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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컴퓨터 사보 프로그램의 진화 소리를 그리는 소프트웨어
‘사보(寫譜)’는 악보에 곡을 옮겨 적는 작업을 말한다. 곡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소리를 음표로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것도 작곡가의 중요한 일이다. 전에는 종이 악보에 손으로 일일이 음표를 그려야 했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의 발달 덕에 작곡가들은 ‘손사보’의 수고를 조금씩 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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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작곡을 한 것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어느 날, 이 모든 것이 참 지루하고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미 있는 것 말고 뭔가 새로운 곡을 지어서 친다면 더 재미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짧은 피아노곡을 작곡했는데, 문제는 악보로 그리는 작업이었다. 음악 시간에 간단하게 배우기는 했지만, 악보를 읽는 것만 많이 했지, 쓰는 것은 해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어색하고 힘들었다. 결국 곡을 쓰는 것보다는 악보를 그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려서 이후에 곡을 쓰지 않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하면서 다시 쓰게 되었다.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음표를 그리는 작업이 고되고 힘들어서 작곡이 꺼려진 것이다. 결국 자신이 생각해낸 소리들을 음표로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것 또한 작곡가로서 갖춰야 할 능력이었던 것이다.

손사보의 고단함을 덜어준 ‘앙코르’와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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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위해선 글자로 적어야 하듯이, 곡을 쓰기 위해선 음표를 그려야 한다. 이 음표 그리는 작업을 ‘사보’라 하는데, 작곡과 대학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 대부분은 손으로 사보를 깨끗하게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손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사보를 많이 하게 되고, 보기 좋게 음들을 나열해가며 예쁘게 음표를 그리려고 노력하면서 틈틈이 연필을 깎고 있다 보면, 내가 치르는 입시가 음대인지 미대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사보 작업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대학에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입학과 동시에 컴퓨터로 사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지금은 많은 음대생이 다룰 줄 알지만 당시만 해도 손사보를 하는 사람과 컴퓨터 사보를 하는 사람이 비슷하게 공존했고, 심지어 선배들 사이에선 과연 컴퓨터로 사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손으로 사보했을 경우, 각자의 필체가 고스란히 악보에 배어 나오고 작곡가의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비록 번거롭더라도 더욱 아름다운 결과물을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손사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는 마치 소설가에게 직접 글을 손으로 써서 출판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시인 정도면 모르겠지만, 장편소설을 쓰는 소설가에겐 무리한 요구 아닌가. 음악도 간단한 피아노 소품이라면 손사보를 할 만하겠지만, 악기 수십 개가 나오는 교향곡을 손사보 하려면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기고 시력이 급격히 나빠질 것만 같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은 질색하는 필자로서는 컴퓨터 사보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고, 하루빨리 이를 익혀서 손사보에서 해방되는 날만을 고대했다. 이때 당시 처음 접한 사보 프로그램은 ‘피날레(Finale) 97’이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불편하고 번거로웠지만, 단지 음표 모양을 일정하게 프린트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감사할 지경이었다.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서 쓰이던 프로그램으로는 ‘앙코르(Encore)’와 ‘피날레’ 두 가지가 있었다. 앙코르는 배우기 간편한 대신 기능에 한계가 있었고, 피날레는 표현 가능성은 다양하지만 배우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대체로 현대음악까지 사보를 해야 하는 작곡과 학생들의 경우 결국 피날레를 사용해야하는 환경이었지만, 한번 앙코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갈아타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다행히 필자는 신입생 때 피날레 사보 아르바이트를 구했던 만큼, 빠른 시간 내에 피날레를 익혀야만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어서, 이후에 곡을 쓸 때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난 꿈의 프로그램 ‘시벨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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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로 열심히 사보하던 대학 시절을 몇 년 보내고 슬슬 졸업을 준비할 무렵, 피날레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편하고 기능적으로 월등한 사보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벨리우스(Sibelius)’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인데, 여기에는 피날레의 번거로운 점들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피날레의 경우 입력하는 내용에 따라 매번 툴 바에서 해당 내용을 클릭해야 했다. 예를 들어 음표를 입력하다가 셈여림을 입력하려면 마치 워드에서 글씨를 쓰다가 표를 삽입하듯 마우스로 해당 툴을 클릭한 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피날레와 달리 시벨리우스는 이런 것들이 모두 단축키로 돼 있어서 마우스 쓸 일이 훨씬 적었다. 요약하면, 시벨리우스는 컴퓨터가 아닌, 실제 종이에 악보를 그리는 환경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당장 이 꿈의 프로그램을 구해서 사용해보고 싶었으나, 피날레와는 달리 엄청난 고가인 데다, 음대에 설치되어 있지도 않고, 어둠의 경로조차 전무해 도저히 학생의 처지로서는 구매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막연한 동경과 궁금함만을 간직한 채 또 몇 년이 흘러 유학길에 올랐는데, 그곳에서도 피날레와 시벨리우스의 우열을 가리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피날레를 사용하다 시벨리우스로 갈아탄 사람들의 열정적인 시벨리우스 예찬을 들어보면 당장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현대음악 악보의 다양한 특수 주법을 무궁무진하게 입력할 수 있는 것으로 피날레의 다양성과 유연함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주장도 들려왔다. 그러다가 작곡 콩쿠르에 입상해 시벨리우스 프로그램을 부상으로 받게 되었다. 그길로 달려와 같이 들어 있던 매뉴얼책과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 내내 프로그램 익히기에 전념했다.
일단 시벨리우스는 ‘갈아타기’라는 행위가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익히기 쉬웠다. 몇몇 단축키가 다르게 지정되어 있는 것만 헷갈리지 않으면 피날레를 오래 써온 사람도 큰 무리 없이 소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일단 입력 속도와 효율이 비교도 안 되게 빠르고 높았다. 그동안 내가 왜 그토록 피날레로 사보하며 시간을 낭비해왔나 싶을 정도였다.

작곡과 사보가 바로 가능할 정도로 발달한 기술

요즘은 연주자를 위해 종이 악보 대신 아이패드로 시벨리우스나 피날레 파일을 열어 악보를 보고 넘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상용화되었다. 얼마 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스태프 패드(Staff Pad)’를 개발해 아이패드와 같은 터치 화면에 악보를 디지털 펜으로 그리면 바로 인식해 사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시벨리우스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기술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Windows10이 깔려 있는 ‘Surface’라는 태블릿 PC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사보 프로그램 하나만을 위해 태블릿 PC를 사는 것은 참 낭비겠지만, 어쩐지 강렬한 구매욕이 샘솟는다. 이것만 있으면 요즘처럼 바쁜 날, 지하철에서도 쉽게 곡을 쓰고 바로 사보까지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문화+서울

글 신지수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후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즐긴다.
홈페이지
www.jeesooshin.com
블로그
jagt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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