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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유쾌한 이야기꾼만화가 주호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전시회를 하는 경우도 많지 않지만, 화가 아버지와 만화가 아들의 전시라면 더욱 특이하다.
전시 <호민과 재환>(서울시립미술관, 5. 18~8. 1)은 다른 길처럼 보이는 만화와 미술이,
무언가 함께 해본 기억이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작업이 사실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아버지와 함께 전시를 하게 된 주호민 작가의 기분은 어땠을까?
기자 간담회에서 “신기하기도, 엄청나게 부담스럽기도” 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럴 수밖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버지 주재환은 1980년대 미술 단체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작품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
원로 화가와 공동 전시를 하는 건 누구에게라도 부담스러운 일인데, 하물며 아버지라니.
부담스럽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연대를 느끼게도 해준 이번 전시를 어떻게 준비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유쾌한 컬래버

“2년 전쯤 아버지에게 ‘아들도 작업을 하고 있으니 함께 전시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종종 왔습니다. 제가 연재할때는 여력이 없어 실행하지 못했지만, 연재가 끝난 후 구체화됐습니다. 아버지와 무언가를 함께 한 기억이 없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함께하게 돼 좋았습니다.”
<호민과 재환>에서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주재환 작가의 작품도, 부자의 작품을 하나의 테마로 엮어낸 전시도, 마치 웹툰화면처럼 번쩍이는 라이트패널로 본 주호민 작가의 커다란 작품도 인상 깊었다. 필자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인 건 유튜브 형식으로 편집해 상영한 ‘주재환 월드컵 16강’이다. 부자가 함께 앉아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은 전체 전시를 압축해 놓은 것처럼 유쾌했다.
주재환 작가는 1941년생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해설에서는 “1990년대 몇몇 그룹전에 출품하며 근근이 작품 활동을 지속하던 작가는 2001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을 통해 특유의 자유롭고, 어눌한 형식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며 비판적 시선이 공존하는 작품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냈다”라고 소개했다. 주재환 작가가 60세 되던 2001년 개최한 첫 개인전 제목은 <주재환 작품전 1980-2000,이 유쾌한 씨를 보라>다. 쇼핑백·비닐·노끈 같은 재활용품이나 쓰레기는 물론 치즈나 단무지와 같은 평범한 재료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은 개인전 제목처럼 ‘유쾌’했고, 그렇게 만든 작품은 세태를 풍자했다.
주호민 작가의 만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8년 인터넷 포털 야후에 연재한 <무한동력>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당대 젊은이의 곤궁한 삶을 스물일곱 졸업반 대학생 장선재의 1인칭 시선으로 풀어낸다. 만화비평가 김낙호는 <무한동력>을 “갑갑한 무력감에 짓눌리는 모습을 잔인하게 해부하기보다,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나름대로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주재환 작가의 작품이 담고있는 유쾌함과 풍자가 주호민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작업하시는 모습을 봐왔고, 집에 항상 도록을 비롯한 재미있는 책이 많았기 때문에 보는 게 놀이였고,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게 됐습니다. 아버지의 성격도 굉장히 유머러스하신데 그런 점도 꽤 닮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주재환 작가는 미술이라는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주호민 작가는 만화라는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각각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두 작가가 한 공간에서 다시 이야기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일까?
“저희의 공통점이 있죠. 아이디어를 빠르게 펼치고 오랫동안 주무르고 있지 않습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그것을 어둡지 않게, 재밌게 풀어내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작품은 이미지와 글의 결합으로 한 번에 탁 의미가 전달되는 작품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만화 같기도 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연속극을 만드는 입장이니 천천히 준비하는 편입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항상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재미있게 해라’라고 하셨는데 재미있게 하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웃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그것을 어둡지 않게, 재밌게 풀어내려고 합니다.

주호민 <죽어서야 로얄층>

다양한 별명만큼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다

주호민 작가는 1981년에 태어났다. 1980년에 ‘현실과 발언’을 창립한 아버지의 작업을 늘 지켜보던 주호민은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게 됐다. 그림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식은 연습장에 볼펜으로 그리는 가벼운 패러디 만화로 구체화됐다. 2002년 군 입대 전 아마추어 인터넷 만화 사이트 ‘3류 만화 패밀리’를 통해 연습장 만화를 발표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커뮤니티 포털 디시인사이드 스타일의 패러디 개그 만화가 주를 이뤘다. <호민과 재환>에서 당시 그린 연습장을 공개했다. 정식 연재 만화가 아니라 완성된 형식보다는 자유롭게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전시에 채택됐다.
“2002년에 3류 만화 패밀리라는 사이트에 자유롭게 그린 만화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큰 흥미를 느꼈어요. 취미로 그리던 만화를 스캔해서 올린 게 시작이었습니다. 반응이 상당히 좋았고 군대에서 꿈을 키웠습니다. 전역 후 군 생활을 그린 만화를 올렸고, 이것도 반응이 좋아 진로를 정했어요.
”주호민은 군 제대 후 그린 군대 일상 만화 <짬>을 2005년 《스포츠투데이》 웹서비스 ‘스투닷컴’에 연재하며 데뷔한다. <짬>은 군대와 군인을 장르의 부분집합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의무로 거쳐가는 군의 일상을 만화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섬세한 관찰과 주호민식 ‘유쾌한 씨’의 출발점이다. 주호민은 <짬>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탄생시킨다. 이후 후속작에서 주호민식 ‘유쾌한 씨’가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주호민 작가의 세계관, 더 확장해 ‘재환과 호민’ 두 작가가 지닌 세계관의 핵심은 ‘유쾌한 씨’다.
“독자가 작품을 보고 있는 시간만큼은 현실을 잊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극 중 캐릭터가 실제 있을 법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데는 유머가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인간적 부분을 도드라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유머 아닐까요. 스탠드업 코미디를 즐겨 보는데요. 누구나 해봤을 생각을 코미디언이 콕 집었을 때 웃음이 터집니다. 결국은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독자와 캐릭터 간에 애정도 생기는 것같습니다.”
만화에서도 그렇지만 작가 스스로 다채로운 캐릭터가 되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답변이다. 그는 자신이 거쳐간 곳이 모두 사라졌다며 올린 트윗으로 ‘파괴왕’이라는 캐릭터를 얻었다. 이후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 ‘파괴왕’이라는 이름표를 부착하고 방송에 나왔다. 유튜브에 리코더를 연주하는 영상을 올려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만화를 넘어 작가 개인이 캐릭터가 되고, 유머의 주체가 된 셈이다. 의도했을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리코더 연주하는 영상은 정말 진지하게 연습해서 올린 건데 유튜브 조회수가 500만이 넘었습니다. 댓글창에 아무말 대잔치가 열렸는데요. 저를 두고 츄파춥스, 피리 부는 칸쵸라며 놀려요. 파괴왕 밈meme도 제가 몸담던 곳이 없어진 사례를 모아서 우스개로 올려봤는데, 그 후로 사람들이 뭐만 없어졌다 하면 저를 연관 짓더라고요. 의도치 않은 상호작용을 통해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연재를 시작한 디지털 네이티브 작가이며 만화를 넘어 유튜브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으니 상호작용은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2017년에 연재를 시작해 2020년에 완결한 <빙탕후루> 이후 신작 활동보다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주호민 채널은 구독자가 21만 명이 넘고, 100만 명이 구독하는 ‘침착맨’(웹툰 작가 이말년의 채널)에도 출연하고 있다. 이대로 크리에이터 활동에 주력하는 것일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만화는 제가 오랫동안 해온 일이고 유튜브도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 같이 할 것 같습니다. 만화가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연재처가 작가에게 절대적 영향을 끼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꿈과 밥이 대칭되는 개념이 아닌데
왜 이렇게 구성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볼 때마다 제 생각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만화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전시 <호민과재환> 전경

<무한동력>과 <신과 함께>

<호민과 재환>에서는 연습장 만화, <짬> <만화전쟁>도 소개되지만 주로 <무한동력>과 <신과 함께>가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무한동력>은 2008년 연재 당시 ‘88만 원 세대’라 불린 청년 세대의 곤궁한 삶을 따뜻하게 담아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라는 대사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2008년과 2021년, 시간은 지났지만 청년세대가 여전히 어려운 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의 격차가 더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2021년 다시 보는 <무한동력>은 어떤 의미일까?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만화입니다. 처음으로 그린 장편극화이기도 하고, 제 친구들의 모습을 담아냈고, 현실의 이슈를 실시간으로 반영했습니다. 현실에서 수능을 보면 만화에서도 수능을 보고, 현실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 만화에서도 취업난이 시작되는 식이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라는 대사가 알려져 있는데, 만화를 그린 13년 전에는 꿈에 방점을 찍고 쓴 대사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밥을 먹어야 꿈도 꾸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꿈과 밥이 대칭되는 개념이 아닌데 왜 이렇게 구성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볼 때마다 제 생각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만화입니다.”
<짬>과 <무한동력>으로 조금씩 주목받았지만 지금의 주호민을 있게 한 만화는 <신과 함께>다. <무한동력> 연재를 끝내고 2010년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한 <신과 함께>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다양한 설화와 전설을 묶어 우리 시대의 여러 아픔을 담아낸 작품이다. 역시 이번 전시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우연히 제주도 신화에 관심이 생겨 그렸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캐릭터가 많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이 많아 저승편과 이승편으로 나눴고 저승편에서는 저승관을, 이승편에서는 가택신앙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저승편이 특히 어려웠는데 유능한 변호사가 저승의 여러 난관을 지혜롭게 돌파하는 모습이 큰 재미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는 결국 제가 생각해야 되는 거였더라고요. 작가는 자신보다 똑똑한 캐릭터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을 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짜내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서로 관련 없는 여러 개의 신화를 연결해 묶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마치 조각보를 덧대 잇는 느낌이었습니다.”
<신과 함께> 웹툰도 독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영화는 1편·2편이 모두 천만 관객을 넘기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만화 내용만큼 영화화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웹툰 연재가 2012년 끝났는데, 영화는 5년이 흐른 2017년에 개봉했다. “처음 영화화 제의를 받은 것은 만화가 끝난 직후인 2012년이었습니다. 5년이 흐르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원작과는 영 다르게 나와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자 무척 재미있었고, 관객 반응도 좋아서 그때부터는 감독님 찬양을 하고 다닙니다.(웃음) <신과 함께> 3·4편까지 제작하기로 했고 좀 더 원작에 가깝게 드라마화도 진행 중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군대 경험을 다룬 일상 만화 <짬>에서 시작해 <무한동력>에서는 하숙집에 기거하는 20대 세 명과 하숙집 주인, 고3 큰 딸과 고1 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신과 함께>에서는 인물도 스케일도 크게 확장된다. <신과 함께> 3부작 모두 주인공보다 조연이 다양하고 매력적으로 등장한다. 1부 저승편만 봐도 39세에 죽은 주인공 김자홍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하지만 김자홍이 만나는 조연은 저승차사·오방신장·저승시왕 등 매력 넘치는 인물이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은 원리입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주인공은 그래픽도, 성우도 없습니다. ‘나’니까요.(웃음) 다만 항상 이런 것은 아니고 만화마다 다릅니다. <무한동력>이나 <신과 함께>처럼 강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만화에는 이런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과 함께> 이후 일상 만화 <셋이서 쑥>과 일상 반 허구 반의 <만화전쟁> 그리고 장희 작가가 스토리를 쓴 <빙탕후루>까지 작품이 이어졌다. 여전히 독자는 주호민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후속작은 <셋이서 쑥>의 뒤를 잇는다.
“첫째 아들이 발달장애가 있는데 10년 가까이 발달장애아의 아버지로서 느낀 바를 만화로 풀어내 볼까 합니다. 가족의 이야기이자 장애라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서 선뜻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으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호민식 ‘유쾌한 씨’가 걷는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호민 작가는 모든 작품에 만족하면서 작업했다고 말한다. <신과 함께>의 대박에 대해서도 “저는 원래 똑딱이 타자인데 <신과 함께>가 우연히 홈런”이 됐다고 유쾌하게 설명해 줬다. 팔순인 주재환 작가의 ‘유쾌한 씨’의 행보도 계속되고, 주호민 작가도 신작을 통해서 ‘유쾌한 씨’의 행보를 계속하기를 기대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서울웹툰아카데미이사장 | 사진제공 주호민,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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