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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생환(生還)하다
어두컴컴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몽은 누구에게나 꿈자리에서 겪는 일상적인 경험이자, 연극에서 많이 사용하는 극적 장치다. 그것은 관객에게는 아득한 무의식의 심연(深淵)에 깃들어 있던, 오래도록 잊고 있던 옛 꿈을 되살려주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바로 이 점에서 교집합을 지닌다.

1, 2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시간차를 두고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세 사건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다룬다.1, 2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시간차를 두고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세 사건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다룬다.

비좁은 호텔 공간, 그리고 빨간 풍선 <카포네 트릴로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7. 14~9. 29

공간 자체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암흑 세계 한복판에 갇힌 악몽 같다. 소극장 문 안쪽은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의 렉싱턴 호텔 로비다. 661호란 문패가 붙은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착 가라앉은 조명 속 침대와 창문, 화장대가 있는 객실 내부 양편에 객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관객은 그 좁은 호텔방 안에 숨어들어온 것처럼 몸을 움츠리고 숨죽이며 배우 세 명이 50cm 앞에서 펼치는 연극을 지켜봐야 한다. 연기 공간은 7평(약 23m2)이 채 되지 않는다.
이 3부작 연극을 모두 보려면 시간표를 확인한 뒤 표를 세 번 사서 들어가야 하지만, 연극 <카포네트릴로지>(제이미 윌크스 작, 김태형 연출)의 세 에피소드 ‘로키’ ‘루시퍼’ ‘빈디치’를 챙겨 보는 것은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관극(觀劇) 체험이 된다. 1923년, 1934년, 1943년의 시간차를 두고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세 가지 사건이다. ‘로키’가 코미디 뮤지컬에 가깝다면 ‘루시퍼’는 서스펜스 드라마, ‘빈디치’는 하드보일드 심리극이다. ‘영맨’ ‘올드맨’ ‘레이디’를 맡은 세 명의 배우는 에피소드마다 다른 역할을 맡는다.
결혼식을 앞둔 ‘로키’의 여주인공은 아슬아슬한 거짓말 속에서 연쇄살인과 맞닥뜨리고, ‘루시퍼’의 갱단 중간 보스가 저지른 테러는 뜻밖의 파국을 부른다. ‘빈디치’의 젊은 전직 경찰은 옛 상사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지난해 서울에서 <벙커 트릴로지>를 선보인 영국 작가 제이미 윌크스는, 이번엔 암흑가 악(惡)의 근원으로 설정된 알 카포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시공간을 설정한다. 배우의 몸짓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설 만큼 빠르고 촘촘한 전개 속, “나쁜 일은 항상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지” “이 도시에선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는 거야” 같은 대사들이 생명력을 지니고 꿈틀거린다.
세 에피소드의 등장인물은 모두 파국을 맞는 것처럼 돼 있지만, 단 한 명, ‘로키’의 여주인공만은 죽음을 가장해 끝내 그 도시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에피소드마다 모두 등장하는 빨간 풍선을 물화(物化)된 희망으로 남긴 채. 극이 끝나면 관객 역시 ‘밝은’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극장으로 들어갈 때와는 뭔가 달라져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도 좋지 않을까? 빨간 풍선을 하나 사고 싶은 충동도 들 것이다.

3 전쟁 중 무인도에 표류된 이들이 가상의 ‘여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절망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재치있게 그려낸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한 장면.전쟁 중 무인도에 표류된 이들이 가상의 ‘여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절망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재치있게 그려낸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한 장면.

행복은 남성성(性)의 반대편에 있는가 <여신님이 보고 계셔>
유니플렉스 1관, 6. 20~10. 11

전쟁의 참화(慘禍)로 뒤덮인 세상이 있고, 그 세상과 연락이 두절된 채 표류 끝에 도달한 무인도가 있다. 이 뮤지컬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과연 어느 곳이 더 나락(奈落)인가? 6·25 전쟁 중, 인민군 포로를 싣고 가던 국군 호송선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국군 2명과 인민군 4명의 ‘갑을’ 관계가 뒤바뀐다. 여기서 배가 고장 나는 뜻밖의 사고가 발생해 이들은 모두 무인도에 고립된다.
창작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한정석 작, 박소영 연출)의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은 한마디로 2중의 나락이다. 이제 이 작은 섬은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투쟁이 벌어지는 전란의 축소판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반전(反轉)이 일어난다. 여섯 명 중에서 유일하게 배를 고칠 수 있는 인물은 인민군 순 호인데, 그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다. 국군 영범이 묘안을 짜낸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이 섬에 가상의 ‘여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줘 무사히 섬을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그것은 절망의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희망의 주문’으로 자리 잡고, 최악의 상황에 빠진 군인들은 그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옷차림을 깔끔하게 가다듬고 들꽃까지 꺾어 장식하더니, 서로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게 된다. 그리고 각자 속 깊은 곳에 묻어뒀던 자기만의 ‘여신’을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꺼낸다. ‘여신’은 소박맞고 친정으로 쫓겨온 동네 누나가 되는가 하면, 권번으로 들어간 여동생, 고향에 남은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은은한 달빛 아래 진짜 ‘여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무대 예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추억과 희망을 노래하는 넘버는 꿈결처럼 객석으로 스며든다.
곰곰이 극을 지켜보면, ‘여신’이라는 상징은 이 거친 군인들이 지닌 남성성(男性性)을 퇴화시켜 중성화(中性化)하는 기제와도 같아 보인다. 피아(彼我)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전투 의지는 무력화되며, 전쟁 자체가 부질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희망, 평화, 행복 같은 가치는 모두 ‘여신’의 여성성으로부터 나오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탈이념적인 뮤지컬은 대단히 농도 짙은 반전극(反戰劇)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듯 모두가 같은 목표를 지니며 살던 무인도라는 유토피아보다 훨씬 냉혹한 것이 극장 밖 현실 세계인 것을. 문화+서울

글 유석재
2003년부터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주로 학술과 출판을 담당했다. 2000년대 중반에 AV칼럼니스트로 암약했고, 1991년부터 초야의 공연 마니아로 있다가 2014년 1월 조선일보 공연 담당 기자로 활동 중이다.
사진 제공 아이엠컬처=storyP, 연우무대, is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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