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의 마을
내가 정릉으로 이사를 온 것은 2008년 여름이었다. 그전에는 일산 신도시에서 10여 년을 살았는데 직장이 생겨 근처로 집을 옮기게 된 것이었다. 생활의 편리에 따른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었지만, 내가 굳이 ‘정릉’을 택한 것은 이곳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동경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유서 깊은 동네’라는 순전히 주관적인 이미지, 또 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라는 것, 그리고 북한산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 등등.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둘째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북한산 입구 주변을 과거엔 ‘청수동’(淸水洞)이라 했는데, 정릉천의 물이 맑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청수장’(淸水莊)이라는 일본인 별장이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엔 요정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사라진 상태이며 그 자리에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가 들어서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문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북한산과 청수계곡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수계곡은 조선시대부터 서울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여름에 더위를 피해 찾아왔다 쉬어가는 곳이었다. 소설가 오정희 선생의 <새벽별>이란 소설에도 청수계곡이 나오거니와, 나 역시 이곳을 배경으로 몇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현재 정릉에는 시인 신경림, 조용미, 허은실, 소설가 김채원, 이경자,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 등이 살고 있다. 또 근처에 시인 김기택, 이진명 부부가 이웃해 살고 있기도 하다.
과거의 시간을 끌어안은 곳
10년 전에 이사를 와서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릉 재래시장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다닌 추억이 있는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디를 가든 재래시장부터 찾는 습관이 있다. 정릉시장은 과연 1970~80년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한옥촌 주변으로 오래된 떡집과 방앗간, 철물점, 육간, 지물포, 과일가게, 어물전 등이 시간의 흐름을 방기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 해묵은 풍경 속에서 장을 보고 국수를 한 그릇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먼 데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나간 삶의 향수에 젖곤 했다. 그것은 시간의 흔적이 송두리째 지워진 신도시에서는 미처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말마다 북한산을 등반하고 청수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나는 ‘박경리 선생 가옥’ 앞을 자주 기웃거린다. 그분이 살아계실 때 원주에서 가까이 뵈었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고, 더불어 글쓰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박경리 선생은 1965년부터 이곳 ‘정릉골’에 은거하면서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시작했고, 사위이자 시인인 김지하 선생의 옥바라지를 위해 1980년에 원주로 이주했다.
‘정릉골’ 역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허름한 집들 사이에 난 가파른 시멘트 계단들, 큰 나무들, 연탄재가 쌓여 있는 구멍가게, 그 앞에서 낮술을 마시고 있는 노인들…. 밤이면 불빛만 고즈넉이 빛나는 산동네는 마치 목판화를 보듯 투박한 삶의 질감이 느껴진다. 지금은 재개발 소문이 떠돌고 있어 위태로운 분위기에 감싸여 있기도 하다.
이렇듯 정릉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상태에서 과거의 시간을 끌어안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에 수유리와 성북동이 위치하고 주말이면 여전히 등산객들로 붐비는 이곳은 서울의 외곽(城北: 도성의 북쪽)임이 분명하지만, 나로서는 서울로 처음 이사를 와서 이때껏 살아온 곳이니만큼 그만 정이 들 대로 들어버렸다.
정릉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운동화를 신고 집에서 나오면 북한산 어디라도 가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정릉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사람 사는 냄새가 아직도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다. 그래서일까. 정릉은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힘든 곳이라는 말들을 한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정릉의 풍경도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릉시장과 한옥촌과 박경리 선생 가옥과 경국사와 정릉천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그만 가게들과 지금 여기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싶다. 이런 바람을 비밀처럼 가슴에 품고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 글 윤대녕_ 소설가
- 그림 김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