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ASSOCIATED

12월호

전시 <말과 글-풍경 속에 풍경>과 <Intersections> 그림과 사진, 평면의 한계를 뛰어넘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림으로 옮겨 더 ‘확장’하려는, 그래서 시각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화가들의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한국 수묵의 전통에 진경산수화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진행된 두 작가의 전시도 2차원 작품(회화, 사진 등)을 실제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표현해 눈길을 끈다.

1 유선태 <말과 글-그림 속에 그림>(2015). 2 유선태 <말과 글-나의 정원>(2015).1 유선태 <말과 글-그림 속에 그림>(2015).
2 유선태 <말과 글-나의 정원>(2015).

액자 안 풍경 속으로 빨려드는, 21세기 진경산수화
유선태 개인전 <말과 글-풍경 속에 풍경>, 10. 30~11. 29, 가나아트센터

조선시대의 산수화는 겸재 정선에 의해 일대 전기가 마련된다. 정선 이전만 해도 그림을 그리는 화공들은 당대의 모습을 기록에 남기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그러나 조선조 후기들어 특히 겸재의 그림을 기점으로 ‘기록’이 아닌 ‘감상’을 위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일명 진경산수화다. 실경산수화가 실제 보이는 것을 그린 그림이라면, 진경산수화는 풍경 속에 마치 들어가 있는듯한 느낌을 받도록 그린 그림이다. 진경산수화의 진경에는 실경이 표현할 수 없는 미적 감동이 담겨있다. 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겸재의 ‘인왕제색도’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겸재는 풍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산수화를 통해 제시했고, 그의 그림을 감상하며 사람들은 ‘눈’이 포착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숨겨진 미적 가치를 발견했다.
이 같은 노력은 현대에 들어와서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사실 재현에 충실한 사진을 사람들이 쉽게 접하며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풍경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선태의 개인전 <말과 글-풍경 속에 풍경>전에서는 풍경의 확장과 순환을 개념으로 한 작품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액자 틀 속의 풍경, 실내 공간 너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등이 모두 하나의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마치 소인국 주민처럼 작은 사람이 자전거를 탄 채 모든 그림 속에서 또 풍경을 응시하고 있다. 작가는 그림 속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고 했다. 미술사학자 이주은은 “서양 회화에서 500년 이상이나 세상을 보는 정석으로 이해해온 선형 원근법을 통한 투시 방식과 달리 유선태 작가의 그림 속에서는 시선의 꼭짓점이 분산돼 있다”며 “하나의 소실점을 상정해두는 대신 곳곳에 문과 천장이 뚫려 있고, 그 뚫린 문으로 다른 공간의 질서를 개입시켜 ‘눈으로 본 것이 현실인가?’ ‘시각이라는 감각은 과연 철석같이 믿을 만한가?’라고 묻는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작가와 한 몸이 되어 풍경을 응시하고, 아예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1972년 홍대 미대 졸업 후 프랑스 파리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한 작가는 “우리가 이 시간을 보내는 순간도 삶의 하나의 풍경”이라며 자신이 그린 것은 “깊게 들여다보면 마음의 풍경이자 삶의 풍경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대형 책 설치물에 그려진 그림, 오래된 타이프라이터 위의 작은 인간군상 등 ‘회화 속 오브제, 오브제 속의 회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 20여 점도 함께 선보인다.

3 베른트 할프헤르 <트랜스포머>(2015). 4 베른트 할프헤르 <남대문>(2015).3 베른트 할프헤르 <트랜스포머>(2015).
4 베른트 할프헤르 <남대문>(2015).

2차원 평면을 입은 3차원 ‘트랜스포머’
베른트 할프헤르 전시 , 11. 11~12. 11, 사비나미술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12월 11일까지 열리는 독일 작가 베른트 할프헤르(Bernd Halbherr)의 개인전 <Intersections>(인터섹션)에서는 우리가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풍경의 한계가 또 다른 양상으로 극복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구(球)에 사진 이미지를 입힌 ‘사진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는 구 위에 360도로 촬영된 파노라마 사진 이미지를 입혀 2차원의 평면을 3차원의 조각과 결합시킨다. 누락되는 부분 없이 전체를 볼 수 있는 이미지, 어떤 각도에서도 볼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시도다.
이 구 안에 담긴 장소는 작가가 경험한 장소이자 기억의 장소로 기록되고 저장된 곳들이다. 여기서 남대문은 불타버리기 전의 시간 안에 있다. 빨간 눈금(시간의 눈금)이 표시된 막대기에 설치된 그물망, 그 안에 던져진 둥근 공은 작가가 재직하는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풍경을 반영한다. 작가는 이처럼 자신이 경험한 공간에 대한 인상, 시간과 기억의 파편을 평면의 사진을 넘어 3차원의 공간으로 담아낸다.
2차원의 평면을 벗어나려는 작가의 노력은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움직이는 조각’을 의미하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 류의 작품도 그런 것들이다. 작품 ‘여름이야기’는 철 프레임이 위아래로 맞물려 있어 관객이 열어야 그 안에 담긴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창문을 열듯 손잡이를 당기면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하늘과 땅이 모습을 드러낸다. 열린 문은 이내 천천히 닫히기 시작하며 결국은 하늘과 땅은 소리 없이 다시 하나가 된다.
‘트랜스포머’ 역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트랜스포머는 한국의 전통 가옥과 아파트 단지를 사진에 담아 구가 아닌 육면체에 입혀놓았다. 한국의 과거와 현대라는 서로 다른 두 풍경이 이어진 작업으로 한옥과 아파트 사이의 시대적, 문화적 차이를 경계인의 시각에서 보여준 작품이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지 10년이 된 작가는 “관객의 개인적 체험이 중요한 것”이라며 “구를 통해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 즉 관객을 중심으로 도심과 숲과 야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도록 해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상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양의 풍경화가 시각적인 만족에 그치는 것이라면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풍경 속에 들어가 즐기는 와유(臥遊)를 위한 그림이었다. 베른트 할프헤르의 주장이 진경산수화의 그 같은 미적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재미있다.문화+서울

글 이경택
문화일보 문화부장
사진 제공 가나아트센터, 사비나미술관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