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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시민-작가 이미상의 윙크 혹은 밀당

구글 검색창에 ‘이미상 작가’를 검색하면 “2018년 웹진 ‘비유’에 올린 데뷔작 <하긴>이 이듬해 2019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라는 소개부터 뜨는데요. 저는 2018년 당시 웹진 ‘비유’의 기획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 인터뷰를 맡게 됐습니다.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는 연희문학창작촌 미디어랩은 ‘비유’와 별개로, 최초예술지원사업 간담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죠. 소설가로서 활동하기 전부터 이야기 나눠볼까요?

저도 오늘 연희문화창작촌에 오면서 추억에 젖었어요. 2017년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 문학 분야 ‘문학청년 활동지원’에 데뷔작 <하긴>이 선정되면서 웹진 ‘비유’와도 연이 닿아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지요. 어찌 보면 이곳이 제 작품 활동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시 예비 작가 100명을 선정해 지원금을 주고, 원하는 사람은 전문 편집자의 편집을 거쳐 퇴고한 다음 ‘비유’에 원고를 실어주었지요. 그 과정에서 간담회를 열었고, 그 장소가 여기였죠? 당시 웹진 ‘비유’ 창간 계획을 발표하시던 비평가님의 열정적인 모습, 또 지원사업에 선정돼 설레고 긴장했던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의 열기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함께한 분들과 내적 친밀감이 느껴져 다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웃음)

그때는 웹진 ‘비유’도, 100명 작가의 작품도 공개되기 전이었죠.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 저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첫 발표작 <하긴>에 대해 후기와 평문을 남겨주셨으니, 저는 당시 기획자로서 첫 발표의 경험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그전까지는 그냥 집에서 혼자 글을 썼기에 전문 편집자에게 교정?교열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어요. 글이 지면에 발표되기 전, 교정지가 오가는 과정 같은 것에 대해서도 아예 몰랐고요. 그때 편집자분들이 참 좋으셨어요. 저희 글을 기성 작가와 똑같이 존중하며 대해주셨고요. 당시 지원 규모가 100명이니, 그 수가 엄청 많잖아요. 그래서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들어갈 수 있었고요. 글과 다소 거리가 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글을 성의 있게 매만져 주는 사람을 만난 거죠. 출판계에서 행해지는 지면 발표 프로세스도 엿볼 수 있었고요.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자신의 글이 진지하게 다뤄지는 경험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이 다음 글을 쓰는 데 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웹진 ‘비유’에 실린 작가님의 첫 작가 소개가 인상 깊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을)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을 때가 온다. 그럴 땐 이 말이 즉효다. ‘아무도 너더러 하라고 한 사람 없다.’ 이 말에는 의외의 긍지와 자유가 깃들어 있다.” 저는 이 소개를 처음 읽고 두 어깨가 반듯하게 펴지는 경험을 했어요. <티나지 않는 밤>의 수진처럼 도처에 존재할, 쓰고 있는 ‘시민-작가’와의 만남의 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지금 작가님께는 이 소개를 쓰던 시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하네요.

오래전에 쓴 소개 글인데, 지금도 비슷해요. 물론 현재는 청탁, 마감, 계약 등 약속이 생기고 환경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쓰고 싶어서 쓴다!’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이 소개를 쓸 당시엔 아직 제 글이 많은 독자를 만나진 않은 상태라 하고 싶은 얘기를 더 자유롭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독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니 혹시 몸을 사리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주의해요.(웃음)

‘아무도 하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 굳이 계속하는 일’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텐데요. 작가님께는 ‘그 일’이 왜 소설이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많은 작가가 독서를 좋아하다가 자연스레 쓰기로 넘어가는데, 저는 쓰는 게 먼저였어요. 쓰기에 관심이 많으니 더 잘 쓰고 싶어서 책을 읽다가 독서에 빠지게 된 셈이죠. 혼자 블로그에 일기 쓰고, 책과 영화 보고, 감상문 쓰고 그랬어요. 저는 경험상 쓰기가 읽기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이 읽은 사람만이 글을 쓸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경험상 쓰기가 읽기를 촉진하기도 해요. 제가 개인 블로그와 일기장에 형식상 에세이를 쓰다가 소설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자꾸 글에 허구가 침범해서였어요. 흔히 허구라고 하면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를 상상하잖아요. 하지만 사실 우리가 하루에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해도, 기억의 오류, 해석의 편향 또는 어떤 바람 같은 것이 섞여 점점 사실로부터 멀어지게 되기도 하지요. 그런 재구성도 느슨한 의미에서 픽션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허구를 더 밀고 나가면 소설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에세이를 쓰시는 분들께 소설도 한번 써보시길 권하고 싶어요. 써보면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그 자체가 어떤 소설들이 고민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지점이 되기도 하죠.

2022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이미상의 첫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과 2023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 실린 수상작품집

첫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이 발간된 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글쓰기와 생활을 분리하고 싶어 본명 대신 필명을 지었다는 대답을 읽었어요. 글 쓰는 이미상과 생활인의 자아 중 어느 쪽이 ‘부캐’인가요?

작가가 부캐죠. 30대에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데뷔도 늦은 편이라 작가 아닌 사람으로 산 세월이 훨씬 길고, 지금도 예전과 같은 직업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또 일상생활에 작가로서의 자의식이나 스트레스가 침범하는 것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요. 개인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분리하고 싶어요. 데뷔하고 몇 년간 부모님께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정도고요.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작가님께서 글쓰기에 몰입하느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외로움을 주기도 한다는 대답을 읽었는데, 그렇다면 이제는 본캐와 부캐가 바뀐 것 아닌가요?(웃음)

맞아요. 이제는 좀 섞이긴 해요. 마감 앞두고는 예민해지고,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울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족들이 농담으로 ‘이미상’ 나오면 좀 집어넣으라고 해요.(웃음) 또 한 번은 소셜미디어 친구가 제가 이미상인 것을 모르니까 <하긴>이 실린 ‘비유’ URL을 보내주면서 한번 읽어보라고… 제 스타일일 것 같아 추천한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제 스타일이겠죠. 제가 쓴 것이니까요.(웃음)

모든 작가의 꿈과 같은 경험을 하셨네요. 말씀하신 에피소드에서처럼, 저는 작가도 소설을 발표하고 나면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독자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의 (독자로서) ‘최애’는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그 친구>에 등장하는 구지경을 좋아해요.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짧게 소개하면, 지인들로부터 ‘인생 왜 그 지경으로 사냐’고 평가받는 약간의 사고뭉치예요. 제가 볼 때 지경은 복잡하고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이에요. 맹한 듯하지만 속을 알 수 없고, 엘리트주의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하고요. <그 친구>에서 독서모임 사람들이 지경이 제2차 세계대전 시작 연도를 모른다고 비웃잖아요. 그때 지경은 가타부타 말없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언젠데요?”라고 묻죠. 그런 태도가 속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로 지경이 그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누군가가 어떤 단어, 어떤 지식을 모른다고 한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지경은 그런 태도가 대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오히려 반지성주의를 강화하는 게 아닌지, 맹한 얼굴로 예리하게 묻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여자가 지하철 할 때>를 읽으면서는 자연스럽게 강남역 살인 사건, 메갈리아 논쟁,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겹쳐 떠올랐어요. 현실의 사건을 연상시키는 긴장감을 소설이 무척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렇게 현실과 밀착된 소재와 말을 소설로 옮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을까요?

맞아요. 저의 몇몇 소설은 구체적인 현실을 떠올리게 하죠. 그러나 제가 주로 관심을 두는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싸고 어떤 입장이 충돌했나, 어떤 의견이 오갔나, 어떤 담론이 형성되었나, 하는 것이에요. 첫 소설집의 표제작인 <이중 작가 초롱>은 한국 문단의 상황을 알면 더 재밌는 소설이에요. 물론 배경을 몰라서 더 재밌을 수도 있죠. 배경을 모르면 상상의 여지가 더 커지니까요. 어쨌든 저는 그런 소설을 독자와 작가가 ‘윙크하는 소설’이라고 부르는데요. 너도 알고 나도 알지, 하는 암시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작품들이 있죠. 그러나 저는 그 부분을 배신하기 위해 상당 부분 공을 들여요. 우리는 어떤 키워드가 주어졌을 때 ‘아, 그 얘기구나!’ 하고 굉장히 빠르게 점화되면서 연상하게 되잖아요. 그것을 부추길 생각이 없기에 세심하게 차이를 두려고 노력해요. 그 얘기 같아 보이지만, ‘정말 그 얘기가 맞아?’ 하는 식으로요. 아직까지 문학의 장점이 있다면 생각을 느리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중 작가 초롱>은 소설 속에서 어떤 인물을 죽이려고 갔다가 악수하고 돌아오는 ‘못된 버릇’ 때문에 작가로서 큰 고초를 겪게 되는데요. 작가님이 소설가로서 가진 ‘못된 버릇’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이게 못된 버릇이기도 하고 제 나름의 성의이기도 한데요. 소설에서 상황이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면 자꾸 비틀려고 해요. 남과 아주 다르거나 특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다들 일차적으로 떠올리는 생각은 비슷비슷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거기서 출발해서 계속 변화구를 던지려고 하는데, 그게 저로서는 독자에 대한 존중이자 고달픔이지만, 때로는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살펴봤는데요. 작가님께 가장 인상 깊게 남은 후기는 무엇이었나요?

질문을 자주 받는데요. 안 그래도 우리 모두 경쟁 시대를 사느라 힘들잖아요. 그래서 ‘가장’ 인상 깊은 후기를 꼽는 일에 살짝 반대하고 싶어요. 소외된 후기가 슬퍼합니다!(웃음) 그래도 하나 꼽자면 예전에 첫 책이 출간돼 독자와의 대화를 할 때였어요. 여성이 지하철에서 겪는 불안에 관한 작품 <여자가 지하철 할 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죠. 어떤 분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는 지하철이 없어 어떤 불안인지 바로 공감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이전에도 제가 소설에서 한정적인 집단만을 다룬다고 생각해왔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와 닿더라고요. 그래서 그때의 평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계간지 『소설 보다: 겨울 2021』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명색이 웹진파 작가”라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첫 소설집 소개에도 ‘헤비 블로거’로서, “내 글의 뿌리는 문학이 아니라 ‘포스팅’”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내심 반가웠습니다. 종이매체가 ‘찐팬’의 덕질 아카이브로 기능하는 시대에 글의 뿌리를 ‘포스팅’으로 선언하는 소설가의 등장이 더없이 설레기도 했고요. 저는 오늘, 이 인터뷰를 통해 이미상 작가님의 소설을 ‘영업’해서 한국 문학 독자를 한 명이라도 늘려보자는 야심이 있었는데요. 아직 이미상을 모르는 미지의 독자에게 ‘영업’ 멘트를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생각해봤는데요. 제 책보다 도서관을 영업하고 싶어요. 많은 분이 어떤 책을 한번 읽어보고는 싶지만 비용 때문에 망설이기도 하고, 또 제 경우는 집이 좁은데 책이 부피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심사숙고해 들이는 편이거든요. 제 책이든 다른 한국 문학이든 어떤 책이든 도서관에서 찾아보시기를 영업하고 싶습니다! 어떤 책을 찾으러 갔다가 오히려 몰랐던 책에 매료되고, 또 책을 읽거나 빌리지 않아도 도서관 자체가 고즈넉하니 산책하기 좋잖아요. 만약 도서관에 친숙하지 않은 분이 제 책이 궁금해서 어느 한가한 날, 도서관에 방문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그럴 때 책은 ‘도서관 가기’라는 평소 해 보지 않은, 비일상 경험의 계기 또는 매개가 되는 거잖아요. 그것은 모든 책이 바라는 가장 좋은 꿈이기도 해요.

장은정 비평가

사진 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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