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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아시아문학창작워크숍 초청 작가 샤힌 아크타르 진흙탕 현실을 직시하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말 것
아시아의 문화적 특성과 역사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음에도 우리가 북미나 유럽보다 아시아 문학을 접하는 빈도가 일반적으로 더 낮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샤힌 아크타르는 방글라데시 하층민의 현실을 직시하고 남성 중심적 사회와 역사, 그리고 주류로부터 외면받아온 여성의 삶을 소설로 옮겨 주목받은 작가다. 핍진한 현실 속에서도 끝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지닌 작가를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났다.

방글라데시 여성 작가 샤힌 아크타르(54)를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건 7월 2일 오후였다. 그를 만나러 가는데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식당에서 테러범들이 인질을 붙잡고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속보가 연이어 올라왔다. 그날 사태는 코란을 외우지 못하는 인질 20여 명이 참혹하게 살상당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아크타르는 서울문화재단 연희문학창작촌이 ‘문학이 기억하는 도시-서울, 아시아’를 부제로 내걸고 개최한 <2016 아시아문학창작워크숍>(6. 29~7. 3)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와 있었다. 이 행사는 중국, 몽골, 일본, 터키,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 9개국 작가가 참여해 낭독 공연을 하고 아시아 현대사와 자신들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방글라데시 하층민의 삶과 역사에 천착해온 작가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 작가가 서울에 도착한 6월 28일에도 이스탄불 국제공항에서 테러가 일어나 40여 명이 사망했다. 말 그대로 ‘요동치는’ 아시아가 새삼스럽게 실감되는 일련의 참극이었다. 아크타르는 “이런 종류의 테러가 다카에서 일어나기는 처음”이라며 “가까운 사람들 안위가 걱정되고 이런 현실이 닥쳐서 슬프고 걱정된다”고 운을 뗐다. 아크타르는 방글라데시 여성의 현실에 천착하면서 하층민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자국의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작품을 써왔다. 다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인도로 건너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부하고, 다시 다카로 돌아와 소설가로 전향해 많은 작품을 써왔다. 그중에서도 그네의 두 번째 장편 <수색>(2004년)은 특히 눈길을 끌었거니와 그는 이 작품에서 1971년 파키스탄과 해방전쟁을 벌일 때 강 간당한 벵골 여성들의 전후 학대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키스탄과의 전쟁에서 수백만 명의 여성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후 그들을 사회에 통합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노력은 있었지만 몇 년 안에 그들의 존재는 금방 잊히고 말았지요. 방글라데시의 공식 담론은 이 여성들은 파키스탄군에게 강간당했기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지 자신들이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는 태도입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끝나고 방글라데시가 독립한 이후에도 정부로부터 버려지고 제대로 치유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1억 6000만 명에 이르는 방글라데시 인구의 압도적 다수인 85%가 이슬람교도이고 나머지는 힌두교와 기독교, 소수의 불교도로 구성됐다. 강간 피해 여성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고통받는 건 아니라고 했다. 힌두교의 경우 다른 종교를 지닌 남자에게 강간당할 경우 집안에서 내쫓기기도 하지만 이슬람은 오히려 받아주고 잘 돌보려고 한다고 했다. 아크타르는 전쟁 당시 강간당한 힌두교 집안 딸을 만나 인터뷰했는데 그네는 집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은 이슬람 자유전사와 결혼해서 살았다고 전했다.
그네는 이 장편을 쓰기 위해 강간 피해 여성들을 인터뷰하러 다니던 무렵인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현장에도 참석했다.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 8개 아시아 국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참석한 세계 시민 재판 형식의 이 법정에서는 히로히토 일왕과 일본 정부, 전범 9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피해 여성들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지만 그 영웅들은 사회에서 외면당한 채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도쿄의 증언 소식을 듣고 큰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이미 많은 방글라데시 ‘영웅’을 인터뷰하고 있던 차에 도쿄 재판에까지 참여해 아크타르의 장편 집필은 더욱 탄력을 받은 셈이다.
“파키스탄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한국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일본이 철거하라고 요구한다는데 우스운 얘기입니다. 한국 정부가 이를 협상 대상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말이 안 되는 거죠.”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여성 홀로 사는 것 자체가 난관인 사회에서

그네가 작품에서 드러내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현실의 윤곽을 진지하게 대면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페미니스트 딱지를 붙이고 쉽게 외면해버리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했다. 자신이 여성의 현실뿐 아니라 역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을 쓰고 있는데 페미니스트로만 규정하는 건 오해라는 것이다. 세번째 장편소설 <소키 론고말라>(2010)는 18세기에 있었던 계급을 뛰어넘은 사랑에 관한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최근 소설 <공작 왕좌>(2014)는 왕좌를 남동생에게 빼앗긴 뒤 도주한 고대 통일 벵갈의 무갈 왕자가 떠도는 여정을 다루었다. 국내에는 아직 번역된 그의 장편이 없고 유일하게 <화장품 상자>라는 단편이 계간 <아시아> 10주년 기념호에 소개돼 있을 뿐이다. 창녀라는 이유로 묻힐 곳을 찾지 못하는, 살해당한 여동생의 시신을 끌고 헤매는 언니의 이야기다. 어렵사리 남 몰래 강가에 묻은 동생의 무덤에 ‘히잘 꽃’들이 떨어져 핑크빛 이불처럼 덮어준다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을 소개한 번역가 전승희 씨가 장편 <수색>을 번역하는 중이라고 하니 기대된다. 아크타르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던 외삼촌과 어머니 영향을 받았고 코밀라에서 홀로 수도 다카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나도 다카라는 도시를 정면으로 대면할 수 밖에 없었죠. 다카에서 살 집을 구하는 일은 겁도 나고 불편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여자 혼자 살기 위해 다카 시에서 방을 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죠. 여자들은 대학 교육이 끝나면 보통 바로 결혼하거나 결혼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여자 혼자 살거나, 혹은 서너 명의 여자 친구와 함께 사는 것조차 흔치 않은 일이었어요. 우리에게는 집세를 낼 능력도 있었고 셋방도 있었지만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세를 주지 않았습니다. 일단 어렵게 방을 구해 들어가도 첫날부터 집주인의 감시가 시작되곤 했지요. 그들로서는 우리가 왜 혼자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항상 우리가 어떤 종류의 여자들일까 궁금해했어요. 그 당시는 제법 큰 성매매 구역이 폐쇄된 탓에 도시 전체가 유동적인 창녀촌이 된 것 같은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성노동자에게 방을 빌려주게 되면 그 구역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극히 조심했습니다. 집주인들이 종종 세 사는 여성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어볼까 집적거리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아크타르는 혼자 지내야 하는 다카 여성들의 수난을 체험한 뒤 후일 이 시절을 첫 소설 <도망갈 곳은 없다>에 담아내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 아시아 작가워크숍에 제출한 에세이에 이 시절 체험을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네가 다카에 살기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다. 지방 출신인 100여 명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호스텔에서 살았다. 이들은 모두 중간 및 하층계급으로 군사 정부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함으로써 제재를 받은 것만 빼면 비교적 평화롭고 조용한 삶이었지만 여성으로서 홀로 사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워크숍 4일차에는 ‘아시아 현대사와 나의 문학’이란 주제로 간담회가 개최됐다. 소설가 김남일, 문학평론가 고영직의 사회로 워크숍에 참가한 국내·외 작가가 한자리에 모여 아시아의 역사와 문학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2 간담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샤힌 아크타르.
3 간담회가 끝난 후 연희문학창작촌 야외극장에서는 국내·외 작가들과 시민이 함께 영화 <동주>를 감상했다.

제가 쓰는 작품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끔찍한 현실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

아크타르는 다큐 영화를 찍다가 “눈앞 사실보다도 오히려 허구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소설로 전향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보통 작가들이 매년 2월에 열리는 북페어에 출품하기 위해 1년에 한 권씩 작품을 내놓지만 자신은 3~4년 만에 완성하는 리듬이어서 출판업자들이 너무 게으른 거 아니냐고 묻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공을 들여 신중하게 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제를 정하면 그것에 맞는 스타일을 고민해 지금 5번째 장편을 쓰고 있지만 그동안 집필한 작품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고 했다. 인권단체에서 실무자로 일하면서 무슬림 여성들의 글을 모아 엔솔로지 3권을 편집하기도 했다.
아크타르는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열린 문학제에 참석한 적이 있지만 그 행사들은 완전히 상업적인 성격이었다”면서 “서울 작가 워크숍은 각국의 언어를 존중하면서 진지하게 서로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짧은 체류 기간이지만 깨끗하고 잘 조직된 환경과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태평양과 대륙을 넘어선 구미의 문학은 잘 알면서 정작 같은 문화권의 아시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현실은 분명 제국주의적 질서의 유산일 터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아시아 각국에서도 자신들의 핍진한 현실을 담아낸 훌륭한 문학은 끊임없이 축적돼왔다. 샤힌 아크타르는 “제가 쓰는 작품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척박한 현실에서 길어낼 궁극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다. 순한 미소가 평화로운 그네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세속적인 이야기보다는 영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좋아요. 이 끔찍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싶습니다.”문화+서울

글 조용호
소설가. 세계일보 문학전문기자. 소설집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왈릴리 고양이나무> <떠다니네>, 장편소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무영문학상, 통영문학상 수상.
사진 최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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