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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6월호

전시 <빛의 벙커: 반 고흐>와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인사이드 마그리트> 빛의 미술, 초현실을 낳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빛 닿은 자리에 시선이 피어난다. 광활한 어둠 속에서 빛으로 율동하는 불후의 명작, 공간 전체를 빛으로 채우는 최첨단 미디어아트 전시가 서울과 제주에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가장 뜨거운 미술 관람 형태로 자리 잡은 몰입형 전시의 대표 주자다. 빛의 유채(油彩)가 온몸을 적신다.

<빛의 벙커: 반 고흐> 전시장 전경

빛의 전율 <빛의 벙커: 반 고흐> | 2019. 12. 6~2020. 10. 25 | 빛의 벙커(제주)

벙커의 암흑이 화폭이 된다. 제주 서귀포 성산읍에 있는 해저 광케이블 보관 벙커를 탈바꿈한 전시장으로, 단층으로 이뤄진 2,975㎡(900평) 면적의 어둠이 빛의 본색을 극대화한다. 이곳에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새 생명을 얻는다. 전시장 내 90여 개 프로젝터에서 고흐의 대표작이 삼면으로 쏟아지며 음악과 함께 30분간 맥동한다. 화단의 몰이해 속에서 비참하게 숨을 거뒀으나 사후 영원한 광휘를 얻은 이 화가가 ‘어둠과 빛’이라는 전시 콘셉트를 단박에 장악한다. 관람객 56만 명을 모으며 대흥행한 지난 전시 <빛의 벙커: 클림트>를 체험한 이들의 입소문으로 제주 명물이 된 지 오래다.
빛의 물감이지만, 고흐 특유의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재현해 덧바른 유화의 두께가 선명하다. 붓질의 강약까지 여실히 드러내는 클로즈업 덕분에, 이를테면 <해바라기>는 정물화지만 거의 동물처럼 느껴진다. <감자 먹는 사람들>로 대표되는 농촌의 어두운 광경을 지나, 그가 빛의 기법을 완성한 프랑스 아를(Arles) 풍경에서 빛의 서정이 폭발한다. 관람객은 <밤의 카페테라스>에 앉았다가 <아를의 반 고흐의 방>에도 머문다. 고흐가 1889년 요양했던 생레미(Saint-Rmy)요양소, 불길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의 자화상, 신경질적으로 솟아오르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통해 화가의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전시는 단순한 영상의 나열을 넘어선다.
고흐는 극도의 불안 속에서 자신의 귀를 잘랐으나, 이 전시를 완성하는 것은 청각이다. 푸치니·비발디 등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마일스 데이비스 등 재즈까지 끌어안는다. 프로방스의 햇빛을 캔버스에 파종하는 대표작 <씨 뿌리는 사람>과 함께 울려 퍼지는 음악은 미국 블루스 가수 재니스 조플린의 <코스믹 블루스>다. “또 다른 외로운 날을 통과해 내 꿈을 거세게 밀어붙인다”고 가사가 절규할 때, 그림 중앙의 태양이 천천히 확대되며 거대한 씨앗을 은유한다. 미디어아트만이 구현할 수 있는 경이로움이다.
사람들이 전시장 내 벤치에 앉거나 아예 드러누워 미광욕(美光浴)을 한다. 신난 아이들이 맘껏 뛰논다. 빛은 아무리 건드려도 훼손되지 않는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인사이드 마그리트> 전시장 전경

빛의 몽환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인사이드 마그리트> | 4. 29~9. 13 | 인사센트럴뮤지엄(서울)

상상이 일상을 추방한다.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를 첨단 기술로 구현한 멀티미디어 체험형 전시로, 이탈리아 영상디자인 스튜디오 페이크팩토리가 감독하고 브뤼셀 마그리트 재단이 직접 기획에 참여한 첫 아시아 전시다. 지붕 위 비처럼 쏟아지는 중절모 차림 신사들(<골콩드>), 머리에 천을 뒤집어쓴 채 키스하는 남녀(<연인들>) 등 무의식의 건너편을 화폭에 옮겨온 르네의 상상력으로 약 2,000㎡(600평) 규모 전시장을 꽉 채웠다.
백미는 330㎡(100평) 규모 ‘이머시브 룸(Immersive room)’이다. 소리와 움직임을 얻은 그림 160여 점이 40분간 일렁이는데, 구름을 머금은 눈알이 바닥을 흘러다니고, 미지의 인간이 땅에서 석상처럼 솟아오르는 파스텔 색감의 형상들이 피아노 야상곡과 이츠하크 펄먼의 바이올린 선율과 뒤섞인다. 저택의 낮과 밤을 한 장면에 담은 ‘빛의 제국’ 시리즈가 유선형의 벽면에 투사되는 ‘미러 룸’도 볼거리다. 특유의 하늘빛과 구름과 저택의 실내등이 거울 필름으로 마감한 바닥까지 번진다. 고흐가 강렬한 전율로 두피를 자극한다면, 르네는 꿈속에서 차를 마시듯 차분한 몽환으로 안내한다. “내 작품이 전하려는 것은 한 편의 시(詩)”라고 생전의 르네는 말했다.
전시장 복도를 따라 마련된 다수의 스크린 회화와 복제화를 통해 작가의 생애를 일별할 수 있다. 영화광이었던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출연한 영상을 상영하는 ‘시네마 룸’, 작가가 매료됐던 거울을 활용해 가상과 비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미스터리 룸’, 관람객 눈·코·입을 자동 인식해 작품 속 얼굴과 즉석 합성해 주는 ‘플레이 마그리트 존’, 파이프 담배 그림으로 잘 알려진 <이미지의 배반>과 방 하나를 채우는 거대 풋사과 그림 <청취실>을 대형 조형물로 재현한 포토존까지 다채롭다. 개막 열흘 만에 관람객 1만 명을 넘기며 인사동 명물이 된 이유다.

글 정상혁_《조선일보》 기자
사진 제공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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