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비유>(http://view.sfac.or.kr)는 스마트폰의 작은 창에 최적화해 꾸몄지만, 다루는 문학의 영역만큼은 주머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넓다. <비유>는 무엇보다 ‘전문작가가 쓰는 시와 소설’이라는 전통적인 문학의 개념에 도전한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쓴 폭넓은 글을 문학의 틀에 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문학의 개념마저 확장해나간다.
웹진의 전체 구성을 ‘!(하다)’, ‘…(쓰다)’, ‘?(묻다)’라는 3개의 메뉴로 나눈 것도 이런 ‘도전과 확장’의 결과다. ‘!(하다)’는 여러 문학적 실험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학이란 완성된 작품의 형태만이 아니라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의 과정 속에도 있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출발한다. 창간호부터 연재된 ‘월 10만 원으로 작업공간 구하기’ 프로젝트를 비롯해 현재 꼬멍팀의 ‘쓰레받기’, 낭독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즙즙팀의 ‘씁즙즙쯥’ 등 6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고 편집장은 “곧 10개의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돼 한 달에 2~3건씩 업로드될 예정”이라고 말한다.
‘…(쓰다)’는 2017년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인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청년작가 100명의 작품과 기성작가의 신작을 구분 없이 함께 공개한다. 이에 따라 작가 소개란에 ‘어떤 신춘문예에 등단한 누구’라는 식의 내용은 없다. 다만 기성·청년작가 구분 없이 ‘글쓴이가 글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묻다)’는 특정 낱말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엮어가는 메뉴다. 현재 ‘캡처’와 ‘목격자’, 그리고 ‘잡지’라는 세 낱말이 올라와 있다. 이 가운데 ‘목격자’는 2017년을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의 한가운데에 섰던 이들이 그 현장을 전하는 코너다. 지난해 7월 강서구에서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을 꿇었던 어머니 중 한 명인 이은자 씨가 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의 날’ 등의 글이 실려 있다.
‘!(하다)’, ‘…(쓰다)’, ‘?(묻다)’ 등 3개의 메뉴로 구성된 웹진 <비유>.
언제부터 <비유>를 구상했나요?
2016년 11월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매체 창간 제안을 받았습니다.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고, 20~30대 청년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발표 공간 등을 포함하는 새 매체를 창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서, 현재와 같은 ‘웹진 형식을 통한 문학의 확장’은 어떻게 구체화됐나요?
새 형식은 지난해 2월쯤 편집진이 구성되면서 본격 논의됐습니다. 저를 포함해 김지은(아동문학평론), 김중일(시인), 황현진(소설가), 김나영(문학평론), 장은정(문학평론) 작가가 편집진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연희문학창작촌의 한혜인 총괄매니저와 오영호 대리도 함께 머리를 맞댔습니다. <비유>의 아이디어는 젊은 편집진이 많이 냈는데, 최종적인 틀은 지난해 9~10월께 나왔습니다. 지금도 편집진이 2주일에 한 번씩 모여 편집회의를 하면서 잡지의 방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다)’, ‘…(쓰다)’, ‘?(묻다)’라는 구성은 굉장히 도전적으로 느껴집니다.
앞으로는 우리의 문학 생태계가 ‘독자들을 포함하는 문학 생태계’ 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담았습니다. <비유> 편집진은 한국 문학계에서 독자들은 소외돼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청년문학인을 지원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사업과도 맞물려서 생산자 중시가 아니라 수용자 중시로 전환하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예로 ‘…(쓰다)’ 같은 경우, 기성작가와 청년작가의 작품을 구분 없이 소개함으로써 작가 등단제도의 완화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비유>가 워낙 새로운 형식인데, 이에 대한 문학계 전반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반응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웹진에 익숙한 젊은 작가들은 ‘…(쓰다)’ 코너의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높습니다. 미래의 ‘적들’에 대한 동향 파악일까요?(웃음) 이 코너에서는 기성작가와 청년작가의 작품을 적절히 배합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기성작가들은 ‘!(하다)’와 ‘?(묻다)’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높습니다. 신생 매체라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서울문화재단 같은 공공기관에서 문학 웹진을 발행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1, 2 여러 문학적 실험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하다)’에서
진행 중인 꼬멍팀의 ‘쓰레받기’와 즙즙팀의 ‘씁즙즙 :
낭독의 즐거움’ 포스터.
3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 최초의 문학인 전용 집필실이다.
각 집필실은 국내 작가의 순수문학 창작을 위해 제공될
뿐만 아니라 해외 문학 교류를 위한 국제 레지던시로도
활용되고 있다
반응이 좋다고 말씀하시니 <비유>의 독자로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반응은 한국문학이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과도 연관돼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한국문학의 큰 전환기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전통적 문예지가 폐간되었고, 문학잡지로서의 기능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와 함께 일반 독자들이 작가가 돼 출간한 독립잡지들은 많이 늘었습니다. 젊은 독자 중에는 세계문학 등이 자신의 생활과 동떨어진 얘기를 담은 탓에 와 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지금 이 시대, 이곳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런 현상은 글쓰는 일이 등단작가들의 전유물이던 시기가 확실히 지났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비유>가 한국의 문학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 창간호부터 연재된 월 10만 원으로 작업공간 구하기
프로젝트, ‘자기만의 방’.
5 ‘…(쓰다)’ 1호 포스터.
고 편집장님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편집장이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도 <비유>라는 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문학계에 계셨는데, 처음 활동할 때와 현재를 비교할 때 문학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으신가요?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역할은 ‘정신의 운동장’을 넓히는 것이라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문학 활동을 할 때는 문학이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학의 역할은 그런 거룩하고 거창한 일보다 내 안의, 우리 안의 작고 사소한 것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작가가 “문학을 신뢰할 수 없으면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한 말도 그런 뜻이겠지요. 이젠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보다 작고 시시하고 사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신뢰합니다. ‘작고 시시하고 사소하다’고 하는 그런 행위들 속에 사실은 ‘작고 사소하고 시시하지 않음’이 있어서입니다.
편집장님의 그동안의 평론 활동도 모두 정신의 운동장을 넓히는 것이었을 텐데요.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평론은 무엇인가요?
<한국문학과 베트남전쟁>이 기억에 남습니다. 베트남이라는 타자를 통해 문학을 하는 내 모습과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얼굴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선·후배와 함께 모임을 만들고, 베트남 곳곳을 여행하며 베트남 땅 곳곳에 스민 한국군의 피와 야만을 동시에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인문학>이라는 글도 기억납니다. 노숙인 쉼터에서,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이 시를 읽고 쓰면서 자신을 바꾸는 현장에 관한 글입니다. 어쩌면 시와 문학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그런 곳에 있는 이들이 아닐까 합니다.
기원전 2000년께 점토판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 이후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은 끊임없이 문학이란 무엇인지를 자문해왔다. 정답은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답도 달라졌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은 계간지 <문학과 사회>는 1988년 창간호에 “체제 유지 적 논리의 허구성을 직시하고 변혁에의 다양한 열망을 보다 이성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문화의 소임이라 답한 반면, 2017년 창간한 <젤리와 만년필>은 도시문제를 고양이를 통해 전하는 ‘가벼움’을 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학이 끊임없이 정신의 운동장을 넓혀올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 기초하여 문학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 물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형식의 잡지 <비유>가 새롭게 던지는 ‘우리 시대 문학’에 대한 질문이 소중한 이유다. 주머니 속에 있지만 그 출중함 때문에 다른 이들이 그 존재를 알아보는것을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 한다. <비유> 또한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서 출발해 기성문학의 낡은 관습을 꿰뚫는 ‘문학적 송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 김보근 한겨레 선임기자
- 사진 최성열·
-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