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양 정장의 품과 태를 살린 한복 디자인.
2, 3 졸업 작품으로 만든 ‘레트로 앤 신드롬’이라는 테마의 모던 한복.
4 청지에 물나염 처리한 청두루마기.

여자들도 탐내는 남성 한복

나는 2008년 하고픈 패션 디자인을 위해 서울모드패션직업전문학교(이하 서울모드)에 입학, 2014년 하반기에 졸업을 했다. 졸업과 동시에 ‘여인네가 탐내는 남정네 한복을 짓자’를 모토로 남성 한복 브랜드 ‘희노애락’을 시작했고, 현재 남정네 한복쟁이로 살고 있다. 그리고 프리랜스 스타일리스트, 고등학생들을 위한 멘토링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원래는 클래식, 모던, 빈티지를 모티프로 하는 서양옷 기성복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었지만, 우연히 시청하게 된 한복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선과 태가 모두 한복에 있다는 깨달음으로 충격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 옷 한복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때 서울모드 1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1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냈다. 사회생활 2년과 군 복무 2년을 거쳐 복학을 하니 이전에 없었던 한복의상실습 강의가 개설되어 있었다. 교수님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한복 관련 책을 추천받기도 하며 한복에 대해 알아갔다. 직접 한복을 지어보며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선과 태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한복쟁이가 될 거야”라며 큰소리도 치고 다녔다. 그리고 2014년, 남정네 한복을 전문으로 하는 한복쟁이가 되었다.
사실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 TV에서 우리나라의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 ‘솔리드옴므’의 우영미 대표가 지은 남성 정장 한 벌에 매료되었다. 남정네 옷도 우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 TV나 인터넷, 잡지 등에서 패션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가끔 옷을 리폼하거나 장신구를 만들며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남자들을 위한 맞춤 한복을 짓자는 생각에 ‘희노애락’을 시작하게 됐다. 우리 옛것의 태를 중심으로 하여 서양의 클래식, 모던, 빈티지를 더했다. 거칠고 투박한 남정네의 바느질이 돋보이는 ‘희노애락’의 한복은 오로지 맞춤으로만 제작되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태를 창조한다.

5 무대의상으로 만든 한복을 입고 있는 가수 아이언과 양동근.
6 프랑스 원단의 레드 타탄체크로 처음 제작한 생활한복.

한복이 일상복이 되는 그날까지

한복을 짓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공정을 혼자 소화하고 있는데, 그 과정은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작업할 때마다 깃의 뻣뻣함과 매끈함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직도 부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섶폭에 따른 여밈의 연출 방법이 무궁무진하여 어떻게 연출할지를 늘 고민하고 있다. 원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데다 호기심도 남달라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다. 머릿속에 그려진 것들을 종이에 기록하고, 실물로 재현하기도 한다.
패셔너블한 한복을 만드는 데 있어 원단이나 색상에 제약은 없다. 고객의 취향과 직업, 용도 등에 맞춰 디자인을 제안한다. 군용 원단으로 지은 두루마기, 청지에 물나염 처리한 청두루마기, 아웃도어 패브릭을 활용한 바람막이 저고리 등을 제작해왔다. 늘 새로운 디자인과 새로운 원단을 고민하고 실험하는 편이다. 요즘은 서양 정장의 품과 태를 살린 한복을 연구 중이다.
앞으로는 생애주기 의례한복을 동기화하여 서양복과 섞어 착용하여도 무방한 선과 태를 연출하고 싶다. 또한 기존의 구성과 구조를 유지하되 품의 길이를 달리하고, 일부분을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연출하여 일상복 마냥 맵시 있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옷을 지을 계획이다.
현재 개인전을 위한 모델을 섭외하고 있다. 35명을 섭외할 예정인데, 섭외 기준은 초면이든 구면이든 상관없이 내가 한복을 지어 입히고 싶은 사람,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여 내 나이 서른을 기점으로 어느 봄날 ‘희노애락’을 공식적으로 론칭하고, 이후 3년간 국내의 문화 관련 축제 및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하고 싶다. 이후 3년간은 세계 4대 패션 컬렉션에 도전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을 진행해보고 싶다. 하지만 나의 진짜배기 꿈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한복을 짓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복을 한국인의 일상복으로 인식할 정도로 한복이 대중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