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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책 <마음을 건다>와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이 시대의 ‘진정성’에 대한 두 질문
진정성의 눈으로 찾아내고 진정성의 손으로 켜를 쌓아올린, 삶과 문학에 대한 한 중견 문학평론가의 소박한 기록(<마음을 건다>)과, 이 시대가 추구하는 진정성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진정성만 있으면 이 시대는 모두가 행복해질 것인지를 묻는 캐나다 철학박사의 발칙하고 도전적인 저작(<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은 애초에 같은 평면 위에 놓일 책들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두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이쪽저쪽에서 오랫동안 시달린 끝에 제 빛을 잃은 ‘진정성’에 대해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낮에는 햇살이 아직 제법 따갑긴 하지만, 하늘은 저 멀리 높아졌고 바람엔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참 오랜만이다. 높은 하늘과 서늘한 바람을 느끼는 일에 정치와 같은 원치 않은 잡념이 끼어들지 않은 것도. 겉과 속이 겉돌고, 말과 행동이 다르면서도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던”(김민기의 노래 <친구>) 시대가 저물고 나니, 비로소 낮은 목소리도 귀에 들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해 그림자에도 눈길이 간다.
가을 초입에 갓 나온 정홍수 산문집 <마음을 건다>를 읽었다. “이패가 단풍이 아니라는 것에 내 돈 모두하고 내 손모가지를”(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 거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건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 문득 ‘진정성’을 떠올린다. 세상을 살아가고 버텨내는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에 얽힌 문학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그이는 ‘진정성’이란 말을 한 번도 꺼내지 않으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낮고 소박하지만 때로 결연한 어조로 조근조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삶의 양상, 주로 그늘에 가까운 삽화들을 공감으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독해하며 기록한 그의 산문을 읽다가 가슴 한쪽에 습기가 맺힐 무렵, 문득 지난해에 읽다 만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은이 앤드류 포터는 “진정성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지만 진정성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며, 진정성이 뭐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근대에 들어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성의 실체를 폭로한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진정성의 눈으로 건져 올린 우리의 삶과 문학 이야기

<마음을 건다> 정홍수 지음, 창비

정홍수의 책 장 제목을 순서를 바꿔 이으면 “세상의 시간, 세상의 풍경 /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시절에 / 사람들은 살아가고 버텨낸다”라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정홍수는 몸이 약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린 시절 통학길에 있는 장의사 쪽으로 눈길이 가는 걸 의식적으로 피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장면을 ‘마음을 걸었던’ 장면으로 기억했다. “자신의 마음을 어딘가에 거는 것은” 그이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간곡하게’ 바라보고, ‘간곡하게’ 생각하고, ‘간곡하게’ 기원하는 것을 뜻했다. 이 ‘간곡함’으로 삶과 문학과 자신의 이야기를 경계 없이 넘나들면서 반추하고 기록한다.
그는 어느 작가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당숙할머니가 새벽 울타리에 올라앉은 산갈치를 절구로 쳐서 잡아, 애호박 5통을 넣고 끓여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선친에게서 들었던 산갈치 얘기와 애호박을 넣고 바글바글 끓인 갈치조림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꺼낸다. 그는 이런 공감으로 문학 속의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회의 그늘을 떠올리며,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소소한 기쁨들을 나눈다. 그 모두가 그에게는 문학이며 이야기이다.
“얘기를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라는 작품 속 대사를 인용하면서 그는 묻는다. “우리는 그 ‘가난’을 잊은 대신 무엇을 얻은 것일까.”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시절을 안타까워하면서 그가 남기는 말은 “가난을 예찬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오늘만은 그때가 그립다”이다. 그에게 문학은 “덩어리지고 혼재된 시간의 안쪽으 로 들어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있으려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앤드류 포터 지음, 노시내 옮김, 마티

앤드류 포터가 말하는 ‘진정성’은 단순하지 않다. 그는 진품성이나 정통성, 고유성과 같은 개념들도 진정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성은 대체로 근대 이전의 사회에는 존재했으나 근대 문명과 도시화, 산업화 시대를 맞아 소멸되어가는 순수성, 일체감, 조화로우며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 공동체 의식과 공감의 형성 등이며, 이는 정홍수의 미학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진정성의 내면이 근대 도시 문명과 산업화 과정에서 휘발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인간의 행복이 감소했다는 주장에 회의한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늘렸고, 근대사회가 낳은 제도와 인권의 발달은 개인의 자유를 확보해주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이 ‘진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전근대로 회귀하려는 것은 자가당착이거나 진정한 ‘진정성’에 대한 탐구의 부족이라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여전히 내가 감동하는 무엇인가에 ‘마음을 걸고’ 싶은 나는, 지극히 합리적이며 체계적이고 실용적이어서 반론의 여지를 세우기가 어려운 앤드류 포터보다, 내가 살아온 시대의 궁핍과 결여를 공유하고 평론으로도 눈가를 시큰거리게 하는 정홍수의 소박한 진정성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글 장경식_ 백과사전 편집자. 한국백과사전연구소 대표
사진 제공 창비,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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