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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최초의 국산 자동차인 ‘시발차’와 시민의 짐꾼 ‘삼륜차’ 대견했던 첫 국산 자동차의 등장
1950년대 서울 거리를 누비던 ‘시발택시’를 아십니까. 기우뚱거리며 달리던 ‘삼륜차’를 기억하시나요.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사진 1> 1950년대 시발택시.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사진 2> 1959년 삼륜차.

최초의 국산 자동차인 ‘시발’은 드럼통을 펴서 외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양은 군용 지프를 닮았고요. 이 자동차의 로고 ‘시-바ㄹ’은 첫출발을 의미하는 ‘시발(始發)’이라는 한자어를 풀어쓰기 방식으로 표현한 겁니다.
1955년 8월부터 1963년 5월까지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에서 제작한 이 지프형 자동차는 1955년 10월 광복 10주년을 기념해 국산장려회가 주최한 산업박람회에 출품돼 최우수상품으로 선정되고, 대통령상까지 수상하며 일반인에게 알려졌습니다. 시발차 가격은 처음에는 8만 환대였다가 택시 회사들이 관심을 가지며 30만 환대로 올랐습니다. 이후 영업용 택시로 많이 이용되며 시발택시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 차는 현재 한 대도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삼륜차’는 1962년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에서 처음으로 생산했습니다. 삼륜차는 대부분 짐을 실어 나르는 용달차로 사용됐습니다. 주로 이삿짐을 옮기는 데 쓰였죠. 삼륜차를 떠올리면 새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짐을 가득 싣고 조수석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짓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그려집니다. 1975년 삼륜용달차의 기본요금이 700원이었습니다. 웬만한 거리를 가도 5000원이면 충분했을 듯합니다.

한국 자동차 생산의 발판이 된 ‘시발자동차’

<사진1>은 시발택시가 서울 남대문로를 늠름하게 달리는 모습 입니다. 시발은 1960년대 초 ‘새나라’가 나오면서 판매량이 급감했고, 1960년대 말 ‘관광 한국’을 위한 도시 미화의 일환으로 폐기됐습니다. 뭐든 처음 시작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위대한 일도 시작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시발자동차는 한국을 세계 자동차 생산국 5위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든 든든한 발판이었습니다.
시발택시가 한창 유행하던 1950년대 후반에 택시 강도가 성행했습니다. 1958년 4월 시발택시만 노린 강도가 하룻밤 사이 세 차례 강도 행각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이 강도는 12번이나 시발택시 운전기사를 털었다고 합니다. 또 그해 12월에는 승객을 가장해 시발택시에 탄 강도가 나무로 만든 모의 권총으로 운전기사를 위협하다 검문에 걸려 잡힌 일도 있습니다.
당시 교통이 그리 혼잡하지 않았지만 사고는 많았습니다. 1959년 7월 종로1가 전찻길을 달리던 시발택시가 노면전차 사이에 끼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차는 대파됐고, 운전기사는 전치 1주의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택시 미터기가 없었습니다. 택시 미터제를 추진하던 서울시는 1961년 11월 1일부터 임시로 택시 기본요금을 책정했습니다. 시발택시는 2km를 기본요금 거리로 정하고, 250환을 받았습니다. 또 500m마다 50환씩 추가됐습니다. 대기료는 10분에 50환이었으며 교외 등 특수 지역 운행 시 요금의 2할이 붙었고, 왕복 운행 시에는 요금의 2할을 빼줬습니다.

시발자동차, 삼륜차… 한국 자동차 역사에 기억될 만한 존재

1966년 한 신문에 폐차 위기에 놓인 시발자동차를 위로하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이 칼럼은 당시 폐선 위기에 놓인 호화 여객선 ‘퀸 메리’호를 빗대서 썼습니다. “그 호화선이 폐선된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문득 ‘시발’이 생각이 난다… 그 배처럼 세계적 에피소드와 찬란한 항해의 역사는 지니지 못했지만 시발이 처음 서울거리에 등장했을 땐 그래도 대견스러웠다… 시발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새나라’에 밀렸고, ‘코로나’에도 밀려 그만 고물상에 가게 됐다… 앞으로 살길은 골동품적인 가치를 노릴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처음 생긴 시발택시, 슬퍼 말라. 그래도 자동차사의 첫 페이지에 이름이 오를 터이니….”
<사진2>는 1959년 종로구 수송동 옛 숙명여고 옆길에서 찍힌 삼륜차의 모습입니다. 당시 국내에서 삼륜차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입해 들여온 차로 보입니다. 이 차는 조금 불안해 보이지만 꽤 달렸나 봅니다. 1972년 6월 ‘운전자에게 피로가 빨리 오고, 앞바퀴가 하나여서 방향 조종할 때 위험하다’는 이유로 통행이 제한될 때까지 고속도로도 달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삼륜차가 고속도로를 운행하며 사고도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앞바퀴가 하나라 빠른 속도에서 중심을 잃는 일이 많아 대부분 전복사고였습니다.
시발자동차와 삼륜차 모두 처음 나왔을 당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세월의 그늘 속에 사라져버렸고, 이제는 추억의 산물이 됐습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문화+서울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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