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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미드 <왕좌의 게임> 시즌6이 시작됐다! 가장 이상적인 리더를 품은 판타지물의 마력
관계의 치밀한 묘사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어서 끌린다. 삶의 예측불가능성이 그대로 작동하는 세계를 들여다보며 많은 팬이 각자 염원하는 ‘이 시대의 리더’를 찾고 몰입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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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보다 리얼한 캐릭터, 그 거대한 판타지

얼마 전 시사주간지 <타임>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이 대통령으로 적합하다며 꼽은 인물은 다소 의외의 인물이었다. 1위에 오른 이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도 아닌, HBO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등장인물 티리온 라니스터 였던 것이다. 드라마 속 가상인물 티리온 라니스터는 해당 조사에서 민주당의 또 다른 대선후보인 버니 샌더스와 동률인 24%의 지지를 얻어 미국 유권자가 꼽은 대통령감 공동 1위에 올랐다. 이 조사에서 민주당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20%의 지지율로 3위에 그쳤으며, 그 뒤는 <왕좌의 게임>의 또 다른 주역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이 차지했다. 그렇다고 대너리스가 겨우 숟가락만 얹은 것도 아니었다. 14%의 지지를 얻은 대너리스는 공화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의 7% 지지율과, 트럼프와 경선을 이어갔던 테드 크루즈의 5%를 합한 것보다도 많은 표를 얻은 것이다. 차기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실시했을 설문치고 다소 의외의 결과였던 만큼 함의를 파헤친다면 꽤 복잡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미드 <왕좌의 게임>의 인기가 한낱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최근 여섯 번째 시즌을 시작한 <왕좌의 게임>의 인기 요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앞선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온전히 ‘캐릭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회당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이는 만큼 우선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해야 할 것 같은 판타지 작품임에도 의외로 작품의 절대적 재미는 기존 판타지 영상물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긴 여름이 지나면 수년간의 길고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는 ‘세븐킹덤’은 중세 유럽을 모티프로 한 완전한 이세계지만, 기존 판타지 장르처럼 화려한 마법이나 이형의 몬스터에 의존하진 않는다. 대부분의 관심사는 왕권을 둘러싸고 펼치는 모략과 그에따른 몰락에 있다. <왕좌의 게임>의 주인공은 온전히 살아 있는 ‘인간’인 것이다.
덕분에 북부에 도사리는 미지의 존재에 맞서 거대한 장벽을 쌓은 기이한 가상세계마저 인간의 다양한 동인을 뒷받침하기 위한 한낱 장치에 불과해 보인다. 지역마다, 종족마다, 집단마다 가진 각기 다른 문화와 관습을 치밀하게 그려냄으로써 허구의 세계에 굉장한 리얼리티를 더할 뿐만 아니라, 이를 각 개인의 성향과 연결 지음으로써 기백에 이르는 캐릭터 하나하나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진짜 인간으로 거듭난다. 자연히 이들 각자의 욕망과 가혹한 운명을 섬세하게 엮어가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이세계에 동화되기 충분하다. 티리온과 대너리스에게 우리 시대 리더의 모습을 투사하고 염원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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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처럼 아이러니한 세계,
그 안에서 각자의 이상향을 찾는 재미

미드 <왕좌의 게임>의 원작은 조지 R. R. 마틴의 대하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다. 오늘날 장르소설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중 하나로 1996년 시리즈의 1부 <왕좌의 게임>을 시작으로 <왕들의 전쟁> <성검의 폭풍> <까마귀의 향연> <드래곤과의 춤>까지 총 5부가 출간됐다. 이 중 1부의 제목을 메인 타이틀로 삼은 드라마는 원작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효과적으로 현현함으로써 캐릭터의 매력을 더욱 배가했다.
원작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각 챕터의 제목을 캐릭터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인물들의 시선을 번갈아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당연하다는 듯 얼핏 악인으로 비치던 인물에게까지 시점을 할애하기도 한다. 자연히 주인공 또한 따로 정해진 바 없다. 덕분에 주요 인물마저 뜻밖의 상황에서 뜻밖의 인물에게 뜻밖의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작품 특유의 전개는 허를 찌르는 서사적 반전 이상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작품 내에서 ‘발라 모르굴리스(Valar Morghulis)’라는 고대어로 반복되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말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만큼 작품 내 모든 이에게 죽음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다. 올곧은 행동이 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왕좌의 게임>은 권선징악의 세계도 아니고 등가교환의 세계는 더더욱 아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세계. 그러나 의지를 놓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세계.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이들의 인생이 하나같이 기구하고 잔혹하며 아이러니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기구한 운명 가운데도 눈에 띄는 이는 있다. 앞서 언급한 티리온과 대너리스를 비롯해 존 스노우, 아리아 스타크 등이 그렇다. 영리한 난쟁이 티리온 라니스터가 뛰어난 책략가로서 위기를 타개하고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로 상대를 압도할 때 주는 쾌감은 실로 대단하다. 원작자인 조지 R. R. 마틴 역시 티리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흑백으로 명확하게 나뉘는 인물보다는 선악 양면을 모두 가진 회색에 가까운 인물에게 더 흥미를 느낀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냉소적인 티리온은 회색 가운데서도 가장 다채로운 회색을 띤 인물이다.” 또한 고향에서 쫓겨나 맨몸으로 야만족에 의탁하게 된 소녀 대너리스의 성장은 작품 최대의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야만족 도트락인을 이끄는 여왕으로, 노예해 방자로, 나아가 세 마리 용을 부리는 작중 가장 판타지적 존재로서 입지를 다져나가는 그의 위용은 이 작품 마지막 승리자를 자처하기 충분해 보인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에 매료됐는지도 모르겠다.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의 판타지에서 진짜 인간을 찾아 헤매나니, 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문화+서울

글 강상준
등의 매체에서 줄곧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살았다. <위대한 망가>를 썼고, <매거진 컬처> <젊은 목수들>을 공저했으며,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을 번역했고, <좀비사전> <탐정사전>을 기획, 편집했다. 현재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겸 프리랜스 편집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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