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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골목’ 철거를 앞두고 우리는 도시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종로구 무악동, 서대문형무소 앞 무악제2지구는 ‘옥바라지 골목’으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 등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이들의 가족이 옥바라지를 위해 드나든 곳이어서 생긴 별칭이다. 서울에서 역사적 의미와 시간의 흔적을 조용히 지닌 몇 안 되는 곳이다. 이 옥바라지 골목이 재개발계획에 의해 철거된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반복되는 듯하다.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골목에는 대서소, 형무소에 면회를 하거나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대신 써주는 가게들이 있었다(2016).

아파트만이 허용되는 서울

서울은 600년 가까이 된 도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잔혹했던 6·25전쟁 때문에 이 도시가 정말 그리 오래된 도시인지 그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2000년대 서울을 휩쓴 재개발 광풍도 한몫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재산을 불리는 방법은 부동산밖에 없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헌집 주면 새집 준다는 말로 건설사들은 오래된 동네들을 무분별하게 부수고 아파트로 대치했다. 건설사와 재개발 찬성 조합에 무한한 권한을 주는 일, 그것을 시에서는 거버넌스 즉 민관협치라 했다. 아파트 재개발로 인한 부작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높은 분담금으로 막상 원주민들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살 수도 없고, 시세보다 훨씬 낮은 돈을 보상받는다. 정당한 보상을 원하면 구청과 조합 측은 떼쓰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결국 제대로 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외곽으로 쫓겨난다. 예를 들어 길음 뉴타운의 실질적 원주민 정착률은 20%도 안 되며, 서울 지역 뉴타운 대부분의 사정도 같다. 결국 서울 어디든 작은 주택가나 골목은 지난 10년 동안 거의 사라졌고 모두 아파트라는 동일한 형태의 주거 방식을 강요받게 되었다. 주거의 형태는 삶과 문화와도 직결된다. 한 가지 주거 방식만을 권장하는 도시에서 과연 다양한 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구식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100년 된 마을

무조건 부수고 모두 새로 짓는 개발 방식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경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2006년부터 도시재생 연구를 시작해 도시재생법이 2013년 4월 30일 제정되었고, 서울시도 2014년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구식 재개발 방식은 여전하다. 서울에 뉴타운이 200여 개 해제되었지만 아직 300여 곳이 넘는 곳에 재개발 조합이 만들어져 분쟁 중이다.
구식 재개발은 100년 넘은 역사적 마을 옥바라지 골목도 비켜가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 앞 무악제 2지구는 ‘옥바라지 골목’으로 알려져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본디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나 항일 세력을 가두려고 만든 감옥으로, 김구·김좌진·손병희·유관순 등이 투옥되었으며,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 많은 시국사범이,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었다. 수용수들의 밥이며 옷가지를 챙겨주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들었고, 여관이니 식당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옥바라지 골목이 형성되었다.
1963년부터 1988년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장기수 생활을 한 박인수(92세, 가명)선생의 부인 김수영(83세, 가명) 씨는 치마바위에 올라 남편이 수감된 서대문형무소를 바라보던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감옥에 투옥된 남편을 기다리며 김수영 씨는 20년 넘게 옥바라지를 했고, 서대문형무소 앞 옥바라지 골목을 한 달에 한두 번씩 방문했다. 감옥에 갇힌 누군가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들로 치마바위 앞은 늘 붐볐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초를 하도 태워 바위가 거무죽죽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리슨투더시티’가 가장 주목한 기억은 바로 이 마을에 36년째 살고 있는 최은아(50) 씨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기억이다. 초등학교 때 이사 온 이후로 이 골목에서 자라고 결혼해 자신의 아이까지 같은 집에서 키우고 있다. 어릴 적 여관이 많아서 너무 창피하기도 했던 이 마을, 좁은 계단과 골목이 있는 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낡아도 문화가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어요. 구불구불한 골목이며 100년 넘은 집들이 문화가 아닌가요?” 자신이 성장한 곳의 기억은 독립투사의 가족의, 민주화 열사 가족의 옥바라지에 대한 역사와 기록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을까?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옥바라지 골목에는 100년 넘은 한옥, 적산가옥, 다수의 여관 건물들이 있었다. 현재 10여 가구가 살고 있지만 강제 철거를 진행중이다(2016).

기억은 구체적인 장치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는 “기억은 구체적인 장치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사람들이 요즘 복고니 골목에 열광하는 것은 인간이 기억으로부터 심리적, 존재적 안정을 얻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뒤덮인 서울에 서울의 역사를 기억할 장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무악 2구역은 10층 아파트 달랑 네 동 짓는 작은 개발 사업이다. 아파트 네 동과 옥바라지 골목을 맞바꾸는 건 아무리 봐도 밑지는 장사다.
아직 주민들이 살고 있는 무악동은 현재 예비 철거가 진행되었고, 서울시에서 구청에 문화재지표조사 권고를 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에서 만든 강제퇴거 금지 조례도 종로구에서는 무시하고 있다. 강제철거를 멈추고 역사 보존과 주민의 권리에 대한 투명한 협의체를 운영해야 한다. 우리는 도시에서 무엇을 추억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토론한 경험이 거의 없다. 지난 10년, 유구한 역사의 피맛골이 상가로 변하고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지고 청계천상가가 반토막 났다. 수많은 상인이 가게를 잃었고 재개발로 동네는 사라졌다. 삶과 문화는 직결된다. 자신의 보금자리와 일터에서 지속적으로 쫓겨나는 시민이 과연 문화를 창조하고 영위할 수 있을까?문화+서울

글·사진 박은선
도시 예술 디자인 창작공동체 리슨투더시티 기획자로, 순수 미술과 도시공학을 전공했다. 도시를 비롯한 공동공간의 개념에 관심이 많으며, 내성천친구들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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