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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공예·미술의 갤러리×셀렉트 숍,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 예술과 일상의 만남, 작품과 대중의 순환을 위해
홍대 앞은 변화의 흐름이 매우 빠른 동네다. 미술학원과 표구사가 즐비하던 홍대 정문 근처는 몇 년 새 카페와 음식점이 많이 늘면서 드나듦이 분주한 동네로 변해왔다. 홍익대 정문에서 신촌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산울림소극장은 이런 변화 속에서도 31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1969년 창단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국내 초연한 극단 산울림의 공간은 한국 연극사에서, 또 홍대 앞의 문화지형도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산울림소극장에서 ‘복합문화공간 산울림’으로

최근 소극장이 자리한 붉은 벽돌 건물에 변화가 생겼다. 2층에 복합문화공간인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가 문을 연 것. 공예, 회화, 사진 등 미술 작품의 전시와 판매를 겸한 공간으로 공간 안쪽에는 작은 규모의 작업실도 마련돼 있다. 공간을 기획한 이는 2011년부터 산울림소극장의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임수진 대표. 임영웅 연출의 장녀인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디자인과 금속공예를 공부해 2011년 귀국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장신구 작업을 해온 작가다. 현재 산울림의 대표 프로그램이 된 ‘산울림 고전극장’과 ‘산울림 편지콘서트’를 직접 기획하기도 한 그는 극장 일이 안정되면 한동안 접어뒀던 작업도 재개하고, 일반인이 편하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고. 그러던 차에 2층에 세 들어 있던 회사가 사옥을 지어 나가면서 새 임차인을 들일까 하다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공간을 직접 열게 됐다.
“종종 지인들로부터 ‘그림을 걸고 싶은데 어디에 가서 사면 좋을지 추천해달라’고 부탁을 받아요. 그런 때 소개해줄 곳이 마땅치 않은 게, 화랑의 작품 가격은 너무 비싸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권할 수도 없는 거죠. 요즘에는 자기가 마실 커피잔 하나 정도는 특별한 것으로 구입하고 싶어 하는 이가 의외로 많아요. 그런 때 작가들의 작품을 편하게 구경하고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갤러리나 아트 숍이 아닌, 어쩌면 그 두 가지가 결합된 공간이요.”
공예, 회화,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성과 실용성을 지닌 작품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곳은 ‘아트 앤 크래프트’라는 이름을 달았는데, 산울림의 큰 틀에서 보면 극장을 기반으로 이를 확장·변주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전시와 판매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워크숍도 2층 공간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임 대표는 이 공간에 들어온 이들이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길 바라며 리모델링과 인테리어 하나하나에도 신경 썼다. 작품 전시를 위해 기존에 나있던 창을 막으면서도 공간의 제일 안쪽 창 하나는 막지 않고 남겨 바깥의 자연광이 자연스레 들어오는, 일상과 멀지 않은 느낌을 주려 했다. 공간 입구 오른편에는 화장실을 만들어 그 안에도 작품을 걸었다. “예술 작품이 일상의 어떤 공간에 두어도 좋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임 대표는 얘기한다.

‘예술이 순환한다는 것’의 의미

7월 28일에 문을 연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는 개관전으로 작가 27인의 작품을 한데 모아 소개하는 전시 <예술이 일상에 즐거움을 더하다>(7. 28~9. 11)를 마련했다. 임수진 대표가 알고 지내던 작가들과 그들로부터 소개받은 이들, 그리고 임 대표가 직접 페어나 전시를 찾아 다니며 만난 인상 깊은 작가들과 일일이 소통하며 전시를 준비했다. 사진, 회화, 금속공예, 도자기 등 장르도 다르고 개성 강한 작품들은 공간 안에서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전시를 준비하며 임 대표는 작가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첫째, 작품성에 비중을 둔 것과 대중성·실용성을 고려한 것 등 두 가지 라인으로 작품을 입점할 것과 둘째, 모든 작품에 가격표를 붙이는 데 대한 동의다.
“가격표 붙이는 걸 꺼리는 이들도 있죠. 그런데 이곳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조금 친절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사고 싶어도 가격을 물어보는 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망설이다 돌아서기도 하고요. 개관전 타이틀인 ‘예술이 일상에 즐거움을 더하다’는 곧 이 공간의 모토이기도 해요.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는 곳이면서 누구나 그런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작가들께 두 가지 라인의 작품을 입점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누군가 찻잔을 구입해 차를 담아 마실 때 그게 그냥 잔이 아니라 공간 한 켠에 전시돼 있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작가의 다른 작품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예술이 갤러리에만 있는게 아니라 누구나 구입할 수 있고 그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임 대표는 작품이 대중과 편하게 만나도록 해 ‘작품의 순환’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작품을 사줬다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된다고. 작품을 인정하고 좋아해준다는 걸 느껴야 작가가 작업을 이어갈 힘이 생기는데, 그런 기회나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걸 계속해야 하나’ 하며 기운을 잃는다.
“극장을 운영하다 보면 어떤 날은 유료 관객이 세 명밖에 없어서 급히 SNS를 통해서 어떻게든 열댓 명 정도는 채워줘야 해요. 그래야 배우도 힘이 나서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거든요. 배우들은 관객을 보면서 공연하기 때문에 관객이 없으면 작품을 할 의미를 잃게 돼요. 미술, 음악 등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더라고요. 작품의 순환이 잘되면 좋은 작품을 할 작가도 많아지고 거기서 더 좋은 게 나오면 사람들은 그 작품을 보고 위안을 얻을 수 있겠죠. 그렇게 작가와 관객 모두 좋은 경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고, 그게 산울림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속도와 방향을 찾아 변화하는 일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를 열고 ‘복합문화공간 산울림’으로 새롭게 출발하면서 한 가지 더 시도한 것이 ‘산울림 아카데미’다. 연극을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단기간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인데, 5월에 시작한 첫 기수는 이들이 참여할 공연의 특성상 연령을 40대 이상으로 한정했는데도 반응이 생각보다 무척 좋았다. 일상을 이어가는 마음 한 켠에 예술을 향한 꿈을 둔 이들에게 산울림은 그들이 쌓아온 자원을 바탕으로 더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고 예술의 기류를 확산해가려고 한다. 11월에는 인디밴드, 국악 앙상블, 독립영화 제작자 등 젊은 아티스트들을 주축으로 다양한 공연을 펼치는 ‘판 페스티벌’이 예정돼 있다. 그에 앞서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에서는 개관전의 다음 전시로 ‘공연사진전’을 연다. 공연할 때 많은 사진을 촬영하는데, 그중 자료로만 묵히기엔 아까운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변화의 급물살을 타는 홍대 앞에서 산울림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필요한 방향의 것을 찾아 제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문화+서울

글 이아림
사진 제공 산울림 아트 앤 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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