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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책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더는 여행하지 않을지라도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못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갑갑하거나 갈증이 일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홀하게 여기던 국내 도시에 머무르며 그 속살을 즐길 기회를 가졌다. 말 통하고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시간도 돈도 덜 들고, 공항의 번잡함과 시차 극복 같은 피곤한 일을 겪을 일도 없었다. 이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두 책을 소개한다.
여행을 즐기지 않는 여행자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필자는 가끔씩 이국적 향취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일기도 하지만 대체로 하늘길 막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바람 쐬러 떠난 지방 도시 여행도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건 서울에서의 일상이다. 전 세계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먹을거리와 문화를 누리면서 ‘아, 서울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날이 코로나 이전보다 많아졌다. 어쩌면 그건 본디 여행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 인간이기 때문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소설가 정세랑의 여행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수 없어》를 읽으며 괜한 친근감을 느낀 것은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는 작가의 고백때문이었다. 이 책은 작가가 무려 9년간 집필한 여행 에세이인 데다 뉴욕·런던·아헨·타이베이·오사카 등을 여행한 경험을 담고 있지만 작가는 정작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파리에 간 반 고흐나 이탈리아에 간 괴테처럼, 무릇 예술 하는 사람은 이국을 여행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믿고 있었는지라 처음에는 그 사실이 살짝 낯설었다. 알고 보니 이는 작가가 어릴 때 소아뇌전증을 앓아 갑자기 발작을 일으킬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슬픈 사연을 담고 있었는데, 그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필자는 이 책이 더 좋아졌다. 발작 때문은 아니지만 필자 역시 낯선 곳을 무척 두려워하고, 그 때문에 해외여행을 무서워하므로. 그렇지만 어떤 갈망은 두려움도 이긴다. 작가는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다니던 출판사에 사표를 낸 후 친구를 만나러 뉴욕에, 남자친구를 따라 독일 아헨에, 이벤트에 당첨돼 런던에 간다. 뉴욕 이스트빌리지와 런던 국립초상화 박물관 등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담뿍 담긴 수다스럽고 발랄한 여행기엔 “~에 다시 간다면”이라는 문장이 반복되지만 정작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앞으로의 나는 별로 여행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고 말한다. 이미 여행에서 찾아낸 보물을 충분히 품고 있으므로, 여행할 기회를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싶다면서 “그러니 이제 또, 다른 사람들의 여행 책이 달고 맛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필터 삼아 걸러낸 지구의 면면을 살짝 떨어져 탐닉하고 싶다”고 말한다.

일상을 살면서 여행을 하다니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 지음 | 어크로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자’인 무루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그림책에 대한 에세이다. 따뜻하고 반듯하며 삶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여행을 가려고 집을 부수다니’라는 꼭지다. 네덜란드 작가 마티아스 더 레이우의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을 소개하는 이 글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꽤 오래 여행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고양이 핑계를 대고 있지만 실은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체력이 약하고 가진 돈은 적고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여행이 꼭 인생의 필수 항목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그저 여행이 더는 하고 싶지 않아져서” 여행하지 않는 사람이 돼버린 무루 작가는, 정세랑 작가와 마찬가지로 여행 책이나 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들이 사다준 기념품 같은 ‘남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즐긴다. 그러면서 여행 체질인 친구 ○○를 생각한다. 어디에도 1년 이상 뿌리내리는 법이 없이 보란 듯 자유롭게 흘러 다니며 살던 친구가 떠오른다.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 속 남자는 ‘떠나볼까?’ 하고 살던 나무집을 부수고 만든 다리를 내달려 호기롭게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마친 남자는 다리를 부숴 다시 집을 짓는다. 집이 낡았지만 남자의 얼굴엔 생기가 돈다. 머문 곳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 미련 없이 먼 곳으로 떠나던 결혼 전의 ○○를 닮았다. 무루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혼자서는 어디로든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 ○○가 나무다리로 집을 짓고 사는 남자와 닮았다 생각한다.
더는, 혹은 당분간 여행하지 않더라도 여행에서 얻은 생기로 일상을 충만하게 사는 사람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도 결국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그들은 낯선 나라에 매혹돼 비행기 티켓을 끊고 여행 가방을 싸는 대신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이 나라를, 서울을 충만하게 즐길 것이다. 비행기 옆자리가 아닌 서울의 지하철이나 버스 옆자리에서, 이 일상 여행가들과 마주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곽아람 《조선일보》기자 | 사진 제공 위즈덤하우스,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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