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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영화제 프로그래머 조지훈 영화제, 프로그래머, 그리고 밥그릇
언젠가 한 사진가가 말했다. “사진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세상이 왜 바뀌어야 하는지 보여줄 수 있다.” 이는 예술 전반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15년째 영화제에서 일해온 조지훈 프로그래머는 영화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겉보기와 달리 녹록하지 않은 일이지만 영화의 힘을 믿는 사람들을 그는 응원한다.

영화제 관련 이미지

한 해 동안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가 100여 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21회를 맞이하므로 대한민국에 영화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생겨난 지도 20년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1996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생겼고, 그 후로 2년이 지난 1999년에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탄생했고, 2000년에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에는 수없이 많은 국제영화제와 다양한 콘셉트의 국내 영화제가 연달아 생겨났다. 이후 몇몇 영화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또 몇몇 영화제는 새롭게 시작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연간 100여 개의 크고 작은영화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영화제에는 영화제 전체의 행정과 회계, 운영을 책임지는 사무국장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직책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프로그래머다. 부산, 부천, 전주, 여성을 중심으로 국내에 국제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도 적었다. 그렇다 보니 영화제 프로그램 팀원을 모집하면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지원서를 넣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곤 했다. 프로그래머를 부를 때 김프로, 정프로, 이렇게 줄여 부르곤 하는데, 초기에는 사람들이 이런 호칭을 듣고는 프로그래머를 프로 골프 선수나 프로 바둑 기사로 착각하는 일도 있었다.
영화의 감독과 프로듀서가 영화 한 편을 몇 년간 어렵게 완성해 관객과 소통하는 일을 한다면,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영화 중에서 영화제의 목표와 방향에 맞는 영화를 고르고 분류해 의미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과 각 프로그램 속의 영화들이 관객과 만나고 소통하도록 하는 일을 한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반짝반짝 빛나는 수많은 영화로 가득한 거대한 우주에서 의미 있는 영화를 하나씩 모아 작은 소우주를 만드는 일을 하는 셈이다. 물론 이 소우주를 만들 때는 그저 프로그래머가 좋아하는 영화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의 성격, 프로그램의 정체성, 섹션별 특징, 영화별 타깃 관객, 동시대의 사회 분위기, 영화의 내적 의미와 외적 의미, 영화의 완성도, 국가별 배분, 해당 영화가 상영될 공간 등등 밖에서 보는 것보다 많은 요소가 고려되고, 조정된다.

관계;대명사 멤버 (왼쪽부터) 한누리, 손민지, 서유진, 문해주 작가.제1회 무주산골영화제의 야외 상영 모습.

채우기 어렵고 깨지기 쉬운 영화제 사람들의 밥그릇

이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영화를 공부하거나 영화로 먹고살 생각이 있는 젊은 청년들에겐 그럴듯해 보인다. 영화도 많이 보고, 국내외 영화제에 출장을 다니고, 글을 쓰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래 ‘직업’이라는 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직업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한민국의 몇몇 국제영화제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들을 제외하면 안정적인 고용 조건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는 별로 없다. 물론 이는 비단 프로그래머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제에서 열심히 일하는 많은 스태프의 문제이기도 하다. 2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영화제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이 고용 문제는 과거와 현재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조직은 작고, 한정된 예산으로 품을 수 있는 계약직 상근 직원은 제한적이고, 실제 대부분은 일은 단기 스태프가 맡는다. 그리고 업무의 강도는 상상하는것 이상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서 경험이 풍부하고 일 잘하는 많은 중견 스태프는 이미 영화제를 떠났고, 그 자리를 젊은 친구들이 채우고 있지만 그들 역시 이 상태라면 오랫동안 영화제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지 않은 영화학도가 선망하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프로그래머의 밥그릇은 채우기도 어렵고 깨지기도 쉽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프로그래머의 밥그릇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연말에 심심치 않게 들려온 대기업 구조조정의 칼바람, 정규직의 수를 줄이고 비정규직의 수는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려는 노동법의 개악,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 실업과 빈부 격차의 문제. 금수저와 은수저와 흙수저로 분류되는 우리의 삶,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과연 이 대한민국에서 깨지기 쉽지 않고 쉽게 채워지는 밥그릇이란 게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함께 꿈꾸고 싶은 이들에게

스페인 영화 중에 <노벰버>(2003)라는 작품이 있다. 정치와 자본에 맞서 예술로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독립극단 ‘노벰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예술은 미래를 장전한 무기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예술이 혹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바뀔 세상이었다면 진즉에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단순한 오락거리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삶을 뒤돌아보게 할 수도 있으며, 미래를 꿈꾸게 할 수도 있다. 세상은 몰라도 한사람의 마음은 움직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예술의 힘이고, 영화가 갖는 중요한 어떤 힘이다.
영화제는 이런 영화의 존재와 힘을 믿는 공간이자 축제다. 많은 관객은 이런 영화들을 보기 위해 영화제를 찾는다. 영화제는 이런 관객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것이고, 어려운 물리적 조건 속에서 영화의 힘을 믿으며 꿈을 꾸는 영화제 스태프에 의해 유지될 것이다. 15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나도 영화제의 일원으로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이 어려운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잘 왔다며 박수 치며 환영하지는 못하겠지만, 기꺼이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어깨 토닥이며, 같은 꿈을 꾸며 함께 걸어갈 순 있을 것이다.
2016년이다. 올해는 모두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꿈꾸는 일조차 할 수 없다면 이 지랄 맞은 세상을 사는 일이 너무 막막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예년처럼 올해도 영화로, 영화제로 꿈을 꾸어보려고 한다. 나와 당신의 꿈에 건투를 빈다. 문화+서울

글 조지훈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팀원, 팀장,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2013년부터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인천다큐멘터리포트 프로듀서, 바르샤바영화제 시니어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제공 무주산골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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