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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돌보고 일하는 언니들의 이야기 책 《돌봄과 작업》과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여성의 양육과 가사와 일을 다루는 두 권의 책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바로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이라는 부제의 에세이집 《돌봄과 작업》, 그리고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라는 부제의 인터뷰집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다. 여성이기에, 엄마이기에 맞닥뜨리고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고민을 나누고 이 세상 어딘가에 사는 또 다른 여성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3040 여성들과 그들의 어머니 세대인 6070 여성들이 마음 깊은 곳에 묵혀뒀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여전히 자라고 있는 아이와 나의 성장 일지 《돌봄과 작업》 | 정서경 외 10인 | 돌고래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돌봄과 작업》은 출산과 양육과 동시에 자신의 일을 하는 엄마 열한 명의 이야기다.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 소설가 서유미, 번역가 홍한별,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과 장하원, 아티스트 전유진, 미술사 연구자 박재연, 인터뷰어 엄지혜, 입양 지원 실천가 이설아, 편집자 김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저자의 면면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이들은 하나도 잘하기 힘든 그 두 가지를 어떻게 동시에 했을까?
하지만 이 궁금증은 책 초입의 들어가는 글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이 책은 누가 더 힘든지 경쟁하거나 양육을 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고난을 자랑하려는 책이 아니다. 양육과 일을 동시에 잘하려면 이런저런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거나 주장하려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22쪽) 그러자니 더더욱 궁금해진다. 양육과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의 고통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면, 양육과 일을 동시에 잘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일까?
《돌봄과 작업》은 성공과 실패의 결말로 양분된 세상의 서사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지금도 (어쩌면 영원히)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는 중에도 아마 그들은 ‘돌봄’과 ‘작업’ 사이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부족하지는 않은지, 이것이 정말 최선인지,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훌륭하진 않은지 자문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아이는 여전히 자라고 있고, 또 나도 일과 함께 여전히 자라고 있기에. 돌봄과 작업, 그 둘은 아주 닮았을뿐더러 이제는 어느 쪽도 놓을 수 없는 존재의 이유이기에.
과연 이 길에 끝이 있을까 싶었던 길항拮抗의 여정에서 이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숙고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일은 한층 더 명료해지고 삶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다. “진짜 사랑인 이야기만 쓰고”(43쪽), “세상의 모든 여리고 약한 자들을 가엽게 여기며”(75쪽), “타인을 돌보는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며”(160쪽), “취약성의 아름다움과 한계를 수용한다.”(203쪽) 그렇게 아이를 돌보고, 또 내 것을 만드는 일 사이에서 때때로 타인이 되고 조금씩 자신이 된다.

인생 자체가 명함이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 휴머니스트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출산과 양육, 그리고 일을 둘러싼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돌봄과 양육》과 궤를 함께한다. 다만 《돌봄과 양육》이 일과 양육과 가사 ‘사이’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을 ‘찾아가는지’를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일과 양육과 가사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명함도 없이 그림자처럼 일했던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다.
세상이 ‘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던 고령 여성들, 집안일과 바깥일을 오가며 평생을 ‘프로 N잡러’로 살았던 우리 엄마들의 삶을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인터뷰했다. 덧붙여 데이터 기반의 통계와 분석을 통해 이들의 노동이 저평가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맥락을 짚어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며 당시 한국의 시대적 배경도 함께 살폈다. 기사 연재 당시에도 독자들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은 데 이어 텀블벅 펀딩 1,442%를 급속도로 달성하며 추가 출간 요청 끝에 단행본으로 정식 출판됐다.
책은 다섯 개의 ‘출근길’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한자리에서 20년 넘게 국숫집을 운영한 1954년생 손정애 씨의 출근길, 두 번째는 결혼 후 ‘집사람’이라 불리며 집안일을 도맡아 온 장희자 씨와 인화정 씨의 출근길, 세 번째는 각각 남존여비 시대와 페미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모녀지간 윤순자 씨와 마혜원 씨의 출근길, 네 번째는 부녀회장 이광월 씨와 파농사 전문가 김춘자 씨와 베테랑 광부 문계화 씨의 출근길, 다섯 번째는 다양한 일을 통해 새로운 미래에 도전하는 이안나 씨와 김태순 씨와 이선옥 씨와 김은숙 씨의 출근길이다.
‘관계’ 속에서만 살았고,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를 두고 일하고 돌봐야 했던 이들은 “지나고 보니 내 것은 없었다”고(119쪽), “나를 찾고 싶었다”고(92쪽), “다시 태어난다면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고(37쪽) 아쉬움을 털어놓지만 파도처럼 몰아치는 궂은일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자신과 가족을 지키며 개척해 온 지금까지의 전생全生이 거꾸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 안에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품고 살아왔는지,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사실 세상 모두가 알고 있다고. 고맙다고.

장보영_객원 기자 | 사진 제공 돌고래,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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