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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절두산 성당 슬픈 역사의 기억
서울 합정동의 한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성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는 절두산 성당으로, 천주교인들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성당의 둥근 지붕이 가파른 바위절벽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지만, 그 이면에는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 배어 있다.

벌써 20년 전이다. 일상에 지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은 순간에 절두산 성당을 만났다. 건축을 통해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 몰랐다. 감동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속 아련함이 먼저 다가왔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절두산 성당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을 때면 찾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도 한강변을 따라가다 가파른 바위절벽 위로 솟아오른 둥근 지붕을 바라보면 잠시 머물다 가고 싶다. 절두산 성당은 시간을 잊게 만드는 공간이다.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깃든 공간

성당이 자리한 절두산은 강변북로와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교차하는 마포구 합정동 강변 부근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였다. 양화나루에는 지형이 누에를 닮은 봉우리라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고 이름 지어진 높이 20m의 언덕이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박해로 1866년 병인양요 때 이곳에서 수개월간 8,0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고, 그 이후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머리가 잘려진 장소라는 뜻에서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로 인해 절두산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가 되었다. 1966년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순례기념관과 순례성당을 위한 현상 설계를 공모했다. 설계안의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산의 모양을 변형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제출된 안 중 최종적으로 이희태 건축가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1960년대 설계할 당시 대지는 지금의 상황과 많이 달랐다. 현재와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 제방도 없었고, 주위에 몇몇 농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건물도 없었다. 성당 정면과 후면을 가로지르는 강변도로도, 연기를 내뿜는 당인리 발전소도, 합정동의 밀집한 주택가도, 지하철 2호선 교량도 없었다. 논밭을 배경으로 바위산만 우뚝 솟아오른 모습이었다. 처음 성당이 세워질 때는 지금처럼 성당 앞에 펼쳐진 정원도 없었다. 이는 한강 매립공사가 끝난 후에 조성되었다.
절벽 끝에 위치한 순례성당은 사다리꼴 평면에 원형의 지붕을 얹은 100여 석 규모의 아담한 건물이다. 이희태 건축가는 순례성당의 원형 지붕은 ‘갓’을, 높이 솟은 종탑은 참수에 쓰인 ‘칼’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순례성당 우측으로 길게 놓인 부분은 순례기념관이다. 순례 기념관의 넓은 지붕은 초가지붕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를 떠받치는 쌍주양식의 기둥들은 발코니에 열을 지어 있어 리듬감과 형태미가 뛰어나다. 절두산 성당은 이희태 건축가의 대표작으로, 한국적인 요소가 콘크리트를 통해 현대적으로 구현되어 높은 건축적 가치를 자랑한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 한강변에서 올려다본 절두산 성당. 바위절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2 쌍주양식의 기둥들이 리듬감과 형태미를 자아낸다.
3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외부 공간과 순례성당 전면에 위치한 2개의 기둥을 만난다.

절두산 성당으로 향하는 길

절두산 성당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순례기념관 우측면을 따라가며 직선으로 놓인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돌아서 램프로 접근하는 길이다. 램프는 이곳을 잘 아는 신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접근로로 계단과는 달리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발견하기에는 어려운 길이다. 계단의 아랫부분에서 성당을 향해 서서히 올라가다 보면 성당 전면에 위치한 2개의 기둥이 보인다. 계단을 모두 올라가면 하나의 커다란 외부 공간을 만나고, 사람들의 시선은 순교기념관의 열주들의 원근법적인 현상과 함께 곧바로 성당의 전면을 향하게 된다.
순례기념관과 순례성당의 서로 다른 형태의 건물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종탑이다. 두 건물의 각 층 사이를 연결하는 연속된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종탑 부분에 있는 계단으로만 수직 동선이 연결되어있다. 순례성당의 평면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입구 쪽에서 제대를 향해 좁아진다. 이런 변화는 대지의 특성과 내부 공간을 형태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제대부분 위쪽으로는 둥근 지붕을 올렸다. 사실 원형의 지붕처럼 보이지만, 약간 길쭉한 타원형이다. 그 위에 다시 작은 둥근 매스를 올려 천창을 구성하여 조형성을 강조하였다.
절두산 성당은 언덕 아래 한강변에서 올려다보는 모습과 가파른 바위절벽이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그러나 절두산이라는 이름처럼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순교가 서려 있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지금도 아려온다.

글·사진 이훈길_ 천산건축 대표. 건축사이자 도시공학박사이다. 건축뿐만 아니라 건축 사진, 일러스트, 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를 걷다_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시건축, 소통과 행복을 꿈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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