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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한술에 급히 체하지 않으려면

세계에서 주목받는 한국 그림책

팬데믹으로 미뤄진 2020~2021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 시상이 온라인으로 열렸다
ⓒSusanne Kronholm/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양육자나 교사 외에도 다양한 지점에서 그림책을 읽는 독자들의 모임, 그림책을 창작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림책 출판에 관심을 갖는 출판사와 공모전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책은 모든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접점을 가졌으며 주제에서나 예술적 양식에서나 한 권의 책이 아우를 수 있는 범위도 넓다. 그림책에 대한 일시적인 열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림책으로 ‘월 천 수입’을 얻는 ‘N잡러’가 될 수 있다는 광고 문구를 올려 이에 끌린 이용자들로부터 펀딩 이익을 얻으려는 콘텐츠 제작자가 나타날 정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편승하는 분위기는 이 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출판 지형 안에서도 변방 중의 변방에 놓여 있었던 그림책이 갑자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주목받는 이유는 무얼까. 크고 작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그림책으로 뭔가 사업을 벌이기 위해 제안요청서를 내려보내거나 관련 계획부터 발표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림책은 그 출발이 어린이와 관련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친화적인 이미지가 있고, 비전문가에게도 진입이 쉬운 예술 분야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오랫동안 ‘어린이’와 관련한 예술 분야가 겪어온 수모나 ‘만만해 보이는’ 오해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그림책이 얼마나 전문적인 숙련과 까다로운 이해를 필요로 하는 예술 분야인지를 설명하기도 전에 수익을 파생시켜 상업적으로 분야를 교란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니 당혹스럽다. 이런 과잉 열기는 한국 그림책이 세계가 관심을 갖는 수준 높은 콘텐츠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여파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 분야에 오랫동안 노력과 열정을 바쳐온 수많은 창작자를 보호하며 그들의 성장을 위해 중심을 잡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 그림책이 예술적 성취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눈 밝은 응원이 필요하다.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등으로 잘 알려진 백희나 작가

볼로냐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만 하더라도 올해 60회를 맞이했지만, 한국의 그림책은 역사가 길지 않다. 얼마 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며 세계 그림책 역사에 영예롭게 기록된 이수지 작가가 이탈리아의 코라이니 출판사Corraini Edizioni에서 첫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를 출간한 것이 2002년이다. 그는 경계 그림책 3부작을 비롯한 ‘글 없는 그림책’으로 그림책의 새로운 문학적·미학적 혁신을 이룬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그림이 글과 상호작용하며 서사를 주도하는 그림책과 텍스트만으로 서사가 완성되는 동화책을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가 더 많은 현실이다. 이런 척박한 이해 속에서도 이수지 작가와 2020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을 받은 백희나 작가의 활약은 국내 독자는 물론, 세계 속에 한국 그림책의 입지를 선명하게 새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23 볼로냐아동도서전 한국관 풍경
ⓒBologna Children’s Book Fair

2023년 볼로냐아동도서전은 이수지 작가를 비롯한 한국 그림책 작가들이 전체 분위기와 이슈를 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백희나 작가는 얼마 전 스웨덴에서 초청받아 유럽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 수상 이후 북 토크를 마쳤다. 그는 “고독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작가”, “공예와 애니메이션의 요소를 결합해 비타협적이고 대담한 테크닉과 예술적 솔루션을 선보이는 예술가”로 평가받으며 세계 각국 독자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 창작 그림책은 규모가 작은 예술 분야로는 독보적일 정도로 꾸준히 세계적인 상을 받으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가깝게는 2021년 이수지의 『우로마』가 픽션 부문 특별 언급special mention, 밤코의 『모모모모모』가 논픽션 부문 특별 언급, 박현민의 『엄청난 눈』이 오페라 프리마Opera Prima 부문 특별 언급을 받는 등 네 권의 우리 그림책이 라가치상 수상 명단에 올랐고 2023년에도 이지연의 『이사가』, 미아의 『벤치, 슬픔에 관하여』, 김규아의 『그림자 극장』, 5unday가 글을 쓰고 윤희대가 그림을 그린 『하우스 오브 드라큘라』가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ennial of Illustration Bratislava에서도 한국 그림책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2023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열린 이수지 작가의 강연
ⓒBologna Children’s Book Fair

최근의 수상작 외에도 수백 권에 달하는 우리 그림책이 해외 곳곳에 저작권을 수출하며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누구도 그림이 있는 책을 쉽게 가질 수 없었던 시절, 일제 강점기 어려운 출판 현실 속에서도 어린이에게 ‘책 속의 그림’을 보여주겠다며 예술혼을 담아 그림을 그렸던 작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작가들의 작업은 이제 세계 그림책의 미래를 끌어가는 자리까지 다다랐다. 더 넓은 독자층을 포용하고 다양성을 표현하는, 모두의 그림책을 향한 우리 작가들의 창조적인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이 실험을 지지하고 응원할 독자들의 역할이다. 작가가 자신의 도전적인 작업을 흔들림 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데는 독자의 안목이 있다. 더 많은 독자가 이 장르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그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하면서 세계 속의 문화예술 콘텐츠로서 한국의 그림책이 발전해나가기를 바란다.

2002년 이탈리아 코라이니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수지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Corraini Edizioni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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