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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유럽 공영방송의 경영난과 예술에 닥친 위기

BBC 싱어스는 매년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 BBC 프롬스 폐막 공연의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을 맡아왔다
ⓒRoyal Albert Hall

유럽에서 라디오 방송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지역마다 앞다퉈 방송국을 개국했으며, 동시에 각자의 소속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자체 공연을 올리고 실황을 중계할 목적이었다. 그렇게 지난 100년간 공영방송 악단들은 서구 클래식 음악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영국 BBC 필하모닉, 올해 독일 라이프치히 MDR 심포니, RSO 베를린 등이 100주년을 맞이한 것만 보아도 악단의 역사가 라디오 방송의 역사와 함께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유럽의 두 공영방송 음악단체가 연달아 해체 위기를 맞았다. 오스트리아의 빈 라디오 심포니RSO Wien와 영국의 BBC 싱어스BBC Singers다. 각각 오스트리아 유일의 방송악단과 영국 유일의 전문 합창단으로서 상징성이 크다. 두 단체의 해체 위기는 어떻게 발발했고,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빈 라디오 심포니, 예산 전면 삭감 위기는 방송국의 재정 삭감 계획과 동시에 불거졌다. 2월 20일, 오스트리아 라디오는 2026년까지 재정 3억 유로(한화 약 4,325억 원) 를 절감할 것으로 발표했다. 여기에는 RSO 빈의 예산 900만 유로(한화 약 130억 원) 전면 삭감도 포함됐다.
갑작스러운 ‘전면’ 삭감에 상임 지휘자 마린 올솝Marin Alsop은 한 인터뷰에서 “계획도 해결책도 없이 그저 ‘오케스트라가 죽을 것’이라 발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탄하며, “국가 유일의 라디오 오케스트라를 (한순간에) 폐지한다니, 충격적인 발상이다. 문화를 중시하는 오스트리아, 특히 음악이 주요 산업 중 하나인 도시 빈에서는 더욱 그렇다”라고 덧붙였다. RSO 빈은 빈 필하모닉·빈 심포니와 함께 빈의 음악계를 받치고 있다. 특히 RSO는 경직된 빈 음악시장에서 여성 단원을 40% 이상 고용하며 여성 음악가의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반면 빈 필의 경우 2019년까지도 여성 단원 비율이 10%가 되지 않았다.
방송국의 의지가 결연한 만큼, RSO 빈은 ‘정부의 구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빈의 공연장 대표들은 방송국에 결정 철회를 요구했다. 방송교향악단 문화가 활발한 독일에서도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RSO 베를린의 블라디미르 유롭스키Vladimir Jurowski,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등 지휘자들은 “RSO 빈의 해체는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유럽 문화에 대한 공격”이라는 강렬한 공동 성명을 남겼다.
3월 23일, 논란 끝에 오스트리아 문화부는 방송국에 예산 삭감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유럽 언론은 “RSO 빈이 살아남았다”고 보도했지만, 이것은 유예에 불과하다. “악단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는 문화부 장관의 말처럼, RSO 빈에는 근본적인 숙제가 남아 있다.

빈 라디오 심포니와 상임 지휘자 마린 올솝
ⓒRSO Wien

갑작스러운 해체 통보 받은 BBC 싱어스 BBC 싱어스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3월 7일, BBC는 ‘클래식 음악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다. 오는 7월 BBC 싱어스를 해체하며, 산하 3개 오케스트라(BBC 심포니·필하모닉·콘서트 오케스트라)의 예산을 5분의 1 삭감한다는 내용이다. 인력 역시 예산 삭감분만큼 해고하며, 빈자리는 프리랜서 음악가들이 채우게 된다. BBC 싱어스 단원들은 발표 당일에서야 해체 사실을 알게 됐다. 문제는 BBC 의장단이 싱어스 해체 영향과 관련해 전문가와 상의한 바가 없고, 의장단 중 단 한 명만이 이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등 결정 과정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BBC는 산하에 세 개의 합창단을 운영한다. 그러나 BBC 싱어스만이 정규직으로 전문 합창 공연을 하고, 나머지 심포니 합창단BBC Symphony Chorus과 웨일스 합창단BBC National Chorus of Wales은 오케스트라 공연에 필요할 때마다 봉사 형식으로 출연하는 아마추어 합창단이다. 1924년 창단해 곧 100주년을 앞둔 BBC 싱어스는 그동안 100편 이상 작품을 위촉 초연하는 등 전문 합창 개척에 공을 세워 왔다. 특히 영국이 교회와 대학 등에서 계승해온 오랜 합창 문화를 현대적으로 잇는다고 평가받는다.
발표 직후 시작된 온라인 청원은 10만 명에 이르렀다. BBC 산하 음악단체의 지휘자 성명을 비롯해 작곡가 700명이 서명한 청원이 BBC에 전달됐다. 2주 후에는 올리버 다우든Oliver Dowden 전 영국 문화부 장관이 “BBC는 결정을 재고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3월 24일, 해체 결정은 취소됐다.
유튜브와 스트리밍이 TV와 경쟁하는 지금, 공영방송의 재정난은 예견된 일이었다. 현재 독일 국민은 18유로에 달하는 수신료의 인하를 요구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지난해 7월 TV 보유 가구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수신료 자체를 폐지했다. 수신료와 광고 수입 감소가 방송국 재정을 흔드니, 수익이 덜한 부서는 정리될 수밖에 없다. BBC 싱어스와 RSO 빈의 사태가 왜 악단이 가장 먼저 정리되는 대상인지, 그 맹점을 보여준다. 예산에 존폐가 엇갈리는 재정 구조의 취약성이다.
현재 공영방송 악단이 얻는 수익은 공연 실황 중계 수수료·공연·음반 판매 등으로, 그 경로가 단순하다. 이제는 수입 모델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역시 재정 문제로 2015년 산하의 국립 오케스트라Orchestre National de France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을 합병하려다 유예한 과거가 있는 라디오 프랑스 음악국을 예로 들자면, 현재 5천 편 넘는 악단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웹 스트리밍을 통해 광고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본사인 메종 드 라 라디오Maison de la Radio에 다양한 크기의 공연장, 녹음실 등을 구비해 대관 사업을 벌이며, 출판 레이블도 인기가 많다. 힙합이나 소설을 접목한 콘서트를 열고, 여름에는 남프랑스에서의 티켓 수입을 염두에 둔 페스티벌도 개최한다. 그러니, 마린 올솝의 말마따나 “사람들을 빈으로 데려오는 것이 음악”이라면, 이로부터 수익을 창출할 ‘악단의 전략’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전윤혜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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