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문화+서울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사람과 사람

6월호

‘구름빵 사건’을 통해 본 저작권 문제 창작자를 위한 사다리 법의 필요성
지난 3월, 그림책 《구름빵》의 원작자인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문학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기에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언론에 회자되는 ‘구름빵 사건’은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구름빵 사건’을 두고 백 작가의 상황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백 작가에게 저작권을 돌려주라는 국민 청원도 등장했다. 그러나 저작권을 양도한다는 내용을 인지하고 계약했으면서도 이제 와 계약이 무효라는 주장은 부당하다는 입장도 만만찮다.

끝나지 않는 논쟁, ‘구름빵 사건’의 쟁점은?

그림책을 보지 않는 사람도 들어봤을 ‘구름빵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2003년 《구름빵》 출간 계약 당시 백희나 작가와 출판사인 한솔수북은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출판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 저작재산권의 모든 권리를 한솔수북에 양도하기로 하는 매절 계약을 체결했으나 저작재산권 일체의 권리를 양도하기로 하는 해당 계약은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백 작가는 한솔수북 등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구름빵》은 그림책 자체만으로도 15년간 40여만 부가 팔렸고, 뮤지컬 같은 2차 콘텐츠가 제작될 정도로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지만 원작자인 백 작가가 출판사로부터 저작권료 및 지원금 명목으로 받은 금액은 1,850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백 작가의 주장에 대해 출판사는 불공정한 계약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애초에 백 작가와 체결한 계약은 단행본에 대한 출판 계약이 아닌 유아 대상 회원제 북클럽 상품에 삽입되는 저작물 개발 용역 계약이었으며, 계약 당시 백 작가도 저작권 양도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클럽 상품에 들어가는 수십 권의 책을 동시에 제작하는 만큼 책이 팔릴 때마다 인세를 지급하는 계약 방식이 불가능해 매절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으며, 신인 작가에게 당시 4만 부 판매에 해당하는 인세를 지급한 것은 출판사에서도 상당한 위험을 안고 투자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같이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2003년 당시 백 씨가 신인 작가였던 점을 고려하면 저작권을 양도하는 계약 조항은 상업적인 위험을 적절히 분담하려는 측면도 있으며 백 씨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백 작가의 주장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백 작가는 상고해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법적인 관점에서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관계까지 아우를 수 있는 법 제도의 필요성

대한민국 민법의 기본 원리는 바로 ‘사적자치(私的自治)의 원칙’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이뤄지는 사법(私法) 관계에서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 책임하에 법률관계를 형성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계약 당사자들은 계약의 종류, 내용을 자유로이 결정해 체결할 수 있고, 이렇게 체결된 계약에 대해 당사자는 책임지고 이행해야 한다. 이러한 사법관계의 처리에 대해서 법원은 원칙적으로 최소한으로 개입할 뿐이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 일방에게 궁박·경솔·무경험 등의 사정이 존재하고, 상대방이 이를 이용하려는 의사가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우에만 법원은 사후에 계약을 무효로 하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구름빵 사건’의 발단이 된 ‘매절 계약’도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무효라 할 수 없고, ‘계약 체결 당시의 구체적인 사정’을 따져 무효로 보거나 저작권 양도 계약이 아닌 출판 계약으로 한정해석 하게 된다. 따라서 자칫 냉정해 보이는 1·2심의 판결은 바로 사적자치의 원칙에 입각해, 백 작가와 한솔수북이 계약을 체결할 당시의 상황을 살폈을 때 해당 매절 계약이 백 작가에게 부당하게 불리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적자치의 원칙에는 맹점이 있다. 사적자치의 전제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계약을 체결한다는 점인데 현실의 ‘갑을 관계’에서 과연 자유로운 의사대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창작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은 계약서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부당한 저작권 양도 특약이 있는 경우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백 작가도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매절 계약 체결 당시 저작권 양도 조항을 알고 있었고, 수정 요청을 했지만 거절됐다고 한다. 이처럼 현실에는 작가에게 불리한 저작권 양도 특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갑’이 제시하는 조건에 거부할 수 없는 ‘을’이 너무나도 많다. 계약서의 텍스트로 미처 드러나지 않는 갑을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묘하게 악용되는 갑을 관계를 간과하고 사적자치의 원칙을 고수하며 전적으로 당사자 간의 민사 계약에 맡겨서만은 안 된다. 백 작가 사건과 동일한 판례만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저작권에 대한 포괄 양도 등을 일정한 조건에서 제한하거나 사후에 추가적인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등의 권리를 입법화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현실의 ‘을’을 보호해야 한다.
‘구름빵 사건’이 문제 되기 시작하자 일명 ‘구름빵 보호법’ ‘구름빵 방지법’이라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구름빵 보호법’은 19대 국회 회기 내 처리되지 못한 채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구름빵 방지법’ 역시 회기 내 처리되지 못해 폐기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그간 저작권은 개별 민간관계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저작권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보이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5월 13일 ‘매절 계약’에 대한 추가 보상권을 도입하는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구름빵 사건’으로 말미암아 창작자들의 현실을 법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법의 기준은 흔들림 없이 하나여야 하고, 법의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 섣불리 당사자 간의 계약을 무효로 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법이 미처 아우를 수 없는 현실에 형식적인 법 적용은 오히려 갑을 관계만 견고히 해줄 뿐이다. 따라서 창작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진정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입법을 통해 사다리를 만들어줄 때다.

글 박주희_법률사무소 제이 대표 변호사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