴 적 내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보이던 크고 푸른 가지와 그 사이 사이의 파란 하늘과 시원한 그늘을 기억한다.
엄마와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의 언덕은 몇 배로 힘이 들었다. 무거운 장바구니와 드르륵 구루마를 끌고 걸어가면서 어떤 방법이 덜 힘들까 생각하며 뒤로도 올라가보고, 지그재그로도 올라가며 딴에 생각해낸 여러 수를 써보다가는 그게 더 힘들다는 걸 알고 쭉 한길로 걸어간 적도 있다.
어쩌다가 할머니랑 같이 언덕을 오를 때면 몇 번을 쉬었는지, 몇 시에 길을 나섰는지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동네 할머니들을 가는 곳마다 만나게 돼서 집에 갈 만하면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또 만나고 인사하고 그러다 나는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해가 질 때쯤 비몽사몽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집에 도착한 날도 있다.
아빠는 걸음이 빨라서 뒤에서 쫓아 걸었고, 할아버지는 늘 뒷짐을 지시고 천천히 주변을 산책하며 걸으셔서 나도 그렇게 따라 걸었다. 언니랑은 달리기 시합을 했고, 어린 남동생은 귀여워서 자주 업어줬다.
그 언덕을 몇 번을 오르고 내렸는지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시간도 많이 흘렀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그 동네에 살고 있고, 지금은 그 언덕 아래로 이사를 왔다. 이제는 언덕을 넘어 다니는 마을버스 노선이 두 개나 생기고, 길도 많아졌다. 가끔 동네 산책길에 언덕을 오를 때면 조금은 숨이 가쁘게 뛰지만 그래도 지금은 오를 만한 언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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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이 사는 동네

누구에게나 동네는 있다. 어릴 적부터 자라온 동네가 아니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있을 것이다. 자기가 사는 집의 근처를 동네라고 한다. 근처에 뭐가 있는지 아는 곳. 그곳이 바로 동네인 것이다. 언덕이 있고,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무서운 골목이 있고, 꼭 한자리에만 앉아 있는 시크한 길냥이가 있고, 오래된 간판이 달린 이발소가 있고, 자주 고장 나는 가로등이 있는. 사는 곳 근처에 이런 것들이 있는 나의 동네는 상도동이다. 상도동에는 포근함과 친근함이 묻어 있다. 재개발을 피해간 지역이라 서울의 여타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더뎌 아직 시골 같은 곳이 많이 남아 있는 오래되고 낡은 동네다.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고 있어준 동네가 그저 고맙고, 지난 추억을 마주할 수 있는 흔적이 곳곳에 있는 상도동 내 동네가 정말 좋다.
한동네에서 나고 자라 어느덧 어른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무역회사를 다녔다. 직장 생활을 하던 중에 대안적 인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5년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지금은 동네에서 일을 하고 있다. 상도동에 있던 문화예술 공유 공간인 청춘플랫폼을 통해 대안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들을 알게 되었고, 1년 전부터 함께 일하면서 공간을 직접 운영하고 프로그램도 기획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과 삶의 균형과 대안적인 일에 대한 방식과 방법에 대해서도 조금씩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청춘플랫폼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도동에 사는 또래 청년을 여럿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동네 친구를 만나게 된 셈이다. 다 커서 만난 동네 친구? 새로웠다. 동네 친구라고 하면 대개 어릴 때 알고 지내며 옆집이나 같은 골목에 살거나 했던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만난 동네 친구는 어색하기도 하면서도 알듯 말듯 뭔지 모를 익숙함과 친근함이 묻어 있었다. 잡지 <상도동 그 청년>을 만들게 된 것도 동네 친구를 더 많이 만나고 싶어서였다. 하숙생처럼 집에서는 잠만 자는 동네 청년 없을까? 프리랜서로 작업을 하고 있는 청년은?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 오면서 상도동이 낯선 청년은? 혹시 나와 같이 3대째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상도동 토박이는? 하나둘 이 동네 청년들을 모아보았다. 다 커서 만난 동네 친구와의 알듯 말듯 했던 친근함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유대감이었을까? 동네 이야기만으로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낡은 동네와 좁은 골목들. 없어진 정류장과 문 닫은 구멍가게. 간판만 바뀌고 그대로인 문방구와 아직도 떡볶이가 1000원인 분식집. 20대, 30대인 우리가 두 시간 넘게 떠든 대화의 주제들이었다. 꿈꾸는 듯 대화하며 추억의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면 나도 어릴 적 그곳에서의 소중한 추억이 생각나 소풍 가기 전날처럼 설레고 신이 났다. 지금은 그때 만난 상도동 그 청년들이 직접 기획과 편집, 디자인, 기자 등의 역할을 나누어 ‘상도동 그 ㅇㅇ’ 두 번째 이야기 <상도동 그 가게>를 만들어가고 있다. 동네 사람이 만드는, 동네 이야기를 담은, 동네 기록 잡지. 동네 청년들이 바라본 상도동 이야기가 벌써 궁금해진다.

상도동은 우리 동네다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곳을 동네라고 한다면, 그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되는 건 집 근처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 즉 친구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부터 나고 자란 정 깃든 동네가 아니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웃과 친구를 통해 동네 골목 구석에 작은 추억이 서릴 때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도 오래된 이 동네에서 천천히 쌓이는 눈처럼 마음 한켠에는 사람을, 또 어느 한켠에는 관계를 쌓는다. 어느새 무릎까지 쌓일 눈처럼 이 시간이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이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다정한 당신에게도 그 한켠이 허락되기를….
저녁 공기가 맑은 어느 산책길에 동네 한 바퀴 걷다가 우리 서로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합시다.문화+서울

글 김수연
잡지 <상도동 그 청년> 기획 및 편집을 했고, BLANK에서 공유공간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그림 M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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