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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6월호

서드뮤지엄(3rd Museum)홍대 앞에 기업 미술관이?
서드뮤지엄이 품은 숫자 3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한때 ‘대안’과 ‘제2’를 부르짖으며 부상한 홍대 앞에 등장한 기업 미술관이 ‘제1’이 아닌 ‘제3’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불균질한 홍대 앞 문화예술 생태계에 묵직한 균형추를 드리우고자 하는 이곳의 움직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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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2월까지 열린 홍지윤의 개인전 <꽃, 구름(花, 云)> 전시장 전경

유흥이 아닌 문화예술 관점에서 홍대 앞을 진단한다면 ‘대안 문화’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기성 문화에 대한 비판이 가장 신랄하게 쏟아지는 곳이자 그에 대한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와 대안이 샘솟던 곳. 2000년대 들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고 ‘인디(indie)-’와 ‘독립-’의 가치를 만들던 홍대 앞이 그 힘을 잃은 건 아마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이후일 것이다. 문화로 꽃을 피운 동네, 다양성으로 빛을 내던 골목이 그렇게 자본주의에 잠식됐다.
서드뮤지엄(마포구 잔다리로3길 4)은 첨단 제약기업 다림바이오텍이 문화예술 후원의 일환으로 사옥의 일부를 내어 만든 기업 미술관이다. 빌딩과 카페가 연달아 등장하는 교차로 한복판, 영롱한 홀로그램 빛을 반사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공간이 있다면 잘 찾은 것이다. ‘인스타그램용 인증샷’ 찍기 좋은, 젊은 층의 시선을 빼앗는 외양에 출입구를 발견하기 어렵다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볼 것을 추천한다.
바로 그곳이다. “톡” 하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문이 열린다. 눈부신 외부와 달리 공간은 작고, 조밀하다. 오른편의 안내 데스크와 그 옆에 배치된 작품이 이곳이 ‘미술관’임을 알려준다. 서드뮤지엄은 미술가 최정화가 개관 전시의 기획과 디자인을 맡아 화제가 된 공간이다. ‘작품’과 ‘용품’을 뒤섞고, 규범을 맘껏 비꼬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최정화에게서 상상한 이미지와 달리 공간 내부는 ‘심플’ 하고 ‘클래식’ 하다. 지상과 지하 공간은 최정화의 작품 <인피니티>와 <기둥은 기둥이다>로 연결되는데, 넓지 않은 공간에 전시하게 될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배려해 설치한 것이 돋보인다.
‘서드뮤지엄(3rd Museum)’이라는 이름을 들은 많은 이들이 ‘대안’ ‘제2(2nd)’, 그리고 ‘제3(3rd)’의 연관성을 생각할 것이다. 틀린 추측은 아닌 것 같다. 서드뮤지엄은 ‘홍대 앞, 제3의, 새로운 시공간’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2 다음의 3이 아니라 우리의 삶·생활·생명을 지칭하기도 하며, 나·너·우리가 함께하는 벌이는 곳·짓·것의 공간임을 내세운다.

2 미술관 외부에 설치된 임지빈의 작품 <너로 인해 나는 아프다>

미술관의 곳·짓·것

곳,‘공간’이 갖는 가능성은 무한해 보인다. 작지만 이모저모를 다채롭게 활용한 전시 공간에는 안내와 주의 문구만 있을 뿐 관람객의 자유로운 관람을 제한하는 장치가 없다. 외양으로 보자면 블랙 큐브(사옥)와 화이트 큐브(전시장)가 공존하고, 통유리로 마감된 외벽은 전시의 성격에 따라 생활 공간과 전시 공간을 단절하거나 미디어 파사드를 활용해 두 공간을 매개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4월 22일부터는 임지빈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이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 접해봤을, 베어브릭을 활용한 팝아트 작업이 본관과 공사가 진행 중인 신관 부지에 설치돼 있다. 작은 크기의 오브제부터 해외 전시 사진, 외부 설치물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에 제목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슬레이브(slave)’라고 지칭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소유와 욕망의 노예가 돼가는 현대인을 상징한 것이다. 신축 공사 중인 현장에 끼어 있는 곰 풍선은 임지빈 작가가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에브리웨어(EVERYWHER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전시장에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한정적이라는 현실에, 폐쇄된 전시장을 벗어나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자 ‘어디에나’ ‘찾아가는’ 작품을 고안한 것이다. 어쩐지 현실에 끼어버린 듯한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은 <EVERYWHERE in Hong Dae No.1 at Third Museum>은 본관 전시가 끝나는 6월 21일까지 햇볕이 내리쬐나 비가 오나 이곳을 지킬 예정이다.
짓, 어떤 ‘예술적 실험’이 이곳에서 싹을 틔울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1960년대 지어진 공간을 리모델링해 또 다른 예술적 공간으로 사용하려는 작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서드뮤지엄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자 계획하고 있다. 디자이너 정병규의 강연, 작곡가이자 연주자 원일과 연출가 적극이 협업한 공연 등 전시를 기반으로 학술·교육·인문학·테크놀로지·서브컬처 등 우리 삶을 둘러싼 잡다한 짓을 펼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것, 미술관의 핵심이 되는 ‘전시’는 기조를 정하지 않고 유동적으로 운영된다. 민화 작품과 추사 김정희, 우석 최규명의 서예 작품으로 구성한 개관 전시 <삼색광경(三色光景)-민화의 색, 추사의 빛, 우석의 경>(2019년 9월~12월)은 아름다운 과거와 미래의 기억을 엮어 동양의 미학을 보여줬다. 이어 진행된 홍지윤의 개인전<꽃, 구름(花, 云)>(2019년 12월~2020년 2월)과 임지빈의 개인전 <지금·여기>(2020년 4월~6월)는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서드뮤지엄의 열린 다양성을 보여준다.
서드뮤지엄은 불균질한 홍대 앞 문화예술 지형에 드리운 균형추가될 수 있을까? 서드뮤지엄의 디렉터가 홍대 앞에서 처음으로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을 달고 1999년 개관한 대안공간 루프의 부디렉터였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글 김태희_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서드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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